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병원에서 일 한지 2년이 되어가고 있다. 랜딩 후 고생을 겪다가 직장에서 일하는게 마냥 행복했는데, 2년이 지나니 역시 나는 간호사가 안맞는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차고 올라온다.
2. 한국이든 미국이든 일하는건 똑같다. 그냥, 예전에는 영어가 피부로 와닿지 않아서 환자들이 f욕을 마구 쓸 때도 그냥 넘어갔다면, 지금은 그게 이제 피부에 와닿아서 정말 너무 열받는 일이 된다는 점이다.
3. 미국도 임상을 떠나려는 간호사들 천지다. 미국의 병원문화도 다른 직종에 비해 toxic하다고 하기도 하고, 한국보다 그 인정 수준이 높을 뿐이지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일은 맞다.
4.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을 하면서 깨달았다. 그냥 울고 싶은 날은 어디가서 울어야 하지.
5. 고요한 바람, 적적한 산책길. 원하는 삶을 딱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이리 어려운지.
6. 한국에서는 그냥 쉽게쉽게 했던 일들도, 미국에 와서 하려니까 다 일이다. 문자 하나 보내는 것도 큰맘먹고 보내야 한다.
7. 지금 행복한가 물으면 그렇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염세주의였고, 당장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 오니 자꾸만 삶의 끝을 붙잡고 싶고, 조금만 더 하는 욕심도 생긴다.
8.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 물으면, 이젠 그냥 좀 적당한 사람이 되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9. 항상 일을 열심히 해서 문제지만, 한국서 임상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다소 강박증이 있기 마련이다. 대충하자고 마음먹어도 열심히 하는데, 그런 부분을 몰라주면 그렇게 속상하고 억울하고 열이 받는다.
10. 부쩍 인생이란 뭔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다니는 병원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 아님 정말로 이 일이 안맞아서 그런거 같기도 한데, 거길 출근하려 하니 정말 숨이 턱턱 막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터가 안좋은거 같기도 하고
11. 일을 하다보면 어느순간 일이 늘은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더이상 조급해하지 않고, 무슨일이 있어도 그러려니 넘어가고, 그러면서 조금씩 더 많이 보는 순간이 있는데 처음에 일 할 때는 그 순간이 빨리오길 기다리면서 힘들어했던 것 같다. 역시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될 일인데.. 어딜가나 6개월을 버티는게 가장 힘든 것 같다.
12. 버틴다고 하지 말고, 앞으로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자. 오늘 챗지피티가 내게 해 준 말이다. 지피티가 나타나고 나서 정말 많은 것들을 의지한다. 이렇게 심신이 힘들 때도 참 큰 도움이 된다. 알아서 상담도 해주고 명상과 회복 루틴까지 짜준다. 앞으로 많은 것들이 대체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3. 옛날에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제일 힘든게, 환자들의 임종을 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 순간을 연장하고 줄이는 것은 나일거라는 아주 엄청난 착각을 했다. 그래서 그 하나하나에 스트레스 받고 하나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담고 지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그들을 잘 보살펴 주는 것 그거 하나가 내가 할 일임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는다. 그리고, 너무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어쩌면 DNR 이 그분들을 위해서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DNR을 제시하고 호스피스를 제시하는게 한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것 같아 너무 오만한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근데 그게 바로 전문가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싶기도.. 아무래도 그런 work ethic 은 너무 어렵다.
14. 항상 간호사가 아니라 뭘 해먹고 살까 라는 생각을 한다. 뾰족한 수들은 없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보면 안될까 싶기도 한데, 지금의 수입을 포기할 수는 없다.
15. 이 병원에서는 투잡을 하는 간호사들이 많다. 왜그런가 했더니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자식 키우려면 뭘 기대하냐는 식으로 묻던 친구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 나 혼자 벌어먹고 사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자식까지 키우려면 엄청난 돈이들겠군 하는 생각이 든다.
16. 역시 탈캘리가 답인가 싶다가도, 반짝이는 해를 보니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든다.
17. 랜딩 만2년, 이제 3년차로 접어드는데 새로운 일을 도모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자꾸 든다.
18. 그래 이왕 인생 2회차 사는 느낌으로 미국 사는데, 뭔들 어쩌리.
19. 워라밸, 발란스, 뭐 이런거 다 떠나서 나는 어쩌자고 이런 삶을 살고 있는지.
20. 하 그냥 너무 출근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