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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는 아직 죽지 않았다

by 문윤범

폴 바셋의 에스프레소는.


2003 바리스타 챔피언이 된 이 호주인의 이름을 내건 커피 체인점이 눈에 들어온 건 나도 모르는 사이였다. 나도 알지 못하는 새 Paul Bassett이라는 글자와 왕관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큰 백화점에는 다 들어와 있었고 사람들도 많았으니.



처음 맛본 이곳 커피의 맛은. 굿. 거품 색깔부터 좋은 느낌이었고 맛 또한 훌륭했다. 여름에 너무 목이 말라.


처음 이 카페에 간 건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였는데. 이 커피 체인점이 매일유업에서 운영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기 때문이었다. 우유 만드는 회사에서 만드니 맛있겠지, 감히 파스퇴르 아이스크림보다 더 뛰어난 맛이었다 평하고 싶던. 아주 베리 굿. 그때 그 자리에서 두 컵을 다 녹여 흡수시켜 버렸다. 한 컵 양이 너무 적어서.



부산대 앞 골목길 사이에 자리 잡았던 무수한 옷 가게들이 거의 전부 문을 닫은 이유는 대학교 정문 쪽에 자리 잡은 NC 백화점의 영향이라 결론짓는다. H&M, 탑텐, 스파오, 폴햄 등등의 브랜드들이 싼 가격으로 나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며 젊은 층을 사로잡은 이유 때문이라 결론지었다. 치명타는 주요 도심 지역에 매장을 낸 무신사 스탠다드였다. 그 영향이 결정적이라 생각했으며.


동대문 브랜드의 옷을 파는 사람들도 인터넷을 통해서도 옷을 팔거나 하며 나름대로 전략을 가져간다 보지만 더 힘들게 됐다. 폴 바셋에 간 이유는. 연산역에 새롭게 문을 연 그 매장은 원래 스타벅스가 있던 자리였는데 폴 바셋이 치고 들어온 듯하다. 세계에서 스타벅스 매장이 세 번째로 많다는 이 나라는 커피를 사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면서도 커피에 설탕 타면 촌스럽다 생각하는 그 관점은 진짜 이해 안 되는 것이지만.


또한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를 차게 마시는 문화에 노하거나 격렬히 부정하는 반응을 보이고는 했다. 처음 진짜 맛있는 커피를 맛본 것도 이탈리아계 프랑스인 할머니가 타준 커피 한 잔을 마신 뒤였는데. 아무튼 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 마시는 게 싫었다. 정작 프랜차이즈라는 단어가 프랑스어에서 유래했다 보는 것으로부터 아이러니함을 느낄 뿐이지만. 가맹이라는 단어 또한 사용된다. 흔히 가맹이라 하면 국어로 보지만 프랜차이즈라 하면 외래어로 여긴다. 그걸 역설적이라 표현하고는 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없는 시대. 그래도 결혼식에서 한복 입는 문화가 남아 있어 낭떠러지에서 버티듯 그 문화를 이어간다. 그 결과 부산대 앞 영어 이름을 한 의류 매장들은 거의 문을 닫고 있는 상황. 이게 만약 순수 한글의 반격이라면. 무신사,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의 줄임말로 시작된 그 이름이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면.


옷 입는 일이 그 정도로 거창할 일일 리는 없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듯,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화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부산대 앞은 다 죽었다, 다 망했다, 그런데 난 저런 건물 한 공간을 차지해 글을 쓰고도 싶다. 어쩌면 그런 수요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유튜버들이 그런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술을 마시거나 하며 정치 이야기를 하는 그런 그림도 그려지니. 오늘은 폴 바셋 머그잔에 따른 매일우유 한 잔으로.


무신사라는 사이트를 처음 알게 된 그 시절 그때 난 부산대 앞에서 옷을 사느라 정신없었는지 모른다. 열풍처럼 번진 구제 옷의 유행은 특히 이 도시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말하고 싶은. 그때 홍대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곳 역시 대단했다. 멋있는 남자들이 옷을 파는 가게들로 넘쳐나던 시대. 배정남도 부산대 앞 옷 가게에서 일하다 김민준의 눈에 띄어 모델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 않았는가.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훌륭한 디자이너의 힘을 빌려 부산을 대표하는 옷 브랜드를 전개하고 싶은 꿈도 꾼다. 그토록 좋아하는 코트, 해군의 옷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무언가를 표현하는 그런 꿈을 그려보기도 했다. 부산 바다가 배경이라면 멋지지 않겠는가. 정작 난 바다에 가려면 차 타고 못해도 30분은 가야 하는 곳에 살지만.


세상에 멋진 옷은 많고 맛있는 커피는 많다. 그러나 멋진 옷을 찾는 일은 힘들고 맛있는 커피를 찾는 일 또한 그렇다. 뒤지고 또 뒤져야 한다. 좋아하는 커피집 옷 가게들이 몇 군데 있다. 아직 최고는 없는 듯하지만. 내가 그린 그림이 기린 그림이라면 그게 가장 멋진 기린 그림이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아프리카의 땅을 꿈꾼다. 또는 혹한의 겨울 땅을 그린다. 하얗고 큰 곰 한 마리를 마주치는 상상도...


https://youtu.be/Dz5VzLz67WA?si=kSI0J0nWqfZfTz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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