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연길 가서 그 새끼 잡아!"
그 대사를 듣고 그런 도시가 있나 싶었는데. 중국? 맞다. 구남은 그 도시로부터 왔으니. 그러니까 연변은 알았지만 연길은 몰랐던 것이다. 서울로 온 구남은 작은 여관방에 머물며 그 도시 거리들을 떠돈다. 그의 고향은 연길, 중국 지린성에 있는 도시였다.
중국과 한국 사이 그 어느 국가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못한 채 끝내 두 국가 사이 바다에 풍덩 빠져 죽고 마는 그 운명이 비참하게 다가왔다.
"잡은 다음에"
그러다 역관광당하고 말지만.
한 무리의 건달들이 연길 밤거리에 도착한다. 택시 한 대가 세워지고.
"너 누구야?"
배를 타고 몰래 그 땅으로 온 구남은 먼저 먹는다. 그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먹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는 계속 먹었다. 현실적이기도 한 연출이었다. 보통 아무것도 먹지 않는 영화 속 주인공, 특히 영웅 캐릭터들에 반기를 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옆 사람이 먹던 음식을 흘깃 유심히 보다 그걸 따라 사 먹는 장면이 압권이었고.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던 지점이었다.
구남의 일이 꼬이기 시작하고. 짐승 몸 안의 창자처럼 말이다. 그 와중에 피가 튀고, 피가 계단으로 뚝뚝 떨어지기도 하는 등 보기 힘든 장면들이 이어진다. 면가는 구남에게 지시했다. 그 사람 손가락 가져오라고.
그들은 마작방에서 만난 사이였다.
"평생 저 개들처럼 맞고 살게?"
여기서 그 돈 다 못 번다며, 아내도 만나보고 갔다 오라며 어루만지듯 등을 쓴다. 창문 밖 으르렁대는 개들을 보며. 구남은.
고정돼 있지 않은 카메라가 불안한 심리 혹은 거친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냈고 감독이 원한 바가 그대로 전달되는 듯했다. 그때 그 감정들이. 영화 혹은 소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감독 혹은 작가 자신이 겪은 것들을 표현하는 일. 조금은 부풀리고 과장됐을지 모르지만. 저게 말이 돼? 할 때도 있지만. 때로 삶은 그렇게.
오랜만에 그 영화를 본다. 왜 그랬는지 자주 보고, 보고 또 봤었는데. 다시 보니 화질이 안 좋구나, 요즘은 그 정도로는 사람들이 만족 못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점점 더 선명해지고.
'동네에 개병이 돌았다'
병들대로 병든 인간들이 꾸민 짓거리는 삶의 끝으로 몰린 한 남자를 끝내 그 아래로 떨어트리고 만다. 그는 그 아래를 보고 있었던 듯했다.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 건.
처음 그 장면이 좋았다. 마작패들이 섞이고 사람 손에 딱딱 소리를 내는 그 장면들이. 소설이나 영화는 때로 도박 음주, 그리고 흡연을 부추기지만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이따금 두려움이 일지만. 내가 그걸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며.
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지만 도박은 평범한 게임조차 멀리한다. 솔직히 그게 너무 재밌어 보이거든. 그리고 난 진짜 잘할 것 같아서.
"내 오늘 어찌 이리 잘 되니?"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 잊지 말아야 할 것. 인생은 컨트롤하고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난 그저 컨트롤 당하고 있다는 것을.
줄에 묶인 개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누가 날 핸들링하려 들 때 그게 미친듯이 싫었던 난 꼭 줄을 풀고 나온 개와 같다. 난 그런 신세였다. 그래도 난 병들지 않았다고. 그래도 영화는 그런 큰 위안을 주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고.
난 그 삶을 연출하는 영화감독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