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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Jun 19. 2023

그냥 친절하면 될 줄 알았는데

왜 황당무계한 일들만 일어나는지

호사스러운 날씨가 가득하다는 엘에이는 내가 랜딩 한 이후 90프로 이상은 구름낀 하늘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곳 사람들도 이상하다 생각할 정도로 이상한 기온과 날씨가 지속되는 가운데, 잠시 벤쿠버 시절 함께 지냈던 동생을 보기 위해 시애틀 여행을 닷새정도 다녀왔었다.


여름의 벤쿠버가 환상이었듯, 여름의 시애틀도 환상이었다. 흐린날씨가 1년의 80프로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길거리에 사람들이 걸어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시애틀이 안전하고 좋아보였다. 닷새간의 여행 후 엘에이로 돌아왔을 때, 좀처럼 이 곳에 정을 붙이기 힘든 이유는 도대체 뭔지에 대해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다. 


우선 휴양지에나 있을법한 팜트리와 어울리지 않는 스산한 날씨가 한 몫을 했고, 함께 있으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동료들이 그러했고, 딱히 정 붙일 곳 있는 장소가 없다는게 그러했다. 말마따나 온 지 고작 한 달이 되었을 뿐이고, 이곳으로 이사 와서 제대로 지낸 지는 보름이 채 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옆 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상당히 이상했는데, 개인적으로 계속 연락을 한다거나, 개인사를 물어본다거나 원하지 않는 호의를 제공하고는 뭐하고 지내냐고 묻는 아주 불편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다소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분이 나간다기에 마음 속으로 제발 빨리 나가라 염불을 외는 중이었다. 게다가 요즘 들어서는 다른 방에 사는 사람들 험담까지 개인톡으로 해서 아주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오늘 낮 간만에 좋아진 날씨를 만끽하며 장도 보고 밥도 실컷 맛있게 해서 먹고 방안에 앉아서 디저트를 먹을까 하던 찰나였다. 냉장고에 우유를 넣으러 가야하는데 바깥이 계속 소란스러웠다. 듣자하니, 옆방 분이 새로 입주할 분을 데리고 왔고, 디파짓 관련해서 마스터룸 사는 친구와 뭔가 트러블이 있는 것 같았다. 궁금하기도 하고, 나도 우유를 넣으러 가야 하기도 해서 가만히 듣다가 좀 잠잠해지자 바깥으로 나갔다. 


옆 방 사시는 분이 자신 다음에 올 사람을 구해서 오긴 왔는데 이 집 계약이 8월 말까지라 본인은 나가는 날 디파짓을 바로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파트 렌트상 퇴실한 날 바로 디파짓을 받기는 어렵고 2주 정도 있다가 보통 디파짓을 내어주는데, 여기 마스터룸에 사는 친구들은 본인들이 집을 단독으로 계약한게 아니고 이전에 살던 사람이랑 다같이 나눠서 디파짓을 낸 거라 그렇게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퇴실 후 2주가 걸린다면 그 때 즈음 돈을 내어줄 수 있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나도 그렇게 알고 왔는데, 이분이 계속해서 미국에선 원래 그렇게 안한다. 나간다 그럼 돈을 바로 내어준다 하면서 계속 떼를 쓰는 것이었다. 그자리에 있던 분은 사실상 렌트 오너가 아니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답은 바로 못내어주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 뿐이었다. 그런데, 이분이 떼를 쓰는게 거의 고성방가 수준이었다. 나더러도 어떻게 알고 왔냐고 해서, 나역시 4명이 함께 묶여 있는 계약임을 알고 있고, 나중에 8월에 연장을 할지 말지도 모르는 수준이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혹시나 8월이 되어 제가 이곳에 있게 되면 친구랑 같이 take over할 생각도 하고 있다고까지 의견을 비추었으나, 모를일이긴 했다. 그러나 이분의 재촉이 '디파짓을 바로 줍니다'라는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았고, 같이 계시던 다른 분도 자신이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었기에 계속해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없다는 대화가 계속 되고 있었다.


듣자하니 옆방 사람이 너무 마스터룸에 계시는 분을 몰아세우는 느낌이었고, 그러던 중 집을 보러 온 분이 이 집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나가면서도 옆방분은 미국은 원래 그렇게 한다면서 나더러 미국에 오지도 얼마 되지도 않은 분이 왜 참견이냐고, 당신이 뭘 안다고 옆에서 거드냐면서 잘난척 하지 말라고 폭설을 하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나와 거실에 있던 사람은 동시에 벙쪘고,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이가 마흔은 족히 넘은 한국인 여성이 그렇게 까지 흥분하기도 쉽지 않은데, 정말 사납게 흥분을 해서는 폭설을 하고 나가더니 나에게 개인톡으로 계속해서 너때문에 망쳤다면서 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이야길 하냐는둥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딱히 할말이 없어서 죄송하다 했더니, 냅다 전화가 와서는 도대체 왜그랬냐고 또 소리소리를 질렀다. 내가 뭘해도 조용히 있는게 좋지 않았겠냐 어쨋든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죄송하고, 다같이 도울 수 있으면 돕겠다고 그랬더니 자신도 할말은 없는지 갑자기 말투를 걸고 넘어졌다. 말투가 왜그러냐 아주 건방지다. 하.. 


그리고 지금 4시간이 넘도록 그 분에게 일방적으로 욕설이 가득 섞인 메시지를 받는 중이다. 처음에는 반존대를 하다가 지금은 미친x, x발, 정신병자야 어쩌고 하면서 굉장히 공격적인 욕문자 세례를 보내는데 그러다 급기야는 너는 영어도 못하고, 미국에 온지도 얼마 되지도 않고, 직장도 없는게 라는 욕까지 가세해서 아주 나에대한 상상력이 굉장히 다분해지신 점 있겠다. 


사실 처음에는 이분이 총이라도 들고 오면 어떻게 하나 무서워서 친구에게 상담 요청을 했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언니 그러니까 내가 캘리포니아 가서 살지 말랬지..라는 말을 하며.. 나에게 캘리포니아에 정이 안가는 이유에 대한 근거로 초반 집문제와 지금 일어난 사례를 손꼽았다. 좋게 좋게 이야기 하면 좋게 좋게 풀릴 줄 알았는데, 이런 분들은 대화가 되는 분들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순간 데리고 온 사람 앞에서 우스운 꼴이 되었다는 사실과, 본인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악에바친 나머지 어떻게든 화풀이를 하려고 하는데 그 대상이 내가 된 것이었던 것이다. 


이 곳에 계시는 40이 조금 가까워진 혹은 이를 훌쩍 넘은 한국분들 중 건강하지 않은 분들을 벌써 두명이나 만났다. 미국인줄 알고 왔는데, 한국이나 다름이 없었고, 게 중에서도 상당히 아픈 한국이었다. 나에게 이렇게 욕을 해서 화가 풀리면 다행일텐데.. 어느 성인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다고 이렇게 만만해 보이는 상대에게 욕설을 할까. 단순히 내가 고만고만해서 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냥 친절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어떻게 살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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