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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Oct 06. 2024

두 얼굴

2024 10 6

https://youtu.be/wc7Lksz1aBM?si=cxckOf3_YoZvW1O6


 곧 걸음이 느려진다. 몇 시간 뒤 그 남자는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차로 돌아올 것이다. 그곳에서 잠들 것이다. 결국 눈이 감기며 정신을 잃고 마는 그 모습은.

 잠에서 깨어 차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땐, 횡단보도를 건너 바다 옆을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봐 시선을 멈췄던 것이다. 해 뜨는 풍경에 핸드폰을 꺼내 들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찰칵 담던 순간이었다.

 낯선 차들이 머물렀다 가는 곳은 그들이 움직이기 가장 적합한 장소였을 테니. 그러니 그럴 만했던 것이다.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음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때 목적지가 평양이라는 걸 알았다면 난 과연 발걸음을 멈추었을지.

 내가 몬 자동차는, 그게 어디였든 어디에서 출발한 것이든 난 떠나 어디로든 도착했을 테니. 난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길 위에 나타날 우연 같은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 나 자신이 아니었나. 어디선가 누가 날 기다리고 있기를 하며 말이다.

 등대 불빛이 그곳 어딘가를 비추고 그 모습을. 그리고 소망한다. 외딴 그 모습이라도 비추기를.

 그건 내가 만든 시나리오, 이야기였다. 누가 그걸 훔쳐봤고, 난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넘겨 그 이야기를 읽고 있었던 건 아닌지.

 다시 그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건 상상 밖의 물체였다. 지붕 위에는 태양열 시설이 달렸는데 어느 날 까치 우는 소리에 마당으로 나온 차였다. 그곳에 서서, 그렇게 지붕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볼 때 까치는 푸드득 날개짓 하며 날아가 버리고야 말았다.

 까마귀와 까치는 늘 허무하도록 눈앞에서 멀어져 버린다. 도로와 경계 지어지지 않은 곳, 그렇기에 마당이라 부를 수도 없는 곳에서 지붕 위를 올려다보곤 했다.

 그날을 지나 아침이 되어 라 부장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7시, 라 부장은 내 방문을 두드렸고 난 눈을 뜬 채로 있었다. 새벽 그 반갑고도 불길한 새 울음소리가 들려 일찍 잠에서 깬다. 까치든 까마귀든 그것들이 내는 소리가 우는 소리인지 웃는 소리인지 난 알지 못했다.

 라 부장의 그 얼굴 표정은.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려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지도자 동지께서 부르십니다."

 그에게 난 묻고 싶었다. 그게 까치였는지 까마귀였는지, 하지만 11시가 되면 출발해야 한다고만 할 뿐. 그는 내게 씻으라 하고 옷 갈아 입으라 한다.

 내 목은 알을 품은 물고기의 배가 되고. 밥 알갱이들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고 걸린 기분이었다. 한 잔의 물을 더 마셨고 그 실체 없는 국만 입에 집어 넣을 뿐. 밥 한 그릇을 채 비우지 못한다.

 자동차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야 할 말을 떠올린다. 차에 오른 뒤 아무 말도 않고 있던 난, 그러다 어느 순간 입을 떼어냈는데 그때 난 분명 말했다. 그럼에도 잘 기억나지 않는 건, 무당 이야기를 했고 전쟁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으며, 멸시와 반동분자라는 단어까지 썼음에도 생각나지 않는 건 눈앞을 스쳐 지나간 풍경들 때문이었다.

 차는 속력을 낸다. 유지신이 어딘지 홀린 듯 가속했고 엉덩이가 들썩였다. 라 부장이 그에게 말한다. 서두를 필요 없다고.

 곧 커다란 건물 하나가 보였는데. 자동차 속력은 더 느려지기 시작했고 그곳 앞 어딘가에 멈춰 섰다. 시동을 완전히 끄기까지 차는 몇 번이고 멈추기를 반복했는데 그 사이 인민군들의 모습을 봤다. 그들은 날 알지 못했지만. 뒷좌석에 탄 내 얼굴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던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음에도.

 불어오는 바람을 견뎠을 벽과 쏟아지는 비에 끝도 없이 젖었을 바닥은. 난 마치 카메라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걷는 관객 같았으며 차는 더 깊숙한 곳 안으로 향했다. 금조차 가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 이 완벽한 건축물을 지은 자는 누구였을까. 그리 보아도 누구 하나 얼굴 내밀지 않을 듯 굳게 닫힌 그 창문들은.

 바깥에서는 안을 짐작할 수 없었고 그 안에서 누가 날 지켜보고 있을 듯했다. 그런 내 생각마저 뒤질 듯 그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와 난 몇몇의 남자들에 의해 수색당했다. 텅 빈 주머니의 외투조차 벗겨지고 겨드랑이는 물론 가랑이 사이까지 만져졌지만 그건 라 부장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억울하지는 않았음을.

 "지도자 동지의 눈을 마주치지 마십시오. 옷 두 번째 단추에 눈을 두시고 절대로 말을 끊어서도"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말이었다. 마치 남의 영화에서 본 남이 만든 대사 같은.

 그렇게 라 부장은 내게 몇 가지의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지도자 동지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 해서는 안 될 행동들. 그러나 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그였다.

 내 등을 밀 듯 라 부장이. 난 홀로 보내어진다. 그들은 날 더 깊숙한 곳 안으로 밀어 넣었는데 복도 바닥을 두드리는 건 오로지 내 신은 구두뿐이었다.

 저 멀리 조각상처럼 서 있던 그 모습을. 고개 뒤로 돌려 그 모습을 봤고 등이 굳어가며 땀이 흘렀다. 다시 그 말을 떠올린다. 그 문장들에 의지해 걷듯, 그곳에서 난 라 부장의 말에 의해 움직이는 듯했다. 그때 내 두 다리는 스스로를 이끌 힘 없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큰 문 앞으로 다가서자 녹색의 옷을 입은 군인 두 명이 문을 열어줬고. 또다른 복도가 펼쳐지고 그 끝에 남자 한 명이 서 있는 것을 봤다. 가슴 양쪽으로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은, 마치 쌍둥이처럼.

 그 옷은 라 부장이 입은 옷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점점 가까워지는 내 모습을 보다 몸을 틀었고 왼쪽으로 사라졌다. 그 남자의 뒤를 따라 걷는다. 복도 끝으로 다다르자 안내자는 다시 왼쪽 방향으로 몸을 틀고.

 "정 감독님!"

 모서리를 돌자 마주친 한 남자와 눈을 부딪히고 만다. 자신을 지나 내게로 온 그의 모습 뒤에서 안내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먼 길 오셨습니다."

 그가 내게 건넨 첫 인사였다.

 지도자 동지가 내민 손을 잡은 난, 그 손은 차가웠으나 힘을 줘 내 손을 흔들었으며.

 내 입술은 굳게 닫힌 채였다. 그런 첫 인사를 준비한 건 아니었지만.

 그를 만날 순간을 떠올렸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고민했다. 미소 짓게 할까 담담한 척 무표정하도록 할까 화가처럼 고민했건만 연필조차 들 수 없을 듯했다. 그저 그려져야만 했던 그 얼굴은. 난 웃음도, 그리고 분노조차 그의 앞에서 드러내 보일 수 없었음을.

 그의 앞에서도 뒤에서도 걸을 수 없다. 문 하나를 열 때마다 지도자 동지는 굳은 내 등에 손을 댔고 먼저 들어가도록 했다.

 소파에 앉자 담배 한 갑을 내밀었는데. 그 손을 보며 그것조차 내 돈 주고 사 피울 수 없다는 생각에 선뜻 손 내밀 수 없었다. 그를 마주 보고 앉았다. 다른 어느 곳으로도 시선을 두지 못하는 내 두 눈은 오로지 그의 상의 두 번째 단추만을 볼 뿐이었고.

 "감독님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난 이미 눈을 마주치고 난 뒤였다.

 "특별히 그 여자를 잊지 못하겠군요. 영해가 주인공이었던 영화, 그 작품이 제 인생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날 만난 게 기쁘다는 그의 말이. 그 영화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라는 말에 난 끝내.

 내겐 아픈 기억으로 남은 장면들이, 그 가운데에 있던 여자가 자신에게는 잊지 못할 모습으로 남았다니 무슨 말도 할 수 없을 듯했다. 그렇게 웃는 얼굴로 말하다니.

 그 순간 그 모습이 떠올라 난 슬픈 표정조차 지을 수 없었다.

 삼천만의 인민이 만들어낸 조명으로 밝힌 그 얼굴 위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머물렀다. 잊은 듯했지만 그 모습을 지울 수 없는,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말처럼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 날 그속에 가두려 한다.



 얼굴



 두 눈 앞에 머무르는 기억들과 잠이 들면 이내 사라져버리고 마는 장면들은. 물 잔을 보며 그걸 만지려다 곧 떼어지는 손가락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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