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J5U-vLMuQo?si=ysTK05yGS2-NOihD
저 영상을 보면, 당신은 지금 반 정도 외국어를 듣고 있다 해도 절대 이상하지 않을.
제주어 또는 제주 방언은 중세 한국어의 특징이 많이 남아 있고 또 제주 고유의 단어들, 문법적 특성들이 있어 별개의 언어로 여긴다는 설명 또 주장이 있었다. 표준 한국어 화자와 제주어 화자간의 상호 의사 소통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저 우스갯소리이기도 하지만, 진짜 못 알아 듣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니까. 그들이 작정한다면 말이다.
그건 그들 또한 표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안다는 말이 되기도 하지만. 세대마다 그 말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는데 내가 제주에 있을 때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해 잘 모른다. 방송이나 몇몇 영상을 통해 확인한 것이었다. 그들은 진짜 다른 언어를 쓰는구나 하며.
그 언어를 소설 속에 담고자 했던 적도 있지만 마음을 바꿔 먹고. 굳이 그럴 필요 있나 하면서. 어느 날 서점에서 한강 작가 책을 몇 페이지 읽다 제주 방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문장들을 봐 그랬기도 하다. 따라할 수는 없으니까. 그 작가 문장들은 읽으면 따라하고 싶기도 했으니까.
영국 또한 잉글랜드인의 말과 스코틀랜드인의 말이 다르고, 그래서 박지성은 알렉스 퍼거슨 경의 말을 못 알아들은 때도 있다 하지 않았던가. 서로 단절의 방식은 다르지만 닮아있기도 하다. 섬은, 그러니까 오고 가기 힘든 길은 오고 가기 시작할 때 점차 더 큰 무언가를 안기기도 해 가치 있다. 아름다운 풍경만이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의 내 생활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듯. 내 발로 내가 가 놓고 힘들었던 기억이. 곧장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을 때, 그때 난 벌써 포기하는 법을 배웠는지도.
10년이 지나 프랑스에 갔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그땐 더 간절히 그 나라 그 땅에 닿고 싶었음에도. 하늘의 뜻이었는지 비자 문제로 3개월 만에 다시 온 후 도로 가 적응하기 좀 더 수월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오고 가며 들은 언어 혹은 배운 언어들은 지금까지도 까먹지 않고 있다.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것들. 물론 난 어항 속 물고기 숫자만큼의 언어를 했을 뿐이지만.
열심히 쓰다 보면 어느 날은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면 그 하나는 바로 쓰기의 힘이다. 외국어를 잘하고 싶으면, 그러면 일단 한국어를 잘하는 게 중요했고. 난 아직까지도 한국어를 잘 못해 그렇다. 언제쯤 난 프랑스어를 잘 하게 될까?
제주어는 내가 아는 한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라 사라질 위험이 더 크다. 실제로 사라질 위험성에 대해 논하는 학자들 또한 있으니까. 언어는 화자를 잃으면 사멸하게 된다. 즉, 사어가 됨을 의미한다. 그 말이 죽고 없어질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건 그 섬을 잃는 일과 같지 않을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아님, 그 정신이라도 남기는 일을. 내가 나를 기억하는 법. 그때 그는 도대체 누굴 만난 것이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제주 고씨라는 성이 있다. 곧바로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고두심. 고현정 고민시 고민정 등의 사람도 있지만. 남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형제는 그곳에서 제주 고씨 성을 가진 여자를 만난다. 쌍둥이로 사는 삶은 어떨까? 다 큰 지금도 궁금증이 생기는 일. 똑 닮은 얼굴과 거의 같은 유전자. 내가 알지 못하는 아주 작은 차이로도 완전히 갈라져 분리될 수 있듯, 그들은 늘 서로 떠나 헤어질 위기에 있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