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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Apr 02. 2024

미국 간호사, 영어를 꼭 잘해야만 갈까요?

미국 임상 6개월 차, 미국 임상의 근무 환경

일전에 미국 간호사를 준비하면서 본 어떤 유투버였던 것 같다. 

"미국 오시는데, 당연히 영어 잘하셔야죠. 영어 할 생각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면서 미국 올 생각은 하지마세요"라고 강하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을 봤다. 나는 그러한 선생님들에게 다소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영어가 공용어인 미국이란 나라에서 영어를 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올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말은 너무 자극적이라 생각했다. 흔히 알려진 인플루언서 선생님들은 다들 큰 병원을 나와서 영어도 굉장히 잘하고 너무나도 똑똑해, 미국 가려는 사람들의 장벽을 더 높게만 하는 것 같아, 혹은 너무 좋은 모습들만 보여주는 것 같아 멀리 했었다. 또한, 그정도도 못되는 사람들은 시도도 못하라는 건가 하는 생각에 자격지심도 스믈스믈 있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맞는 소리고, 자극적이라기 보다는 당연히 자극이 필요해 하시는 말씀들 일 수도 있다.


내가 미국간호사가 되기로 시도 한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미국으로 와서 간호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어쩌다 보니 지금 미국 와서 일 한 지 6개월 차고, 한국 임상과 비교해서는 너무나도 나은 나머지 친구들에게 미국행을 왕왕 권하고 있다. 그런 나의 모토는 '미국 간호사 뭐, 나같은 애도 했는데.. 해 보시죠'다.  


나는 대학시절 과내 전교 하위 20프로 였고, 학기가 끝날 때 마다 부모님 찾아가서 휴학하겠다고 울부짖으며 지냈던 사람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학교 졸업을 하고, 하고 싶은 것 하겠다고 알바만 하고 지내다가 너무나도 돈이 안되어 어쩔 수 없이 병원 들어갔는데, 그 이 후 할 수 있는게 병원 일 뿐이라 - 아니 병원 일이 그나마 몇번이고 그만둬도 다시 일할 수 있고, 들어갈 때 마다 임금이 보장되어 있어- 그렇게 근근히 임상경력을 10년 가까이 쌓아왔다. 


영어는 말도 못한다. 어릴 적 부모님의 영어 사교육 열품이 있었지만, 딱히 영어에 관심은 없었고 미드 같은것도 즐겨보지 않았다. 토익은 공부안하고 본 시험은 400점대였고, 학원까지 다녔는데도 겨우 700점맞는 수준이었다. 1년의 캐나다 워홀 경력이 있으나, 그건 옳은 영어가 아니었다. 그냥 개떡같이 말해도 영어로 말하는 자신감만 열심히 키워왔다. 그러다 캘리포니아로 오느라 토플 스코어를 만들어야 했고, 6개월의 은둔생활(영어 공부생활)을 거쳐 스피킹 26점을 달성하고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미국에 와서 일하는게 쉬웠냐고 물으면 전혀 아니다. 토플 26점은 정말 기적처럼 받았다 하더라도, 이 곳에서 영어를 쓰면서 일하는 것은 천지차이었다. 심지어 나이트 근무 싫다고 데이근무 지원한 바람에 매일매일이 영어와의 싸움이었다. 발음들도 천차 만별이라 닥터들에게도 여러번 물어가며 근무를 했고, 초반에는 내가 말을 자꾸 안듣는다고 생각한 차지널스와 엄청난 트러블도 있었다. 당시 나는 차지널스에게 울면서 '나는 당신 말을 안듣는게 아니라, 영어를 못해서예요. 커뮤니케이션 할 때 여러번 되물어 보는 것은 당신의 말을 못믿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알맞게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려고 그런거라고요"하는 시절도 있었다. 


미국에 오고나서 오히려 일할 때 말고는 영어를 안쓰다보니 영어가 더 쇠퇴하는 느낌이 들었고,(한국서 6개월 은둔생활 할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어만 보고 듣고 읽고 썼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된다는 사실을 이만큼이나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있다보니 쓰던 용어들만 쓰고, 닥터나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설명하는 것들을 귀동냥으로 들으면서 그럭저럭 카피해가며, 100프로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구색을 맞춰가며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몇 주 전 한국인 선생님이 새로 들어왔다. 스스로가 영어를 너무 못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영어로 말씀하는 것을 너무나도 챙피해 하셨다. 또한, 이 선생님은 입사 전 부터 계속 한국인이랑 꼭 일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는지, 경력이 1년도 채 되지 않는 나에게 프리셉터를 시키며 이 선생님과 함께 하루를 일하게 되었다. 


간만에 한국으로 일하게 되어, 한국어로 신나게 하루종일 떠들었는데, 아차차 이 곳은 미국이었다. 한국어는 상당히 마이너한 언어 중 하나로, 이렇게 떠드는 것들을 주변 동료들이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차지널스가 둘만 있을 때에도 반드시 영어를 쓰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해 달라고. 그러나 이 선생님은 나중에 조용히 내게 와서 자기는 영어를 진짜 못알아들으니까 중요한 거는 한국어로 해 달라고 다시 당부를 하셨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있을 때에는 영어를 쓰면서 근무를 했었다. 


선생님은 영어를 못하시는게 아니었다. 영어를 못했다면 이 병원에 면접을 보고 들어오실 수나 있었을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발음을 지적하면 어떡하나, 누가 욕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전혀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셨다. 나는 선생님께 '누구도 발음을 가지고 문제삼지 않고, 저 또한 당연히 그러하다'고 말씀 드렸다. 또한, 이곳에서 영어를 못한다고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씀을 드렸고, 당신이 못알아 들어 계속 되물으면 어쩔거냐는 말에 '그렇기 때문에 제가 있는거고,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있는거다. 몇번이고 물어봐도 좋으니 꼭 물어보시라'고 말씀드렸다. 당시 우리 차지널스가 '세상 어떤 질문도 멍청한 질문도 없다'고 말했던 것을 언급하며, 이 사람들은 정말로 기꺼이 대답해 줄 의지가 있다고 했다. 선생님의 걱정에 오히려 내가 아닌 현지 친구가 알려주면 훨씬 낫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한국인 끼리라 되려 더 걱정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그러던 오늘, 차지널스가 그 선생님의 프리셉터를 이곳에서 자란 친구로 바꾸었다.그리고 오전 내내 그 선생님을 알려주던 친구와 면담을 한 뒤 차지널스가 나를 불렀다. 

"내가 봤을 때, 저 친구는 너에게 너무 의지하는 것 같아서 오늘 다른 친구를 붙여봤어. 영어를 너무 안쓰려고 하는데, 혹시 둘이 있을 때도 영어로 이야기 한게 맞지?"

라고 물어봤다. 나는 맞다고 이야기 했고, 차지널스는 뒤이어 말을 계속했다.

"다름이 아니라,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다른건 괜찮은데 커뮤니케이션이 문제가 있대. 표현도 못하고 들을줄도 모른대. 아무래도 앞으로도 계속 혼자 일을 해야 하고, 여기서 계속 일을 해야 할텐데, 영어 학교를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는게 좋겠니? 앞으로 한국 드라마 보지말고 영어로만 된 것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내가 이야기 하면 또 너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까봐 그래서 그런데 네가 얘기 해 줄 수 있겠니?"

나는 아무래도 같은 한국인이고, 나보다는 혹시 차지널스인 당신이 말씀하시는게 어떻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차지널스가 ㅋㅋ 내가 지난번에 울었던 사건을 이야기 해주며 말했다. 

"너 지난번에 울었잖아. 그래도 괜찮아? 너무 좀 그렇지 않아?"라고 이야기하며 다시 한 번 권유를 했다. 나도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지 몰라 지금은 어렵겠다고 했고, 나중에 잘 말해보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차지널스는 나를 당신과 대적한 화끈한 한국인으로 기억하며, 내 반응을 보아 조심스럽게 살피는 듯 했다. 차지널스는 내게 적합한 타이밍을 알려주었고, 지금 당장 저들에게 가서, 프리셉터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한국으로 이야기 할건데 괜찮아?라고 물어본 뒤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셋이 있는 자리에서 차지널스 요청대로 물어봤고, 지금 프리셉터를 하고 있는 친구는 '괜찮아'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께 한국어로 "좀 어떠세요.. 오늘 괜찮으세요?"라고 물었고 선생님은 정말 터진 말문이 트이듯 한국으로 와다다다다 "오늘 쟤가 이거하라 했고, 저거하라 했어요..근데 이거 굳이 이렇게 해야해요? 저건 그리고 저렇게 하는게 낫지 않아요"라고 ... 그 친구 이야기를.. 했다.. 아이고.. 너무나도 당황한 나는 표정관리를 못했고. 한국어를 못하는 현 프리셉터도 대충 뉘앙스는 눈치 챘는지 "나는 오늘 이친구에게 내가 일하는 방식을 알려줬어. 다들 일하는게 다르지만, 나는 이런식으로 일하는 걸 알려준거야"라고 갑자기 이야기 했다. 하하..


갑작스럽게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기긴 했지만, 선생님께 영어로 너무 스트레스 받는거 같으신데, 잘하고 계시니 자신감 있게 말씀하시면 될거 같다고 그냥 에둘러 이야기를 하고는 그 다름이 아니라 차지널스가 댁에서도 영어를 쓰시고, 영어로 주로 말씀을 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해 주셨다. 한국드라마는 보지말고 미드 보시라고도 하셨다.. 그냥 본인이 직접 하면 너무 안좋게 받아들이실까봐 저더러 부탁을 하셨는데, 저도 혹시 불편하게 하진 않는지 염려가 된다고 했고 선생님은 '아 알았어요'라고 했다. 그러던 중에 또 현 프리셉터는 "내가 혹시 너무 빨리 말하거나 못알아들으면 몇번이고 말해 내가 다시 천천히 말해줄게"라고 이야기 했다.


여기서 나는 미국의 임상문화의 놀라운 점을 느꼈다. 언어와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이 한마디를 하면서 "이것도 못하냐"고 묻는 문화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친구를 더 잘도와줄 수 있을지"여러사람이랑 소통하고 상의하는점이었다. 내가 겪었던 한국의 임상은, 조금 부족하거나 느리게 습득하는 사람이 보이면 오히려 알려주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 사람만의 문제로 여기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문제 삼아서 그 사람의 부족한 점을 계속해서 이야기 하는 병든문화였다면, 여기서는 이 한마디 하는데도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고 어떻게 하면 기분이 안상할까 이야기 하고, 어떻게 하면 다른 소스를 주고 도와줄 수 있을까를 수 주에 걸쳐서 노력했다. 비단 그 선생님과 나와 일한게 하루 이틀은 아니었다. 3주가 넘는 시간동안 이 사람들은 지켜봐주고, 해결책을 계속해서 제시해주고 노력하길 바라는 점이었다. 


물론 내가 겪은 이 단편적인 일로만 미국 임상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일하는 병원은 이런 분위기인 점에 아주 놀라울 따름이었다. 당연히 이 곳에 있는 간호사들 대부분이 다른 나라 사람이라 의사소통이 항상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이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든 도와주고 이해하려고 해 준다. 너무 감사하게도 내가 언어로 걱정하고 있을 당시에 내 동료들도 여러번 다가와서 뭘 더 도와줄까. 뭘 더 해줄까 하고 물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여기서도 소통이 안되는 간호사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내 발음이 이상해서', '내 영어가 달려서'라고 자기자신을 깍아가며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내 발음은 이러하고, 너네가 알아서 알아들어 정도인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군소리 안한다. 그게 바로 다문화 사람들이 모인 미국이기 때문이다. 


유독 한국 사람들끼리 영어로 발음이 어떻네, 문법이 어떻네 하며 평가하는게 심했던 것 같은데, 나는 되려 그런 사람들이 같은 직장에 있다면, 그 사람들을 멀리하라고 하고 싶다. 그 누구도 당신의 발음이나 악센트를 가지고 뭐라그러지 않는데, 누가봐도 영어를 2외국어로 쓰는 우리 같은 사람들끼리 그러는 점은 정말 옳지 않다고. 


그리고 나도 이번에 배운거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는 우리만 아는 언어로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여 안되는 영언데 왜자꾸 영어쓰냐며 재수없어 하지 않는다면 더 좋겠다. 서로서로 도와가고 이해해 가고 이 곳문화를 존중해주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이들이 우리 문화를 존중해주듯이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이 곳에 와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내가 한국에서 이만큼의 경력도 있고, 아이브이도 이렇게 잘하는데, 이 곳에서 뉴그랫 취급당하면서 영어도 못하기 까지 하니 초반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그 모든 것을 내려놓는게 가장 힘들었다. 나는 어찌되었건 해외에서 일하다 온 간호사고,미국에 와서는 모든 것이 낯선 사람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5명을 봐도 날라다녔는데, 여기서 3명보는데 이것도 못한다니 하는 생각에 엄청난 좌절감이 밀려왔는데, 이 곳에서 나는 뉴그랫이다 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하면 오히려 맘이 편해지는 것을 몇 개월 일하고 알았다. 당연히 언어가 달리니 남들 1개 할거 2-3개 거쳐서 하는게 맞는거고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건데, 이런걸 못하는 스스로에게 자존심까지 상해했었다. 그러니 내려놓는 것. 영어건 경력이건 그냥 나는 그런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인 것이다 정도로 알고 다시 새출발 하는 마음으로, 수용하는 자세로 배우면 좋을 것 같다.


아직도 미국간호사 영어를 꼭 잘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영어를 잘하면 좋지만, 엄청나게 잘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 엄청나게 잘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 사람마다 모호하겠지만 내 기준은 자기가 식당가서 먹고 싶은 것 주문할 수 있는 정도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어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생존영어다 보니, 막상 일하면서 영어가 계속 느는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마시고, 일단 입으로 무조건 뭐라도 뱉는 연습을 하면서 하면 정말 매일 매주 매달이 다르게 달라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뭐든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오늘 하루도 이겨낸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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