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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Jun 26. 2023

Thank you for the journals

that I have written.

LA에 오고나서 이상하리만치 우울감과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세상 톡톡튀고 발랄하던 나는 인생 일대 처음으로 일관된 무드를 갖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냉소적이었고, 어떻게 보면 상당히 염세주의적이었다. 나는 인생에 대한 희망과 욕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기도 했거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사는 삶 긍정적으로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살자가 목표였던 것 같다. 허나, 내가 그다지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학술적 목표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와 탐구였다. 이 생을 살아가는데 내가 가장 심도있게 탐구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나서, 열 살정도 어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가장 선망하는 영화를 공부한다는 친구는 내게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었었다. 즉문 즉답에 익숙한 나지만, 간만에 뜸을 들이고 대답을 했다. '음.. 그냥 그 때는 저 자신을 찾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20대 중후반 방황하던 시기에-하, 나는 방황을 안하던 시기가 없다. 늘상 인생이 고역이었다-썼던 글들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그 때도 나는 돈도 없고, 카페 알바하면서 부모님에게 혼나서 투잡으로 동네 병원에서 일을 하는 아주 요상한 사람이었다. 당시 팀장님이 내게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웃으면서 '엄마가 싫어해서요'라고 대답했었다. 혀를 끌끌차던 팀장님은 딸래미 시집이라도 보내려면 병원이라도 다니게 했어야 겠네 라고 이야기 했다. 그 때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떤 느낌인지 대충 감이 온다. 


아직도 나는 철이라곤 일도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 여전히 찾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음악이라고 말하곤 있지만, 이 곳에 와서 음악에 대한 열정도 창작에 대한 욕구도 모두모두 사그라졌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는 코로나 이후로 그냥 사라졌다고 보면된다. 나이가 들면서 현실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지난 몇 년간 나의 큰 목표는 오로지 '돈'을 잘 모아서 '미국'에 가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막상 미국에 와 보니 어떻냐고. 

글쎄다. 가능성을 갖고 왔는데, 스스로의 가능성을 스스로 옭아매고 있었다. 마트에 가면 이상하게 직원들이 인종차별 하는 것 같고, 누군가를 만나도 괜히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은 시선 때문에 주눅들어 있었고 움츠러져 있었다. 되려 영어도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못하는 것 같고, 병원일도 햇수로 만 2년 가까이를 쉬게 되었는데 과연 내가 다시 병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한참든다. 어제 통화를 한 친구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니, 그래도 한국에 있음 우리끼리도 그런 시선받고 같은 사람인데도 무시당하곤 하잖아. 그래도 여긴 나름 인종차별을 당할 수는 있지만, 어딜가나 똑같으니 너무 그런 걸로 마음에 담아두지마.'


그랬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동료가 그와중에 나를 위해 해 준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우연찮게 본 내가 썼던 에세이들에서도 내게 좋은 영향을 준 사람들의 말들이 다시금 크게 와 닿으면서, 어쩌면 내가 이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모든것이 바래질 때 즈음 한번 씩 돌아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럴 때 영감과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일기들이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20대의 나.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을 거친 나. 매 순간순간 힘들 때 마다 일기를 쓰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을 잘 견뎌내 주어서 너무 고맙다. 무너지고 싶었던 순간이 아주아주 많았었지만 잘 극복해 주어서 고맙다. 그때도 지금도 또 다르고 비슷한 형태로 아파하는 내가 그 때의 나를 보며 훨씬 어린 시절의 나의 용감함에 다시 힘을 얻는다. 


돈 한푼 없던 때, 피 뽑아 끼니를 해결하고, 고이 모아 삼각 김밥 먹을 돈을 체면 차리겠다고 버스킹 가수에게탈탈 털어 준 그 순간에도 그녀석은 여친도 있고, 노래와 기타를 치는 재능도 있고, 그리고 내가 준 돈으로 봄베이나 사 먹겠지라고 생각한 일기에는 실소를 멈출 수 없었다. 까짓것,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겠지. 맘 졸이지 말고 차근차근 해 나가보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잘 판단해서. 이젠 더이상 미룰 이유가 없잖나. 


용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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