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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Jun 08. 2023

아무것도 모를 때엔 그냥 친절하자

Be nice

랜딩 한 지 한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시간이 안 흐르는 듯 하면서 흐르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빨라진 시간은 언제나 하는 일 없이 보내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주변 사람들의 발걸음에 맞추다 보면 뒤처진 느낌에 좌절감이 같이 오게 마련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게 그 포인트다. 한국에 살면서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의 발맞춤에 따라가지 못해 스스로에게 숨막혀하는 그 모습.

우연찮게 만난 한국인 랜딩 동료들(?)은 하나 둘씩 뭔가를 하는 것 같고 황새마냥 저 만치를 걸어가고 있는데,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아무생각이 없고 싶은 때가 있지않나. 그런 동료들이 가끔 나에 대해 갸우뚱 하게 생각할 때면 갑갑해진다. 아. 이거였지, 내가 간호사들이랑 엮이지 않고 싶었던 이유.. 나는 대단한 그분들이랑 너무나도 달라서 그저 이 곳에 있는게 행복한 사람임을 깜빡깜빡 잊을 때가 있었다.


"언니, 제임스가 그러는데 언니 이제 한국인이랑 그만 어울리래"

오랫만에 통화를 하던 밴쿠버시절 만났던 동생이 내게 이야기를 했다. 그치, 그거지 이 곳에 blend in 되러 왔는데, 여기서 도대체 나는 뭐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울좋게도 LA엔 어딜가나 한국인이 있었고, 어딜가나 쉽게 한국 음식점을 찾을 수 있었으며, 누구의 말마따나 캘리포니아시 엘에이동이라는게 무색할 정도로 커다랗게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었다. 한국사람들... 함께 있음 좋은 사람들은 맞지만, 랜딩하자마자 애초에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싫어 누구나 추천하던 교회조차도 멀리한 나다. 밴쿠버에 갔을 때와는 다르게 영어가 또 늘었고, 늘은 영어로 판단한 동료 한국인들의 무례한 영어에 다소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아. 이럴땐 그냥 멀리할 때가 온 시점이었다. 나를 돌아볼 시기가 온 시점이었다. 

얄궂은 짜증이 삐질삐질 치밀어 오르고, 내가 항상 뒤처진다는 열등의식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차지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러했듯 나는 역시나 좋은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고, 질투와 시기심이 휘몰아 치기도 했었다. 못난 마음이 고개를 들 때면 이 후에 드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별것도 아닌거에 항상 과한 감정을 쏟고는 그 부끄러움을 감당하지 못할 때면,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게 된다.


아무것도 모를 때 캐나다에 갔을 때랑은 다르게, 이 곳에 생활하는 사람들의 언어 말투 표정 습관을 모두 어느 수준으로 인지하게 된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처럼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말을 걸기가 부끄러웠고, 그들의 행동과 태도를 살피게 되었다. who cares?라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싶어서 날아온 나는, 과거의 내 행동들이 꽤나 용감했다고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과거의 무지가 불러온 패기에 다름없었다는 사실에 또 좌절을 한다. 


그래서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살짝 방황을 했다. 이곳에서조차 사람에 치여 사람이 너무 싫었고, 누구와도 거리를 두고 싶었다. 현지 사람들이랑은 어떻게든 어울리고 싶었으나, 뭐 딱히 어울릴만한 소스도 없었다. 그나마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리프트 운전기사들이었다. 하루종일 한국어로 한국에 있는 친구랑 이야기하다, 한국에서 온 동료들과 이야기 하다, 한국에서 만든 유투브 컨텐츠를 보다가 겨우 영어를 쓸 수 있는게 리프트를 탈 때 뿐이어서 그 짧은 시간동안 스몰토크로 시작해 주구장창 영어 회화를 한다. 아랍에서 온 한 분은 영어를 못해서 연신 'sorry'를 외치며 운전을 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시작된 대화는 번역기 까지 켜 가며 어떤 대화를 하게 만들었다. 일하다 지친 그는 번역기를 켜자마자 자신이 전에 만났던 이상한 승객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짧게나마 아랍어로 감사인사를 전하고 내렸다. 다음에 알게 된 한 청년은 25살 짜리 기사였다. 이란에서 이민와서 동부에서 지내다 20살이 되어 서부로 와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였다. 건축 관련 학과를 나왔고, 졸업하고 나서 리프트 기사를 하면서 돈을 벌고 여행도 다닌다고 했다.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면서, 당신이 하는 일이 모두 잘되길 바란다며 서로 응원을 해 주었다. LA 지역선정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좋은 곳에 왔다며 따뜻한 환영 인사도 해 주었다. 이사갈 때 만난 호세는 멕시코 사람이었는데, 짧게나마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고 인사를 하자, 30분 내내 LA에서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것에 대한 강의를 해 주었다. 무엇을 해도 일자리가 많고 수요가 많아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DMV를 가는길에 만난 존은 좋은 음악취향을 갖고 있었다. 필기시험을 보러 가는 나에게 행운을 빌어주어 덕분에 합격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엊그제 집까지 운전해 준 제프는 듀드, 달링, 베이비 (언제봤다고 베이비야..)라고 하며 한창 고무된 억양으로 이야기 하곤 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와이프가 바람을 펴서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지고, 지금의 연인이랑은 크게 싸워서 다룰게 너무 많다고도 했다. 그 와중에 자기는 지금 아침부터 하루종일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데, 돈을 이렇게 열심히 벌어봤자 죄다 렌트비로 나간다고 하소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돈을 벌어 렌트를 페이할 수 있다는 것에 대단히 감사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지껏 내가 받았던 좋은 기운들을 어떻게든 나눠주고 싶어 그에게 앞으로 좋은일만 있길 기도한다고 인사를 했다.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냥 친절하면 될 일이겠다. 가끔 이곳에 와서 인종차별 비슷한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언어가 제대로 안될 때 혹시나 내가 아시안을 대표해 무례한 인상을 남길까봐 어떻게든 다른 애티튜드를 보이고자 했는데, 그냥 행동이든 말이든 친절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렇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고 말이다.. 다소 주변 사람들에게 시기심이 들고, 질투심이 날지라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다 자기의 발자국이 있고 자신의 시간이 있는 것인데.. 그냥 친절하면 될 일이었다 -하 이걸 또 이렇게 합리화 하는 내가 찌질하다고 느껴진다-


그래. 걍 친절하자. 아무것도 모를 때 걍 친절하자. 그리고 그 모두가 잘 됨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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