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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민 Oct 05. 2022

아빠가 사다 준 붕어빵

음식은 추억을 소환한다. 좋든 아니든

[한 남자가 퇴근길 한 치킨가게 앞에 멈춰 선다. 자식들 생각에 치킨을 한손에 사들고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현관문을 열자 아이들이 기뻐하며 남자를 반긴다]


90년대의 한 치킨광고는 어딘 나에게 만화만큼 비현실적이었다. 하늘같은 아버지가. 피곤한 퇴근 길. 치킨집에 들려. 자식들 주려고. 몸에도 안좋은 튀긴 닭. 을 #간식 으로 사온다고?  


나의 아버지는 딸인 나에게 다정하시지만 동시에 매우 권위적인 분이시다. 자식들을 위해 간식을 사오시는 일은 절대 없으셨다. 아니 우리 집안에서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자식새끼들이 가만히 앉아서 간식을 기대하다니. 아버지를 위해 뭘 사와도 모자랄 판에. 당신도 그런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겨울 저녁. 아빠가 퇴근을 하셨다. 현관으로 나가 인사를 드렸고 아버지는 꽁꽁 언 차가운 손으로 노란색 종이에 싼 무언가를 건네셨다.


"내가 퇴근이 늦어서 배가 너무 고팠는데 버스정류장에서 그게 팔더라? 아 근데 붕어빵 파는 여자가 낱개로는 안판다는거야, 하나 먹으니 달아서 못먹겠더라고. 너나 먹어라. 버리든지"


아빠가 생애 처음 사온  #퇴근길간식  

날이 추워 코트 주머니에 재빨리구겨넣은 듯 이리저리  모양이 짓눌린 #차가운붕어빵 


매년 겨울 붕어빵만 보면 그 시절 차가운 손의 긴 코트를 입은 아빠가 생각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감정으로 구겨진 붕어빵을 씹으며 "그럼 그렇지, 아빠가 우리를 위해 간식 따위를 사올리가 없지." 라며 엄마 앞에서 중얼거리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용돈으로도 사먹으면 될 그 붕어빵이 뭐라고. 엄마도 그런다. 그게 뭐 대단한 슬픈 상처냐고.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정서적인 학대를 당한것도, 집이 가난해서도 아닌데 그깟 붕어빵이 뭐라고. 


'아빠가 처음으로 나를 위해 사온 간식' 


의미부여를 너무 많이 한걸까. 

팥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팥빙수나 팥죽을 즐겨먹지는 않지만 단팥이 든 붕어빵만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겨울간식이 되었다. (크림이나 고구마, 치즈를 품은 괴상한 진화종들은 붕어빵으로 인정할 수 없다)  막 구워낸 따뜻한 붕어빵 봉투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하나씩 꺼내어 바삭한 꼬리부터 베어물면 기분이 참 좋다. 마치 어른이 된 내가 어린 나에게 사다주는 서프라이즈 겨울간식 같다. 


어느날 한 일간지에서 음식 관련 칼럼을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추억을 소환한다고 했다. 외할머니의 백김치, 친구집에서 시험공부하다 끓여먹은 라면, 매점에서 사먹던 미니 돈까스. 문방구에 팔던 피져(라떼들의 마이쮸). 겨울방학 마다 서울 사촌언니들 집에 놀러와 언니들과 함께 줄서서 사먹었던 명동교자 등등.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감정을 아주 빠르게 소환하여 현재의 우리를 위로해주는 힘이 음식에는 있다고 했다.


명동교자는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촌언니들과의 즐거웠던 감정과 기분을 재연해주는 음식이라 겨울마다 혼자 찾아서 꼭 사먹는다. 친구가 시험공부하다 끓여준 라면은 아직까지 그 맛을 유지하고 있었다.(칭찬한다 그녀의 라면 요리 센스를.) 


그 해 겨울 아빠로부터 구겨진 붕어빵을 받아들어 한입 베어문 순간 차가운 붕어빵은 요상한 기분과 아밀라아제와 뒤섞여 식도로 내려가 마음 깊은 어떤 곳으로 흡수되버렸다.  20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매 겨울마다 붕어빵 리어카를 찾아다니며 붕어빵을 사먹는다. 붕어빵은 여전히 맛있지만 그날의 기억을 매번 정확하게 소환한다. 아무것도 아닌 기억에 과도한 해석과 의미부여를 한 나 스스로의 징징거림이 매년 지긋지긋하다. 붕어빵을 사먹지 말아야 하나. 

 

나는 어릴때부터 주욱 젤리를 싫어하는데 만약 그날 아빠가 퇴근길에 젤리를 사다주었으면 지금쯤 젤리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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