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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Jun 30. 2023

결국엔 다 돈때문인가

돈이 문제였었나 내가 문제였었나.. 

같이 사는 친구들이 새로운 룸메를 구했다고 기뻐한 지가 엊그제였다. 매닉환자를 내가 돈으로 쫓아 낸 뒤 어린친구들이 내가 돈을 많이 부담한다는 사실에 부담스러웠는지 새로운 룸메를 구했다고 알려줬다.


이 집의 계약이 8월 말까지기 때문에, 나는 사실상 새로운 입주자를 받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2개월 단기로 살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했고, 지금 방에는 전 세입자가 두고간게 아무것도 없어서 누가 들어온다 한들 불편하게 살아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고맙게 친구들이 부담스러워서 사람을 구했다고는 했는데, 우연찮게 유투브에서 미국렌트사기 관련글을 공유해 왔다. 가만보니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랑 너무나도 똑같은 것이었다.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소개한 친구가 자신에 대한 신상정보를 이상하리 만치 제공을 하고, 그리고 사진까지 보내며, 타 주에 거주하고 있고 2-3주 뒤 입주 가능하다고 디파짓과 렌트비를 보내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체크 등으로 디파짓을 보내고 나면, 원래 금액보다 많이 보내어 차액을 달라 그러고, 그 체크도 무용지물 보낸 차액만큼 사기를 당하는 수법이었다.


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져왔다. 우리가 뭣 모르고 이사람을 받았으면, 렌트비를 내는 친구가 아무래도 이 사기를 당했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전형적으로 같은 패턴으로 접근해 왔으며, 아니 영어를 애매하게 하는 한국계 미국인이 어떻게 한국인들이 올리는 리스 사이트를 보고 연락을 줬는지 너무 놀랄일이었다.


한 순간 조금이라도 돈을 줄이겠다고 좋아했던 내가 한심했다. 그리고 불현듯 돌아보니 이게 다 돈때문인가도 싶었다. 미국에 정착하러 오면서 용감하게 천만원 들고왔다. 아무리 싱글이고 아무리 혼자 오는 거라지만, 천만원은 진짜 오바였다. 십년 전 워킹홀리데이때를 생각하며 정말 맨땅에 헤딩하면서 하나하나 이뤄갈 생각으로 룸렌트도 구하고 집렌트도 구했는데, 어떤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나마 구했던 룸렌트는 당일날 쫓겨나고, 그리고 이어 구한 집에서는 그 이상한 매닉 룸메를 만나서 지금 이사단이었다. 


도대체 뭐를 어떻게 해야 이런일이 오나 싶기도 했다. 이제 한국사람이라면 질려버릴 정도라 여기서 나가려고 해도 한국인이 하는 룸렌트나 민박은 도저히 못구할 것 같았다. 같이 랜딩한 동료들은 다들 사정이 괜찮아서 몇천불짜리 렌트를 혼자서 살기로 하기도 한다. 그래, 이게 다 돈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 세계에서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자신이 더더욱 슬퍼진다. 


오늘은 어찌어찌 스크리닝 인터뷰를 본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다. 아직 주면허가 승인되지 않은 상태라 어느병원에서 날 받아줄까 싶었는데, 애써 낸 레스토랑 알바는 죄다 연락도 안오는데 병원에서는 연락이 왔다. 얼마나 사람이 부족한지 내가 개떡같이 말을 해도 세컨인터뷰를 잡아줬다. 도대체 무엇이 너를 캘리포니아로 이끌었냐는 질문에 쓰잘데기 없이 마스터나 하고 싶고, 커리어를 쌓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무슨 전공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AI와 간호를 융합하겠다는 아주 뜬구름잡는 소리도 했다. 리크루터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급한지 이미 세컨인터뷰를 잡아주겠다고 말을 해서 그런지 영어도 개발새발 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나의 세컨인터뷰를 이렇게 잡아 준 것이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순간 기분이 좋아서 그길로 나가서 장도 보고 바깥을 한참 돌아다니다 왔다. 


그러나


사람 일은 한치앞도 모른다더니, 그렇게 렌트 사기에 꼼짝없이 당할뻔한 룸메들과 나는 오밤중에 비상회의를 하고 다시 룸메구인 광고를 올렸다. 풍파 속에서 닻도 없이 항해하는 느낌이었다. 그깟 돈. 그냥 내면 되는건데. 어차피 혼자 살아도 그만큼은 나가요 허허 하고 웃었지만, 그건 혼자살 때 이야기다. 그러니까 애초에 혼자 살 집을 구하겠다고 로케이터까지 고용하지 않았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으로 가고 싶어서 선택한게 이 방법이었다. 두 세달 손가락 빨며 놀게 뻔하니까 렌트비 아껴서 여행이나 다니자는 심보였는데, 여행은 커녕 차도 없이 그냥 혼자서 골골대며 지내고 있다. 


참나 이럴거면 그냥 맘 편하게 랜딩했을 때 두달에 5000불을 태우더라도 신축아파트나 들어갈걸. 아파트 원룸이 아무리 비싸도 그냥 들어갈걸. 뭣하러 몇 푼 아끼겠다고 이고생을 하는지.. 아니다 생각을 해보니 이게 고생같은 것도 비교대상이 없으면 괜찮았을 수도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나도 빠르게 정착을 해 가는 모습을 보니 낙동강 오리알 된 기분으로 남몰래 그들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중이다. 


돈 몇 푼 더 내는게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뭐라고 걔네 걱정을 하는지. 못났다 못났어. 


매일이 아주 롤러코스터다. 얼마 전 나와 비슷한 일들을 겪고 있는 친구가 그랬다. 

"언니, 그래도 나는 재밌어. 이걸 해결해 나가는게 너무 즐거워"

그래, 생각해보니 내가 나한테 질려서 그렇지, 좋은 경험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룸메는 때가 되면 구해지는 것이고, 마음에 드는 집이 단숨에 나타나지 않듯. 마음에 드는 사람도 그렇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삭히고 쓸려질련다. 죽으란 법은 없으니 그냥 그렇게 살아가 보련다. 돈때문이긴 한데 그래도 큰 사기 안당한게 어디야 하며 위로를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고생스런 정착기일테니 나만 그런게 아닐테다. 함께 사는 친구들은 곧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한국가면 이야기 할 에피소드가 참 많겠다면서 소소하게 웃었다. 나보다 열살은 넘게 어린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이 겪는 일에 비하면 또 아무것도 아니지 싶다. 생각을 해 보면, 내가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나는 또 왜이러고 싶나 싶기도 하다. 


그냥, 그래 계속 이렇게 멍청하고 착하게 살자. 그냥 이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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