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수레가"
"요란하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혈기왕성한 소녀들이 왁자지껄 떠들 때면, 교탁을 세번 치시더니 '빈수레가'라고 외치셨고, 우리는 '요란하다!'라고 복창을 했었다.
이상하게 그 때의 기억이 머릿속에 강렬했는지, 한창 마음이 들뜨거나 말실수를 한 것 같을 때는 언제나 이 말이 떠올라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빈수레가! 요란하다!'라고 외치곤 했다.
한국에서 거주할 때 나는 남의 인생을 살고 싶어했던 것 같다. 쏟아지는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삶들, 그리고 그 높은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발버둥질치다 떨어지면 한없이 커보엿던 낙차들. 숨이 막히듯 빼곡히 끼어서 출퇴근을 하는 동안 옆사람이 핸드폰으로 무얼보는지 다 쳐다볼 수 있게 되었던 순간들. 그리고 거기서 보이는 것들이 옆사람에게서도 보이고 저 사람에게서도 보이고 그게 사회적으로 맞는 것인 줄 알고 살았던 순간들.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늘 이룬게 없는 것 같았고, 이곳에서 무얼 더 해도 아무것도 안될것만 같은 무력감이 종종 아니 아주 자주 머릿속을 치고 들어왔다.
친구가 LA에 놀러왔다. 한국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던 친구인데, 미국에 와서 무슨 마라톤을 하겠다고 와서 며칠 머물다 갔다. 이 친구는 나보다는 어린친구인데, 욕심도 많고, 자신이 하고 싶은 욕망을 기꺼이 숨기지 않는. 그래서 나를 찾은 이유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눈에 보여 이 친구와의 여행이 그리 기대되지도 않고, 내 역할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파악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충실히 5일간 그녀의 우버기사 역할을 하면서, 잠도 재워주고, 약속장소까지 픽업 드랍도 해주고, 러너들과의 뒷풀이 가는 시간을 맞춰서 관광 코스를 짜서 투어도 열심히 해줬다. 한 4일째 즈음 되니까 조금 힘들기 시작했는데, 5일 째즈음에는 제발 혼자 있고 싶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옆자리에 탄 친구는 나에게 깍듯이 예를 차린 말투로 이야기하곤 했지만, 차가 막힐 때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빨리 가고 싶다고 불법 유턴을 종용하거나, 관광지에서 불법 주차를 종용할 때 나는 타협할 수 없었다. 내심 나를 답답하게 생각하며 무시하는듯이 이야기하는 말투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나같으면 저기가 댈거 같은데, 아무도 신경 안쓸거 같은데 굳이 돌아가야해?'
나는 이친구가 이런 반응일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낮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것은 너를 위해 맞춰줄 수 있지만, 이렇게 법을 어기거나 무언가를 위해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나는 못할 것 같아.'
친구는 한숨을 푹쉬며 계속 인스타그램을 확인을 했다.
'왜 좋아요가 적지?', '이친구는 어딜간거야?', '아 얜또 여길 갔네', '난 왜 LA지? 얘는 하노이네'
이미 이친구의 성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운전만 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남의 눈을 신경쓰면서 오늘 가고싶지 않았던 관광지가 소셜네트워크에 올라왔다고 내일은 가야한다는 논리로 휙휙 바뀌는 이 어린 친구를 그냥 딸같은 맘으로 데리고 다녔다.
자신이 무언가를 찾으러 온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감사할 줄 모르고 남들에 비해 가지지 못한것만을 계속해서 불평하는.. 인생에서 중요한 롤모델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내적인건 생각해 본 적없고 오로지 외적인 것으로만 그 롤모델을 이야기하는 참 신기한 친구.
갑자기 중학교 때 선생님이 말했던 '빈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댕댕쳤다.
돈이 없어서 빚을 내어서 자신이 사고싶은 것을 모두 사고, 온라인 사진 포스팅이 훨씬 중요해서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으면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허영된 가치만 쫓는 사람이 바로 내 주변에 있었다.
이 친구가 비행기를 타기 전 나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함께 여행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자신이 걸어왔던 모습을 믿으면서 앞으로 가길 바란다며, 먼 여정을 응원하고 못난 스스로도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도 그대에게 응원을 보낸다고. 과연 이런 고퀄리티인 응원이 그녀에게 어떻게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과 안쓰러운 마음을 담아서 응원을 보내는바였다.
이친구와 비슷한 친구를 한명 더 본 적이 있다. 무슨프로젝트 같은것을 하는 친구였는데, 프로젝트의 취지와 다르게 스스로가 어떤유명한 사람과 일을 했는가를 더 많이 언급하던. 자신이 원하는, 추구하는 방향은 잡히지 않았고 그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 한 순간들만 계속해서 바래진 영광으로 여기며 뭔가를 계속 확장해가는. 그러나 내실이 없어 그 안에 들어가 본 사람들은 금새 실망할 수 밖에 없는. 그 분이 원하는게 '유명'한 프로젝트인지,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지.
이분들이 '유명'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디, 자신이 갈 길을 잘 걸어가길 바라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