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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Jun 24. 2023

고생 없는 정착기는 없나...

착하게 살면 바보가 되는 세상은 어디에나 존재하나...

큰 꿈을 갖고 미국에 온 건 아니었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겪어봤던 문제들을 겪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다시 살겠다는 마음으로 온 것은 어느정도 있다. 그러나 신이 사람을 창조할 때 모든 것이 쉽지 않았겠듯, 내가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일 때는 어느정도의 난파는 예상은 했었어야 했다. 


처음에는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한 마음과 달리, 공포심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더구나 그게 옆방사는 사람이면 더더욱. 


지난번, 상스러운 욕을 하고 나간 옆방 사람이 며칠째 집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그 뒤로도 계속해서 내게 욕문자를 보내왔었다. 야이 x발년아, 정신병자야, 너 때문에 내가 경제적 손해를 입었다 등등. 룸렌탈을 해서 집을 나가기 전에 다음 세입자를 구해야 함이 어른이라면 해야 할 책임일텐데, 새로 들어오기로 한 세입자에 대한 정보도 주지 않은채 막무가내로 들어와 디파짓을 당일 돌려달라고 해 놓고는, 이 경우가 왜 그게 자신의 경제적 손해가 되며 그로 인해 같이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게 다 너네 때문이라는 이상한 사고방식에 의문이 들 때 즈음, 나는 병동에서 많이 보던 환자들 중 조증 환자들이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이분은 말그대로 manic disorder를 겪고 있는 사람이라고 조심스레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공포스럽게 단체 채팅방과 전화로 쌍욕을 하는데, 40이 훌쩍 넘은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게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이렇게 나오는 것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의 질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탐구하거나 이해할 수 없이, 그냥 아픈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머리털 나고 처음 겪은 20대의 인턴들은 벌벌 떨고 있었고, 병동에서나 겪었지 일상생활에서, 것도 옆방에서 겪었던 나 역시도 어른답지 못하게 같이 벌벌 떨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집에 들어와서 그 여자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리면 방문을 잠그고 신발을 치우고 불을 끄고 없는 척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온 그여자는 엄청나게 큰 소리로 자신의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서 옆방의 x년이, 마스터룸에 그룹채팅 하는 년들이 x발 어쩌구 하면서 욕을 해댔고 그 와중에 내가 숨어서 웃을 수 밖에 없었던 문구는 '몰라, x발 내 주변에 간호사들은 다 제정신인 애들이 없어'라는 문구였다.


그러시겠죠... 환자분...


일상생활에서 manic disorder를 발견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든 그분을 자극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지만, 최대한 대화를 적게하고 그 상황을 피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였다. 그분이 혹시나 무슨 짓을 하지는 않겠지만, 만약에 타인의 신체를 해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을 간과하지 말고 언제나 안전하게 지내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최선이었던 셈이다. 그러려면 이분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게 어쩌면 가장 최고의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분 하나 때문에 세 명이 벌벌 떨고 지내는 것은 정말 너무 슬픈일이었다. 


그냥 사람을 구했다고 하고 이분을 내보내자고 내가 이야기 했다. 그리고 이 분의 성격상 당연히 금전적인 요구를 할 테니, 그냥 드러워서 그 부분은 내가 드리겠노라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화장실도 이분과 나 둘만 쉐어하는데 더 있다가는 내가 제명에 못살 것 같았다. 내가 도망가는 방법도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남아있는 이 두분은 또 어찌 살 것이며, 나 다음 오는 세입자는 또 무슨 죄냐는 생각이 들어 범 평화주의적인 결론으로 내가 조금만 손해를 보자였다. 어차피 혼자 살아도 이보다 배는 드는 돈이 들 테니, 그냥 내가 껴든 책임이라 생각하고 얼른 쫓아버리고 싶었다. 


인턴친구들은 너무 고마워 하면서, 옆방 매닉환자와 모든 대화를 차단한 나 대신 그 분에게 방을 빼달라고 연락을 했다. 뭐 아무래도 나는 사실상 리스들어 살고 있는 입장이니, 내가 뭐라고 할 말도 없기도 했고 말이다. 여튼 그렇게 연락을 했고 다행히 자기가 안 살만큼 돈을 주면 바로 방을 빼겠다고 했다그랬다. 정말 드럽고 치사해서 따지고 싶지만 드러우니 먹고 떨어져라 하며 돈을 건네 주었고, 원하는 대로 해 줬더니, 그분은 약속대로 방을 뺐다. 


그런데!!!

약속대로 열쇠를 두고 가지 않고 그대로 갖고 가버렸다.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키를 두고 가라고 그렇게 말을 했건만, 자신이 겨를이 없니 정신이 없니 하는갖은 핑계를 댄 채 지금 열쇠를 이틀 넘게 돌려주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와 인턴들은 사실 방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가 갈 때 까지 무서워서 머리털 한 쪽도 내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통화를 하면서 들어온 그여자는 짐을 빼면서 이전과는 다른 상당히 온화한 목소리로 집을 구하는 친구에게 이동네가 어떻니 저동네가 어떻니, 어디 쪽에는 호빠애들이 많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람좋게 내가 밥을 살게 어쩌구 하는데 가만 듣다보니 전에 데리고 온 다음 세입자와 한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마음 깊숙한 곳부터 울화가 치밀었다.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왜 이렇게 떨고 있으며, 내가 돈까지 써가면서 이 미친 사람을 이대로 치워버리지도 못하는 것이, 열쇠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너무 화가나고 짜증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에게 말했더니 아니 키를 받기 전에 돈을 먼저 주는게 어디있냐고, 그건 누가봐도 사기가 아니냐면서. 돈받으니 저러는 거지 하면서 된통 혼이 났다. (친구 T다..) 


하.. 정말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같지 않은건 알겠는데, 저렇게 미친 사람인줄 알고서도 공포심에 모두가 판단력이 흐려져 이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던 것이 너무너무 화가 났다. 정말 거지같은 인연이라 한시라도 끊어버리고 싶어서 키를 반납 안해도 그냥 무시할까 했지만, 이 분이 정말 키 가지고 주거 침입이라도 해서 이상한 짓을 하면 그날로 또 무슨 일이 벌어날지 모르는 거라 정말 텁텁 산중을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언니, 그래도 그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거야"

라고 다른 친구는 위로를 해 줬지만. 정말 내가 어쩌다 이렇게 무력감에 쩌들게 되었는지, 왜 나는 나 스스로를 변호하고 맺고 끊을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는지. 착한게 아니라 이건 그냥 바보나 다름이 없는 짓인데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정말 동굴로 들어가고 싶은 날이었다.


그냥 좋은 세상만 보고 살고 싶었는데, 조금 손해를 감내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고 그분들로 인해 나도 행복하면 그게 나은 세상일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뭐 미국와서 바보짓만 하다가 고생고생만 하는 것 같아서 정말 죽도록 내가 싫어지는 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누구도 나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는데 어쩌다 스스로가 이렇게 되었는가. 착하다는 말과 인정에 목말라서 한 행동들은 아니었을까. 그냥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와 놓고는, 내 마음대로 살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이 현실이 갑갑할 따름이다. 어딘가에서 봤다. 고생없는 정착기는 없다고.. 그래 뭐 이게 그 수업료라면 달게 받아야지.. 그냥 뭐 이게 어쩌면 나를 강하게 해 주는 일이라면 그렇게 견뎌야지. 이래서 사람들이 억세지고 못되어지나보다 라고 생각하게되는 그런 날들이었다. 평화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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