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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Oct 03. 2024

두 얼굴

2024 10 3


 또다시 어느 가옥이다. 잠을 깨우는 건 미친 차들의 질주 소리가 아니었으며, 그곳에는 그만큼 낮은 차들이 지나다니지도 않기에 그랬다.

 늦은 밤 술에 취한 자가 내지르는 소리에 깨지도 않고. 창문 너머에서 들려온 건 다름 아닌 새벽녘의 새소리였다. 긴 밤이 지나 날이 밝았다.

 그들에게 제대로 인사하지 못하고 왔다. 떠나는 날 보며 지을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던 그 모습은.

 김수홍은 끝까지 날 뒤따라왔고, 이 몸을 실을 차 앞에서 힘주어 서 있던 그 모습은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초조해보이기만 했다. 손을 내밀어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으며, 박영화는 자신 앞에 멈춰 있는 그 손을 쳐다볼 뿐. 자신들은 가지 못해 억울한 건가,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서운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난, 아니 그래서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 박영화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의 눈동자를 일으켜 세워 내 얼굴을 향하게 하지도 않았으며.

 그곳에서 내가 처음 마주한 사람들, 허무하게도 젊은 시절을 잃어가는 두 남녀의 모습이었다.

 벽에 걸린 액자 하나가 이 집의 품위를 말한다면, 그렇다면 이곳은 모든 집이 그걸 보증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격은 이념이었으니.

 난 이제 조금 다른 모양의 집에 있다. 그 집은 마치 바퀴가 달려 어디로든 떠날 꿈을 꾸게 할 듯했다.

 ‘누가 집을 이렇게 길게 지었을까’

 정 네모난 것들을 이어 붙여,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선.

 첫 번째 방을 지나면 짧은 복도가 나오고 두 번째 방이 내가 쓴 방이었다. 가장 끝 방에는 라 부장이 머물렀는데.

 밥은 늘 첫 번째 방에 준비돼있었고 그곳에 처음 보는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품에 자동차 열쇠를 가진 남자였다. 음식을 하는 곳은 완전히 분리된 곳에 있었으며 난 그 안을 보지 못했다. 마치 한 명의 손님을 둔 호텔과도 같았던 것이다.

 한 40대의 여자가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때론 상냥한 미소까지 지어 보이는, 그렇게도 분주히 움직이던 그 여자의 모습 앞에서, 그러나 난 접시에 담길 것들을 스스로 만지고 불 내어 그 모양을 변형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야 만다.

 이토록 여린 콩나물이었던가, 그런 소용없는 감상에 젖을 뿐.

 “머리 자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언젠가는 눈을 멀게 할 듯 그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라 부장은 말했다. 난 내 머리카락에 손대려는 그들 의도에 치를 떨었으며, 그게 누구였든. 어떤 이의 손에 쥔 가위가 내 머리 근처에 오는 것을 거부했으며, 누가 내 머리카락을 만지기라도 했다면 격렬히 팔을 휘저었을 테다.

 "가위를 좀 주시죠. 저는 제 머리를 제가..."

 머리 자르는 곳에 가지 않은지는 20년이 됐기에. 자신의 그 생각들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이길 즐겼음에도 머리카락에 관해서만큼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거울 속 그 남자의 얼굴 표정이었다.

 어느 날 난 스스로 가위 들기를 결심했던 것이다.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이라 생각됐던 건 난 편집 권한을 손에 쥘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울 앞의 날 본다. 머리에서 상념이 돼 자란 생각들을 정리하고 곧 치운다. 그 머리카락들이 어떻게 버려졌는지 알지만. 그 배우들에게는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었음을.

 편집이란 결심을 통해 그리 잘리고 잘려나간 것에 대해 그런 감정을 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늘 불안한 마음이었는지도.

 이곳에선 스스로 화장실을 드나들 수 있고, 또 누구의 의지도 아닌 자신의 손과 발로 창문을 열고 문 바깥으로 걸어나갈 수 있다. 그러다 누굴 만나면, 마치 제 어미의 엉덩이 뒤로 숨는 새끼처럼 난 그들을 경계할 게 뻔하지만. 결국 그러고야 말 것을.

 다시 문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에 창가에 있던 라 부장이 팔짱을 낀 채로 등을 돌렸다.


 거센 바람이 불어도 비닐조차 날라지 않을 거리에 홀로 있다. 다음 날 난 라 부장을 따라 집을 나선다. 이 거리에 난 혼자인 것만 같다. 사람들은 걸어 지나가는 날 쳐다보며, 그들을 보는 내 시선 방식과는 조금 달라 그들과 난 다르다는 걸 느낀다.

 같은 모습 비슷한 걸음이지만 그들과 난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을. 그건 내 시각인지 그들 시선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들 사이에는 어느덧 그만큼의 격차가 생겨버렸고, 그건 벌어질 만큼 벌어져 더 이상 서로를 그리워하지도 않는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남과 북의 사이에는 좀처럼 대화가 오고 가지 않는다. 야생의 풀과 꽃, 슬픈 동물들. 지뢰가 만연한 그 땅에는 그런 글자들이 정착하고 방랑할 뿐이었음을.

 평양의 한가운데로 온다. 미처 살피지 못했던 그 운전수의 모습을 뒤에서 몰래 봤다.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은 컸고 어깨가 벌어졌는데.

 그는 유지신이었다. 그 이름을 알게 된 건 며칠이 더 지나서였다. 3 년 전 숙청된 장영택의 몸을 지킨 자 중 하나였다.

 회전교차로에서 차가 멈췄는데 교통 정체 때문이었다. 차들이 서로의 꼬리를 문다. 옆을 지나는 차 뒤편에는 뻐꾸기라는 글자가 적혀있었고.

 그 차에 적힌 글자들 숫자들을 봤을 때. 평양 35-768, 그러나 그때 난 자동차 뒤에 붙은 뻐꾸기라는 글자가 무얼 의미하는지 몰랐다.

 교차로 가운데에는 팔작지붕이 씌워진 성문이 서 있고 지나가는 버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표정한 그 얼굴들에 수 없는 사연이 감춰져 있는 듯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으며 그렇기에 모두 같다. 수송되는 난민들처럼, 서로 더 이상은 건넬 말도 없는 사람들처럼 그들 입술은 떼어지지 않으며.

 높은 빌딩들 사이를 걸으면서, 자기 등보다도 큰 가방을 멘 소녀의 뒷모습을 보다 다가가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지만 사람들 눈을 의식할 뿐이다.

 그 어린 소녀 역시 우렁찬 목소리로 공산주의를 찬양하지 않을 텐가. 학교에서 선생은 소리 높이라 했을 것이다. 지도자 동지를 경애하라고.

 도시를 걷는 이들 중 배 나온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면. 평양 거리의 풍경처럼 보였다. 그들 걸음걸이는 당당했고 남자들 얼굴과 몸은 날카로웠으며 여성들의 몸은 꼿꼿한 자세로 선을 드러내 보였다. 한 여자가 지나가자 순간 윤소라를 닮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큰 키에 하얀 피부, 도회적인 눈과 꼭 물을 들인 듯한 갈색머리와.

 그때 난 이한영 형에게 윤소라는 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말했다. 내가 그 배우를 원한 이유는 너무도 단순한 것이었는데 그건 그 얼굴이 사람들 시선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해진 자기 모습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이는 일을 치욕스레 여기는 진정 배우였다. 관객들은 그들 감정을 대입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몸 육체를 필요로 하기에, 또 그 몸 안에 존재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이기를 원했으므로.

 보다 나은 가면을 찾는 일, 이야기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었음을.

 그들보다 앞서 몰입해야 한다. 난 영화감독이니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됐다. 시선에 닿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습관이 내겐 있었다.

 날 때부터 그랬는지도. 아리랑이라는 세 글자가 읽혔고 그 글자들을 보며. 계단 앞에 멈춰 잠깐 동안 그렇게 서 있다.

 라 부장이 데려간 그 음식점에는 불고기와 냉면을 팔고 있었는데 그곳에 있을 때도 일주일에 한 번씩 불고기가 나왔다. 건너편에 앉은 여자와 눈이 마주쳐 고개 돌린다. 그 집 고기는 질기지 않았지만.

 종로 오래된 길 어느 모퉁이에 있던 평양옥은 서울 갈 때마다 가던 평양냉면집이었고, 그곳에 가면 늘 벽을 향해 앉았기에. 소격동냉면의 벽시계는 한국외식협회에서 기증받은 시계라는 것도 알 정도였으니.

 라 부장은 날 먼저 안으로 향하게 했고 그래서 그곳에선 그런 걸 눈에 담을 필요 없었다. 맑은 국물은, 그 부레옥잠처럼 뜬 오이절임과.

 붉은 실고추가 떠다니고 얇게 썬 고기 삶은 달걀이 올려진 그 음식이 다시 내 앞에 놓일 때. 그렇지만 그 모습이 마치 탁해진 연못의 풍경만 같았다. 이곳 연못은 맑지 않고 면 색깔은 칙칙하기만 함을.

 투철하게도 친절한 여자 종업원, 아니 봉사원은 고춧가루와 식초를 뿌려 먹으라 말한다.

 "남쪽에서도 냉면 먹는 걸 좋아했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이한영 형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이북 출신이었다. 그 때문이었는지도. 그의 아버지는 부모를 따라 피난 왔고 남쪽 땅에 머물렀으며, 피난민들 중 부산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그 도시에 수 없는 계단을 쌓아 올리게 만들었는데.

 "연기 변신하고 싶다던데."

 그러나 그 풍경이 아름답게만 보였던 것을. 걸어 움직이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기 전에는 말이다. 그 역사가 그토록 굴곡지고 구불구불한 것이었는지.

 "걔 요즘 결혼하고 싶어해."

 안경 낀 자들이 가진 공통적인 습관이라면 그걸 만지며 말한다는 것이었다.

 윤소라는 지금쯤 신혼여행을 떠났을까. 난 그 기억으로부터 멀리 떠나와있다. 더는 그 여자가 뿌리고 다니던 향수 냄새조차 떠올리지 못할 것처럼.

 그 집 불고기의 향은 강했고 마치 잊은 듯한 추억이라 안도했다. 윤소라는 염문조차 뿌리고 다니지 않는 스타였으며.

 텔레비전을 틀면 가끔 그 여자는 가전가구 사이에 있고는 했다.

 "결혼하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러고는 웃었다. 그 말에 난 소주 한 모금을 들이킨다.

 던져진 사료 한 알을 맛보기 위해 못을 헤엄치는 과정처럼, 잉어들처럼. 그와 난 더 이상 냉면에 겨자도 뿌려 먹지 않았다. 그 맛을 이젠 잊으려 했던 것일까.

 부산에서는 밀면에 그걸 넣어 먹는 게 여전히 일반적이었다.

 "밥 먹고 어디 갈까요?"

 형에게 난 말했다.

 "또 어디 갑니까? 왜 이렇게 많이 먹이는 거죠?"

 라 부장을 보며 이야기한다. 내 음식 취향도 알고 그들은 내 연구를 많이 했던 듯하다. 그리고 그렇게.

 그 말에도 그의 앉은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그저 눈동자를 잠깐 아래로 떨어뜨릴 뿐이었다.

 "감독님을 모시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차에 가 있겠습니다."

 유지신이 소리 내 의자를 움직였고 그는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신경 쓰지 않는 듯 라 부장은 이야기했다.

 "도청 장치까지 해가면서요? 지금도 어디서 누가 내 이 말을 글로 옮기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귀에 뭘 덮어쓰고요."

 난 모질게도 말했다. 순간 그 눈을 봤고, 하지만 그의 왼눈 꺼풀은 꿈쩍도 않았기에 그 마음을 알 길 없었다. 젓가락을 든 왼손을 내려놓는 그였다.

 냉면 먹는 일을 멈추지 않는 난, 옆자리를 정리하던 봉사원을 살피던 라 부장의 시선이, 그리고 내 그릇에 떠 있던 모든 게 사라지고 국물만이 남은 걸 확인할 때였다.

 "저흰 감독님과 감독님 가족이 오디세이아빌 103동 403호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층이나 아래층에 누구를 들여보내기는 힘들었죠. 몰래 들어가 장치를 설치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그곳 보안 수준이 높더군요."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듣기만 할 뿐이었음을.

 "오히려 이곳에서 얻은 정보들이 더 많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말이죠."

 그는 말을 이었다.

 "대담 기사 같은 것 말입니다. 감독님과 관련된 모든 기사들을 읽었죠. 영상 자료들도 보고요. 목소리가 담긴 영상들도 여럿 있더군요."

 인터뷰를 말하는 것이었나.

 난 그 소리들이 다른 사람의 귀로 어떤 식으로 전달되는지 그 원리를 알지 못했지만.

 그는 내게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이젠 진짜 가짜를 구분 지을 수 없는 지경임에도 난 안다. 그들은 내 뒤를 쫓았고 그들은 오랫동안 날 알고 지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식당 문을 열고 나온 그들 걸음은 자동차 세워진 곳으로 향하고, 그때 그 걸음은 조금 빨라졌는지도 모른다. 난 얼른 내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길 가운데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선 정류장의 사람들을 마주쳤다.

 "그런데, 제가 동해에 갈 거라는 건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죠?"

 길 한가운데에서 멈춰 설듯 다시 느린 걸음으로, 그리고 난 묻는다.

 "우연이라고 해두죠."

 옅은 한숨을 내신 뒤 그는 말했다.

 "더 이상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게 우연이라니, 그건 꼭 바닷속 흰돌고래처럼 내가 올  미리 알았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배신을 느낄 것 같아 더는 궁금해하지 않기로 한다. '작전명 우연'은 내가 쓰고 있던 각본 제목 중 하나였고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기에.

 우린 부부였고, 그렇기에 그 여자와 난 더 이상 너와 나의 관계가 아니었으니.

 내 있는 곳을 알기 위한 그들의 땀 흘림이 일상적인 일이었을 것임을. 오늘은 또 어디를 가나, 손바닥만 한 화면 속 움직이는 붉은 점 하나를 보면서, 그렇게 라 부장은 무료한 눈빛으로, 손으로 턱을 괴고 혼자 그런 말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곧 팔짱까지 낀 채로 화면을 보았는지도 말이다. 그렇게 난 끊임없이 추적 당했다.

 주차장을 떠날 때 누가 뒤에서 나타나 차 아래에 뭔가를 붙이고 사라진 건 아니었는지. 해운대 어느 빌딩 좁은 입구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워뒀을 땐가.

 그 출입구의 남자는.

 "어!"

 그리고 그가 한 말은 그랬다.

 "저 혹시..."

 차를 뒤로 물릴 수도 없었다. 난 그 말조차 외면하고 만다. 늘 도망치듯 자리를 뜨던 난.

 꼭 그 모든 상황을 꾸민 것처럼, 마치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던 듯, 그런 망상 중 또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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