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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프 로런이 미국의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을 때 그는 미국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패션 디자이너임을 깨달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옷 브랜드 랄프 로렌은 랠프 로런이 1967년 뉴욕에서 창립했다고 설명돼 있다. 난 라코스테를 좋아했다. 그게 대체 무슨 차이인지 설명할 길 없지만 유럽 분위기가 느껴지는 걸 더 좋아했다 할까. 어쩌면 그런 정보를 미리 습득했던 건지 모른다. 폴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는 폴로티의 그 로고가 날 끌어당기지 못했기에 그렇다. 악어 로고가 내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지만.
어느 날 국내의 어떤 디자이너 브랜드를 알게 된 뒤 생각이 크게 바뀐다. 그 브랜드 옷으로 옮겨온 듯한 랄프 로렌 옷 디테일들을 접하고는 왜 사람들이 그 브랜드 옷에 열광했는지를 알 듯했다. 그걸 권력이라 여길 사람 또한 분명히 있겠지만, 그냥 옷 입는 일에 푹 빠져 살다 그런 옷을 입어본 사람이 자연스레 전파하게 된 그 신앙심과 같은 마음이 내게도 옮겨온 듯한 것이었다. 국가는 신앙심으로 뭉쳐진 종교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아예 십자가를 박은 국기를 사용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그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이 나라에도 그런 옷 브랜드가 필요하다면. 곰곰이 생각해 봐도 딱 하나 떠오르는 건 없는데. 딱 하나 떠오르는 게 있다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겠지만.
딱 하나는 없어도 백화점에 들어가있는 여러 브랜드들이 있고 아저씨 아줌마들이 입고 다니는 흔한 옷 브랜드들이 있다. 이미 이 사회에 자리잡은 사람들이 입는 옷 상표는 곧 대중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도 삼성이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이고 빈폴이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꾸준히 있어온 옷 브랜드라면 딱 하나 꼽으라면 그게 아닐까.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우리나라 브랜드가 아니니까.
빈폴은 절대 안 산다 하며 그 굳은 맹세를 지켜온 난 지금껏 그 브랜드 옷을 사본 적이 없다. 이름부터 폴로를 추종한 듯보였고 난 여러모로 폴로에 대항하고자 하는 항쟁심 같은 것을 가진 것이었다. 이제 난 굴복하고 그걸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은 걸까. U.S.A.가 박힌 스웨트 셔츠 한 벌을 사고 싶었다. 백화점 폴로 매장 앞을 지나가다 문득.
Ralph Lauren
지퍼가 달린 스웨트 셔츠, 또 주머니 디테일이 그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옷에 이식된 유전 정보 같은 것이라 인식 또는 감지하게 한. 결론적으로 가볍게 입고 다니기에는 비싸고, 또 개인적인 이유로 안 맞는 부분이 있어 살 마음을 접었는데 그럴 마음을 품은 것만으로도 난 설레었다. 결코 그렇게 끝낼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에도 꼭 그런 옷 상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늘 돌아보게 되는 건 내 모습이다. 오늘은 비교적 만족스러운 내 모습이 아니라, 어떤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거울 속 내 모습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해 화면 속 빛나는 내 모습을 꿈꾸지 않을까. 꼭 그런 심정처럼.
지난 몇 년 간은 우영미 옷을 입은 남자들이 거리에서 꽤 멋진 모습으로 있던데. 일본인들도 찾아와 사 가는 브랜드 아더에러의 것들이 이 나라 패션 사업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까. 문득 이 나라 안에도 프랑스에 본사를 둔 기업 LVMH와 같은 조직을 구축하고자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짐작하게 된다. 그들처럼 루이비통 디올 등등의 브랜드들을 소유한 거대 기업이 이곳에서도 탄생할 수 있을까.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이미 빈폴, 그리고 갤럭시와 같은 브랜드들을 소유한 아주 큰 기업이기도 할 테지만. 난 그저 멋진 옷을 입고 멋진 신발을 신고 싶었을 뿐이다. 국가는 그 꿈을 통해 이루어지고 성장하리라. 원단과 품질, 또 편의성에 대한 깊은 고민들. 하나 하나 사 입고 신고 하다 보니 더 많은 것을 보게 되지만, 하다 못해 유통과 배송, 그리고 보관은 또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들여다보려 하지만 점점 더 길을 잃는다. 옷을 입는 것에 대한 이유, 그 진실된 뜻 의미를 잃을 것만 같았다.
랄프 로렌을 입고 싶은 꿈은 랠프 로런이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분명 그럴 것이다. 내가 패션 디자이너였다면 이미 그런 길로 접어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난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고 필요할 땐 공격해야 한다. 옷을 입는 이유가 된지 이미 오래인 일처럼.
실오라기도 걸친 인간이 있다면 그는 이미 패션에 뜻을 담은 것이었다. 패션이 유행이고 유행이 곧 패션이다. 다른 뜻이 없다. 옷을 만드는 일은 창작과도 같다. 영화를 찍는 것도 소설을 쓰는 것도 모두 그들이 하는 일과 비슷할지 모른다. 내가 옷 만드는 사람이라면 난 어떤 옷을, 또는 어떤 신발을 만들어 사람들이 입고 신고 보도록 할까.
내 꿈은 알렉산더 맥퀸 신발 한 켤레를 신는 것이었는데 그 꿈을 이루고 난 후 이젠 무얼 해야 하는 생각도. 그런 뒤 폴로 옷을 사고자 하는 욕망을 프로그래밍하게 된다. 구조화해 진행시키고 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다 본다. 이 국가가 얼마나 미국이라는 나라에 강하게 밀착했던지. 어느 정도로 의지하고 이끌렸는지를.
뉴욕 거리를 걷다. 이제 그런 상상을 한다. 그 옷을 입고 미국인처럼 미국 거리를 걷는 꿈을.
Ralph Lau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