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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Mar 18. 2024

해외에 오래 살면

외로움이 낳은 오만함일까

이민 온 지 8개월 정도가 되어간다. 근무를 시작한 지는 6개월 정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곳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을 굉장히 만족한다. 아직도 갈길이 구만리지만 급한 불도 끄고, 혼자 살 수 있는 스튜디오로 이사도 하고 이제 좀 살만해져서 친구들을 초대해 무료 에어 비앤비를 성의껏 제공할 수준까지 되었다. 


미국 정착 초기, 내 우여곡절을 들으며 '언니는 캘리에 왜살아?'라고 항상 묻던 시애틀댁 M양이 5일간 놀러를 왔다. M양은 나와 거의 10년지기로, 내가 10년 전 캐나다 벤쿠버에 있을때 덕을 많이 봤던 친구다. 지난해 6월 랜딩을 하고 할일이 없어 그 친구를 보러 시애틀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다른건 몰라도 그 때 좋은 구경 시켜주면서 시애틀엔 이런거 있는데 캘리엔 이런거 없지? 라며 시애틀 사랑을 열렬히 펼치던 그녀에게, 나도 이제 살만한 데서 살고 알고보니 캘리도 좋다고 소개도 해 줘야겠다 생각을 하며 기쁜마음으로 맞이했다.


M양은 캐나다를 포함해 북미 대륙에 산지 10년이 넘었다. 한국에 간 지도 10년이 넘었을 것이다. 항상 나에게 '언니 미국생활 하려면 이런거 알아야해', '언니 미국 살려는데 영어 그런식으로 하면 안돼', '언니 이런거 모르지?'하며 약간 기분이 나쁘지만서도 나름 꿀팁을 알려주어 그냥 좋은게 좋은거지 하고 허허실실 웃으며 '언니 너 말 잘듣지?'라고 하며 나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디에도 욕할 수 없어 혼자 끙끙대다가 해우소 같은 이 곳에 M양에 대해 5일간 함께 지내며 느낀 감정을 쏟아 부을 생각이다.


벤쿠버에 있을 때도 여기 저기 데리고 다니며 자랑하길 좋아하던 그녀 덕에, 꽤나 많은 정보를 얻었던 것 같아 한국에서 벤쿠버 가는 나의 친구나, 시애틀에 사는 친구를 직접 소개해 주기도 했다. 정말 불편하지 않으면 친한 친구 앞에서 친구 욕을 잘 안하는 나는 간혹가다 그 친구가 나에게 내 친구들의 안좋은 점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조곤조곤 방어를 해 주곤 했었다. 


이 친구가 가장 자신감을 가지는 부분은 영어, 자동차 관련, 혹은 일상 생활 관련 기술이 필요한 팁들이었다. 지금은 인스타 카트를 하며 지내는 친구라 마트 관련해서도 아주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공항에서 픽업을 하고 관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친구는 집에 탄산수가 있냐며 물었다. 탄산수가 있다 그랬더니, 자기는 시애틀 출신이기 때문에 코스트코 탄산수 외에는 안마신다고 했다. 내게 탄산수가 있었지만 브랜드가 확실하지 않아 그냥 코스트코로 향했다. 그 친구는 갑자기 물도 없지 않냐며, 내게 물을 한 박스를 사라고 했다. 그리고 과일도 맛있어 보인다며 과일도 집어 넣었다. 그래 오랫만에 온 친구 대접해 주자 라고 하며 실컷 사서 담았다. 그리고는 차를 보며 '나는 언니차를 보면 참 답답해. 이것도 왜 선을 이렇게 연결하며, 좌석은 왜 저렇게 해 놓은거야? 나 언니 좌석 좀 봐주고 싶다. 이대로 사고 나면 무릎 갈려' 하며 차 내부에 대해 자신이 더 잘알고 있으니 고쳐주겠다고 했다. 


조금 듣자하니 불편했다. 다들 자기 스타일이 있는데, 왜 이걸 굳이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고치려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M 양의 이런 태도는 낯설지도 않았지만, 그냥 별말없이 '아 그래?'하고 넘기고 말았다. 


집에 도착했다. 화장실을 쓰던 M양이 갑자기 짜증을 내며 나왔다. '언니 물 수압이 왜이렇게 약한거야? 언니 이 수압으로 세수하고 머리 감으면 진짜 엄청 오래걸려. 안되겠다 나랑 같이 내일 홈디포 가서 이거 사자. 내가 호스 바꿔줄게. 그리고 언니 이것도 좀 주문해줘'라고 내게 아마존 발매트를 보여주었다. 


갑자기 어이없고 황당했다. 나는 나름 고급아파트를 렌트해서 사는 중인데, 수압에 대한 불편함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방식도 마음에 드는데다 쓸 데 없는 물건을 사기도 싫어 발매트는 딱히 사지고 않았다. 수건으로도 충분히 잘 사용하고 있었기 떄문이다. 


나는 렌트한 아파트고, 굳이 호스를 바꿀만큼의 불편함을 못느꼈다고 이야기 했고, 발매트 또한 지금 당장 필요성을 못느낀다고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내가 써 보고 좋아서 추천하는 건데 이걸 왜 안사? 그리고 이렇게 머리 감으면 진짜 머리 다 상해. 언니 샤워시간도 훨씬 단축되고 내 방법이 훨씬 좋아'라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너에게 좋은 숙소를 제공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당장 바꿀 생각이 없고 불편해지면 그 때 바꾸겠다고 이야기 했다. '언니, 갈 줄 몰라서 그러는거야? 내가 갈아줄게'라고 이야기하는 이 친구에게 나도 한국에서 전셋집 살면서 호스 정도는 갈 줄 안다고 이야기 했다. 점점 이야기 하다 도가 지나치길래 웃으면서 '좋은 숙소가 되지 못했으니 별점은 1.0점 정도로 주세요~ 대신 숙박비가 싸지 않습니까?'라고 웃었다. 그랬더니 이친구가 아차 한듯 말을 바꾸었다. '언니 집이 이렇게 좋은데, 뭐가 안좋은 숙소야. 나는 언니가 더 잘 살고 이왕 사는거 더 효율적으로 살라고 알려주는거야' 나는 또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너가 사주지 그러냐 ㅋㅋ' 그랬더니 이친구가 또 입을 다물었다. 


그 날 이후로 나에게 집을 안꾸미냐고 계속 잔소리를 시전했고, 그러다 갑자기 연예인 욕을 한바가지를 하기 시작했고, 별로 유쾌하지 않은 대화가 계속 되었다. 생각보다 운전을 잘하니까 운전에 대한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일일이 다 응대했겠지만, 그러기에 나는 많이 여유로워졌다. 이친구와 내가 10년 정도 되는 관계가 유지되었던 이유는, 내가 크게 대꾸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워낙 성격도 쎄고, 자기 말이 다 맞는줄 아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 챙기는 것을 좋아해서 그냥 그런걸로 자신의 어떤 부분을 채우나보다 생각을 했다. 또 한가지 느낀점은 이친구 외롭구나 였다. 


나와 함께 있고 여행을 하면서도 내 말에 집중하지는 않고, 계속해서 다른 친구들과 카톡을 했다. 어릴 때는 이친구가 참 커보였는데, 지금보니 그저 어린 친구였다. 철없는 동생 다루듯 그냥 챙겨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유니버셜 스투디오를 같이갔다. 100불을 더 주고 익스프레스 패스를 구매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은 마리오 카트 같은 경우는 2시간을 기다렸어야 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VIP 패스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보다 먼저가는 것을 보면서 계속 열이 받는다고 했다. '쟤넨 뭔데 저렇게 가는거야. 하 열받아. 언니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효율성인데, 이렇게 기다리는건 진짜 효율성이 없어. 저 사람들 처럼 빨리가야하는데'하면서 기다리면 갈 것을 놀이동산이 으례 그럴것을.. 뒷사람이 조금이라도 먼저가는 것 같으면 자기도 그 앞으로 죽죽 가기 시작했다. 


나는 눈치를 보며 기다리자고 했고, 기다리면 어차피 다 갈것이고 우리의 시간은 돌아오게 되어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언니 저기 쟤네들 우리 뒤에 있던 애들인데 저기까지 간거야. 하 진짜 캘리사람 다되었네. 왜이렇게 느긋해?'라고 이야기했다. 친구야.. 이건 캘리사람이 아니라.. 도덕적 기준이 있는거야.. 그리고 저 사람들은 새치기 한게 아니고.. 일행이야..


그 뒤로 익스프레스 패스를 맘껏 이용하며, VIP의 기분을 양껏 누리더니 '하하 이제 좀 살거 같네'라고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직원들 말을 안듣고 자꾸 앞으로 가려는 그녀를 몇 번 멈춰세웠어야 했었지만 말이다.


다음날은 내가 근무가 있었고, 그 친구는 A라는 친구와 만나기로 했었고, 내가 일이 끝나면 그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픽업을 해 오기로 했었다. A라는 친구는 나와도 친구로 내가 M양에게 소개해 준 친구였다. 혼자서 우버태워 가는게 좀 미안해서 내가 내 차를 줄까했지만, 나는 엄연히 일을 하는 사람이고 차를 주면 내가 우버를 타고 직장에 가야하는 상황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투머치인것 같았다. 그래서 A양에게 혹시 M양을 좀 픽업해 줄 수 있냐고 넌지시 물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4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라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다. A양도 근무가 끝나고 M양을 픽업하는거라, 어렵겠다고 이야기 했고 나도 괜한 부탁을 해서 괜히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M양이 이야기를 했다. '언니, 진짜 웃기지 나같으면 이렇게 운전 좀 해서 와달라 그럼 아무 생각없이 와줄텐데, 이 친구는 운전을 못하거나 좀 하기 싫나봐'라고 이야기를 했다. 거기에 동조하기 싫어서 나는 '이 친구도 일이 끝나고 오는 건데, 힘들 수 있지.. 짧은 거리도 아니고 1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여튼 내가 근무를 빼지 못해서 미안해, 괜히 이런 상황이 생겼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아니 언니잘못은 아니고, 아니 뭐 그렇다고 '하더니 곧장 핸드폰을 들고 카톡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하는진 모르겠지만-


그러더니 다음날 A양과 함께 오랫만에 만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언니 보니까 A가 운전을 못하더라고. 걔는 진짜 주차 자리 빼는데도 한참걸리고 내가 봤을 때 운전하기 싫어서 나 안데리러 온 거 같아'라고 이야기했다. 


친구야.. 너를 픽업하고 샌딩하는게 당연한 우리 의무는 아니야.. 10분거리도 아니고 40마일이 넘는 거리인데 말이야.. 그치만 굳이 상대하기 싫어 냅뒀다. 다음날은 라스베가스로 가서 누구 콘서트를 보자고 했는데 콘서트만 100불이 넘었다. 그리고 나는 일을 했다. 도무지 안될 것 같아서 밍기적 거리면서 못가겠다고 이야기 했다. 하여, 같이 동네의 한식이 유명한 장소들을 돌아다녔다. 이곳에만 오래 살아서 한식이 제일 그리울테니 꽤나 괜찮은 한식집으로 모셨다. '이건 우리동네에도 있어' '이건 시애틀에도 있어' 하며 시애틀 사랑을 열렬히 시전하던 그녀가 간만에 조용해지던 순간이었다. 훗 캘리엔 이런것도 있어.


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이 친구의 하늘을 찌르던 우리동네 사랑과 하늘을 찌르던 오만함이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새벽 4시 공항에 가야하는 친구를 40마일이 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굳이굳이 새벽 3시에 샌딩을 해줬다. 이친구는 우버를 부르겠다고 했지만, 우버태웠다간 나도 A양 꼴이 날게 뻔했기 때문에 굳이 태워줬다. 사실 우버를 부를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차로 가는 순간까지 같이 가고 그 옆자리에 타서 입으로만 우버를 불러야 하는데라고 했다. 


이친구와 한 여행이 너무 힘들었어서 나는 어디에다 뭐라도 적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쓰는 바이다. 지난 5일 동안 이 친구의 잘난척과, 오만함을 들어주는 것도 모자라 한국 연예인의 가십거리 까지 계속 들어야 했다. 중간엔 너무 힘들어서 연예인 이야기좀 그만해 달라 그랬다. 여행을 하며 오랜시간 붙어있었지만, 자신의 취약함은 오픈하지 않았고 오로지 남에 대한 욕과, 연예인 욕과, 그리고 자신의 고국 욕으로 황량한 마음을 채우는 느낌이었다. 직접 자세하게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몇 가지의 정보를 토대로 보아 이 친구는 남편 외벌이로 지금 거주하고 있고, 누구에게 소개하기 싫은 집을 살고 있으며 - 자기 집이 아니라 초대를 안한다고 이야기했다. 모기지를 내는 집이 아니라 렌트비를 내는 집이라 그렇다며,,,,하하 그러나 렌트를 하는 나와 다른 친구들은 모두 초대를 했다.- , 인스타 카트 배달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있다. 미국에 와서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들을 욕하며, 한국의 모든 드라마와 쇼프로그램을 꿰뚫고 있으며, 모든 에피소드를 챙겨보고 있다. 심지어 여행 중 에피소드를 챙겨보느라 옆자리에서 계속 티비만 봤다. 여행 중 마트를 들리면 이 과일이 새로 나온 과일이다. 이게 제철이다 하면서 과일을 만지작거리며 먹지 않을래?라고 매번 물었고, 내가 안먹는다고 하니까 '자기가 좋아서 추천하는 건데 왜 안먹냐'며 나를 되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 그 친구의 '먹지 않을래?'는 '나 좀 사줘'인 것을 너무나도 잘알아서 이제 더이상 그렇게 하지 않기로 혼자서 마음을 먹었던 터였기에 그런것임을.


좋은 친구면 집을 얼마든 내어줄 수 있고, 운전도 얼마든 해 줄 수 있다. 다만 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준다면, 이 곳에서 쌓은 추억을 좋은 추억으로 가지고만 간다면 나는 그걸로 더할나위 없는 사람이었다. 이 친구 이전에 온 친구는 호텔비 아꼈다고 선물을 사오기도 했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선물을 바란 것인지도-. 아무것도 못하겠다면 가스라이팅 하면서 상대를 깍아내리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곳에 오래 살면서 생긴 외로움과 자격지심이 똘똘 뭉쳐 그녀를 그리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주변에 이렇게 베푸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르시스트인 그녀의 타겟은 항상 이 곳에 온지 얼마 안되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로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시늉을 하며, 그 마음을 이용해 자신이 마음껏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일테니. 나 역시 그러할 때 그녀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오늘 공항에 그녀를 바래다 주면서 나는 당분간 그녀와 연락을 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그녀역시 내게 연락을 취하기 미안할 것이다. 이왕 쓴거 더 쓰겠다!, 숙박비도 안내고 우버비도 안냈으면서 진짜 나한테 너 그럼 안된다. 내가 과일안먹거나 네 의견에 반박했을 때면 그대로 카톡 켜서 보스턴 친구라고 하는 그 친구에게 욕한거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집도 그렇게 바꿔주고 싶으면 너가 사놓지 그랬냐.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하찮게 보는 발언을 계속해서 하면서 자존감을 채우면 마음이 편하냐. 한국을 간지도 오래되었으면서 한국 욕을 그렇게 하는 것은 너가 그토록 싫어하던 이 곳의 누군가들과 닮아있다. 부디 너가 너의 취약함을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을 만났길 바란다. 너는 행복하다 그래도 네가 너무나도 불행한건 너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거라. 정말 뼛속까지 행복해서 더이상 다른 사람을 욕하면서 살지 않아도 네가 행복해 질 정도로 행복하거라!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말한다. 잘했다. 그리고 이렇게 쓰고 보니 더 안좋은 친구인 것 같다. 굳이 대놓고 뭐라지는 말지어도 이제 손절 쿨타임이 찼다. 손절할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다. 서서히 끈을 놓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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