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의 잔이 눈 앞에아른거렸다. 내 손가락 끝은 그 모양을 여전히 기억하는 듯했다. 그곳은 서빙고동에 있는 카페였다. 서울에 갈 때면 꼭 찾던 가게였다.
그 가게 주인이 직접 만든 커피잔은 어디서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었으므로. 그가 만든 물질을 손에 쥐던 일이 날 위로했기 때문이다. 그 이론이 날 이끌었기 때문인지도. 인간은 공허함을 느끼지 않으려 그런 짓을 한다고. 손에 쥔 채 그걸 놓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 카페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한 쌍의 남녀를 기억한다. 우당탕거리며 탁자가 밀리고 의자들이 쓰러지던 그때 그 장면을.
그들을 말리기 위해 여기저기 흩어졌던 사람들이 카페 한가운데에 옹기종기 모였던 일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난 완벽하게 둘로 나뉜 한 연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곳은 상류층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곳. 카페란 그런 곳이다. 그런 법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건 오직 평양 시민들뿐인 듯했다. 여기저기 지어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모인다.
봉사원은 옷에 이름표까지 붙여놓고 서빙, 아니 봉사를 했는데. 그 이름은 대게 세 글자였지만 어쩐지 그 뉘앙스는 조금 달랐던 것이다.
"저는 즐기지 않지만..."
라 부장은 내게 그리 말하며 말끝을 흐리고.
커피와 카페는 도시에서는 더는 없어서는 안되는 것. 그건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공간 그리고 공식이었다. 그럴수록 사람들 변명은 더 늘어갈 뿐이었고. 그 말조차 그런 식으로 들릴 뿐이었음을.
그 잔 앞에서 수줍은 듯 보였음을. 당신이 마시지 않으면 나도 마시지 않겠다고 해 그는 끝내 그 잔을 들 수 밖에 없었던 걸까.
"왜 안 드시죠?"
그런 말 따위로 그를 건드리거나.
커피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혼자만 마시기엔 너무 심심한 것이었으니.
다시 거리로 나와 어느 높은 건물을 봤을 때, 그 하늘 높이 솟은 빌딩은 웬 정신착란증 환자가 만든 듯 뚝딱 지어진 듯했던 주변 건물들과는 꽤 다른 모습으로 자라 있었던 것이다.
그 높은 꼭대기를 올려다 보다 고개가 뒤로 꺽이며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곧 쓰러질 것만 같았음을.
그 건축물의 이름은 휘황찬란이었다. 그 도시에서 가장 공들여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도시의 사람들은 더 높은 곳에서 모인다. 할 이야기가 많아진 듯, 끝없이 닮아 복제되어 끝으로 다다르려는 듯 이어지고 연결됐다. 보통강구역은 변화하는 평양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새 길을 찾아 걷는 것뿐이었다.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나무들이 높이 자란 어느 길로 들어서고 막다른 길 위에서 난.
그 끝에 무엇이라도 있을 것 같아 그랬다. 다른 뜻은 없었음을. 집으로 가기 싫어 그랬던 걸지도 모르지만.
학교를 다니는 것도,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 동호회에 가입하는 일조차 불가능한 걸 알지만. 그처럼 서로 이어져 붙고 살아남을 고리 만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됨에도.
난 여전히 인민이 되지 못한 채 국민에 머무르는 듯했다.
그들에게 단일한 민족이란 인민뿐이었음을. 그들은 거짓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 혀는 결코 진실을 꾸며내말하지 않는다.
"일 없습니다."
라 부장의 옷이 예뻐 보였다. 그랬더니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그는 언제나 외투안 목을 감싸는 푸른 티를 입고 다녔는데 그 색은 검은색에 가까운 파랑이었다. 라 부장 목 핏줄은 늘 그런 식으로 감춰진다.
그런 색의 옷을 입고 다니면 억울한 일을 당하지는 않는지 궁금했다. 징벌을 받거나, 심할 경우 어느 외딴곳으로 보내져 고립되는지도 말이다. 생각해보니 바깥에서 본 사람들이 모두 빨간색이나 녹색의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본다. 창가로 걸어가는 그 뒷모습을. 창문 앞에 선 그의 모습은, 창문으로 강한 빛이 들어오며 그 색은 좀 더 밝아져 있었다.
"성이 원래 라 씨입니까, 아니면 나 씨인데 라 씨로 불리는 겁니까?"
그 색은 어느덧 뚜렷해졌다.
북쪽에서는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라씨 성은 그대로 라라 불렸는데.
라정운, 그의 이름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나씨 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입술은 잠깐 동안 닫혀 있었는데, 곧 고개를 돌리고는 알 수 없는 듯 표정 짓더니 그리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라나 나나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외신에서 내 성을 Chung 이라 표기하는 게 날 불쾌하게 하지는 않았으니.
영화 제목조차 자신들이 쓰는 언어 글자로 바뀌어있고는 했는데. 난 안다. 누군가에 내가 존재한다는 게 그저 다행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는 청보다는 정으로 불리기를 희망했지만.
난 남쪽 땅에 어울리도록 자라있었던 것이다. 그건 내가 정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 이름 지을 운명을 난 타고나지 못했음을. 난 그저 태어난 것이었다.
어느 푸른 눈의 감독이 만든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이 나라 지도를 종이 위에 그려 그걸 가로로 반 접어 구멍 뚫으면 서로 통하는 길을 만들 수 있을까. 끝에서 끝으로 다다르는 거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또 하나의 이론으로서.
남쪽 땅은 또 둘로 나뉘어진 듯했다. 종이를 위에서 아래로 찢은 것처럼 찢어졌다. 이제 그 사이를 잇는 구조물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 사이로 흐르는 건 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니라 건널 수 없는 강이었음을. 그 물줄기는 애초에 누가 만든 건지 알 수 없었으며. 그건 체제를 구분 짓는 장벽이 아님에도 나뉘어져 서로를 경계했다.
어떤 이는 차라리 그 물 위로 배가 다니게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여전히 개고기를 먹는 그들이 부러운 건. 어느 날은 라 부장이 내게 단고기 요리를 권했는데 거절했다. 그와 난 식당 문 앞까지 다가섰다 발걸음을 돌리고야 만다.
"즐기시지 않습니까?"
난 그 냄새를 모르며 그게 어떤 식으로 요리되어 나오는지도 본 적 없었다. 라 부장의 그 말에 옅을 미소를 지을 뿐 난 고개 가로저었던 것이다.
내가 본 건 그런 모습뿐이었으니. 어린 시절 난 순간 그것으로 가득 채워졌을 어른들 배를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볼 뿐이었다. 그속에서 분해된 것을, 그 운명을 그리도 불쌍히 여겼던 건지도. 그 즈음, 그 시절의 난 이미 새로운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곳 식당에서 선보이는 단고기 요리는 종류가 70여개를 넘었으며, 그건 마치 그들 사상의 뿌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지 수를 의미하는 듯도 했다. 모든 건 죽어 다시 태어나 열매처럼 맺힐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상상할 권리는 있으니. 책임지지 못할 답이 되어 돌아오더라도 말이다. 내게 죄가 있다면 그걸 포기하는 일일 거라 믿었다.
달을 보지 않으면 떠나지 못하듯, 착륙이라는 단어 없이 우주 발사체는 이 지구를 떠나지 못할 테니. 그토록 깊고 어두운 구멍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그런 꿈을 꿀 수 없었을지 모르는걸. 떠도는 게 삶의 전부인 것만 같다.
언젠가 철조망을 넘어 그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기다린다. 또는 내 아들이 이곳으로 건너올 날을 그리며.
우린 반도의 중심에서 만날 것이다. 그곳에서 서로 마주할 날을 그린다. 둘도 아닌 넷도 아닌 하나, 우리나라에서.
지하실
난 굶어 죽어가는 인민들의 고통을 상상해본 적 없다. 그건 슬픈 일이었음을. 누구도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못할 것처럼. 오른손을 쓰는 것만이 바른 짓이라 말할 사람 또한 없을 것이기에.
라 부장은 밥을 먹을 때 왼손을 썼는데.
자리에서 먼저 일어서는 라 부장이었다. 돌아서 그는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을 듣기 전 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음을.
"토요일에 또 지도자 동지를 만나 보셔야 합니다."
난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는데, TV 뉴스를 통해 들어 그 음성을 알고 있었는데도 그의 목소리를 떠올려본 적 없었다. 그날이 처음이었고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다. 앞으로 들이닥칠 일을 난 알 수 없고 예상하지 못함을.
지도자 동지 집무실 한쪽 벽에는 한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문이 있었는데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와 같은 것이었다. 토요일이다. 내 시간은 그곳 앞에서 멈추고 그의 삶 하루가 째깍째깍 도는 시계처럼 돌아간다.
그때 그와 난 8시 17분에 머무르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 자신의 모습을 내 앞에 드러낸 그 남자가 걷는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 그의 발걸음은 벽을 향하고, 그 앞으로 다가서 곧 문이 열리자 그곳으로 안내된다.
오르내리는 도르래에 숨을 맡긴 채, 그렇듯 그와 난 안전하게 추락 중이었음을.그곳에 그는 자신만의 에펠을 묻어올렸다.
그 지하 꼭대기 층 한가운데에는 긴 탁자 하나가 놓였는데 마치 쓸쓸한 잔치라도 벌어질 듯했다. 익숙한 듯 걸어 한가운데 자리에 앉는, 그리고 날 자신의 반대편에 앉게 하는 그였다.
그곳에 수행원은 없었다. 그곳에는 누구도 함께 머무르지 못했다. 누가 준비해 놓고 자리를 떴는지 식탁 위에 몇 가지가 올려져 있을 뿐이었는데.
두 사람이 앉기에는 빈자리가 너무 많았기에. 탁자 한 가운데에는 음울한 정물화 속 사물처럼 술병과 잔이 놓여 있었고.
정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대화는 경제, 군사, 문화로까지 이어지며, 그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전한 뒤 내 생각을 전해 들으려 했다. 혹은 먼저 말하기를 기다린다.
"환기 시설이 돼 있습니다. 한 대 피우시죠."
담배란 핑계인 것을. 길을 가다 멈춰 카메라를 꺼내 사진 찍는 일도 그렇다. 멍하니 무언가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볼 테지만.
내 하루에는 가끔 시선 둘 곳이 필요했음을.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지도자 동지의 모습이 내 눈 앞에 있다.
"인민들이 굶어 죽을 때 원수는 자기 배나 채운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습니다. 그 배를 뭘로 채우든, 그것도 죽음으로 가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변명 같이 꾸민 그의 말에 난 기준을 잃을 듯했지만.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함께 살기 위해 나누고자 했습니다."
그는 내 잔에 술을 따랐고, 순간 편지의 한 구절처럼 새겨진 그의 오른팔 위 글자들을 본다.
"아버지의 그 포부가 꿈이 되면서, 그런데 어느 순간 아버지의 그 얼굴마저 변하는 듯했죠."
지도자 동지의 아버지는 50년의 세월 동안 독재를 이어온 인물이었고, 그는 그가 60세의 나이에 낳은 늦둥이였다.
그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었고 한 명의 누이를 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첫 번째 형은 그가 그 자리에 오르고 몇 개월 후 사망하는데.
또 한 명의 형은 유럽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 누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었고 그 여자는 좀처럼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땅 아래에 고인 물처럼 드러나 보인 게 없었으며. 어떤 병을 갖고 있는지, 기껏 해야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산다는 이야기만이 소문으로 전해질 뿐이었음을.
그의 형 리태선은 말레이시아에서 암살 당하고 만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더 많은 권한을 얻게 되죠."
뉴스를 통해 본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리태선이 죽고 얼마 뒤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그 얼굴을.
리태선은 그해 여름 쿠알라룸푸르의 한 호텔에서 폴로늄이 든 홍차를 마신 뒤 사망했고 류장선 말레이시아 대사가 외교 기피 인물로 지정되며 추방당한다.
"산 정상에 오르는 순간 모든 것을 잃죠. 꿈도 사랑도. 저에게도 사랑했던 여자가 있습니다.
"가슴 속에 묻어둔 지 오래입니다. 더는 그 얼굴을 볼 수 없죠."
그의 모습 뒤로 크고 넓은 회색의 벽이 머물렀다. 그 벽에는 이념이 그려 채워지지 않았다.
"국가는 꿈을 잃고 사랑을 잃은 사람이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조형물 같은 것이 돼야 하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것이 있음에 또 위로 받지 않던가요?"
리태선 암살을 지시한 건 지도자 동지로 알려졌다.
그곳 공기는 서늘했음에도 춥지 않았고. 한 모금의 술은 뜨겁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고 그가 술잔을 비우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음을.
지도자 동지의 삶을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그가 떠나온 이 긴 여정을 말이다.
벽의 끝에영사기 한 대가 놓여 있었고. 그렇지만 그런 심각한 이야기들만 오고 간 건 아니었다.
"남쪽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늘 싸우지 않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죠. 국가에 반역하다 끝내 망명자가 된 이들을 보십시오. 그 자들은 펄럭이는 국기가 없으면 목표물을 찾지 못하죠. 그들 기질은, 자신을 옥죄는 무언가가 없다면 그런 성격조차 드러낼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