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대하는 생각 변화의 필요성
연휴를 맞아서 혼자서 여행을 갔었다. 영험한 에너지가 나온다는 세도나.
세도나에 있는 각 볼텍스 나오는 지역을 모두 가 보는게 내 여행의 목표였다.
혼자서 6시간을 운전해서 아리조나를 갔고, 그곳에서 본 아름다운 시네마틱한 풍경에 너무나도 황홀하기는 잠시.
영험한 에너지들의 내 모든 신경을 깨운 탓인가, 추수감사절 연휴로 온가족과 놀러온 사람들이 많아 아이들이 활보하는 소리에 나는 극도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돌로 가파른 산을 올라가야 사람들이 말하는 그 에너지가 나온다는 곳 가까이 갈 수가 있는데, 말도 못하게 위험한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하이킹 코스 자이언의 엔젤스 랜딩도 다녀왔는데, 거긴 그래도 레일이라도 있었지, 여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 길이는 짧아서 금방 뛰어 올라가기만 하면 되지만, 요 근래 미국와서 등산을 많이 다니면서 깨달았다.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유독 산에서 더 심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나를 거쳐서 뛰어다니는데 정말 떨어질까봐 가슴을 여러번 붙잡고 주저 앉아있었다. 혹여나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계속 눈치보면서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기를 여러번, 한 군데를 다녀오면 녹초가 되어서 쓰러지기 마련이었다.
두 군데의 포인트를 갔다, Boyton Canyon 에 있는 포인트에 갔을 때였나. 다행히 그날은 아이들이 뛰어다니지 않았고, 등산객도 몇 없어서 조용히 산행을 가게 되었다. 가파른 암벽을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니 한없이 낭떠러지였다. 그럴 떄는, 내 발이 내딛는 곳과, 앞만 보면 돼 하는 마음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한 아저씨.
혹시 여기서 뭐가 느껴지냐고 묻는 내 우문에, 음양의 에너지 조화와 인간 자체로 우주를 갖고 있다는 책에나오는 구저같은 한말씀을 해 주신 분이었다. 그러면서 내게 저 앞에 있는 저 가파른 음의 에너지도 느끼고 가길 바란다고 했다. 아마 그에너지가 너에게 어떤 특별함을 건네줄지 모르지 하면서. 자기는 마저 올라가겠다고 해서, 좋은 하루 보내시라고 하고 할아버지를 보내 주었다.
그리고 나서 용기내서 음의 에너지를 찾아 떠났는데, 한 일본인 가족이 거기서 내려왔다. 내가 가는 길이 많이어렵냐고 짧은 일본어로 묻자, 그런데 할만하다고 했다. 애기들에게 너네들도 너무 잘했어 라고 칭찬해 주던 일본인 부모가 참 신기했다. 그래서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올라가보기로 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데, 어라 다 내딛다 보니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들렸다. 단소소리 같기도 하고. 카메라를 돌려보니 나에게 음양의 조화를 말해준 아저씨가 꼭대기에서 네이티브 플룻을 불고 있는거였다. 세상에 이럴수가.. 정신을 차지고 그 음악에 힘입어 다시 올라가보기로 했다. 근데 세상에 벽에 기대서 바닥을 보니 거의 낭떠러지 였다. 아니 그냥 나는 절벽에 매달려 있는 거였다.
그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지, 나 혼자 여기 왔는데 이 근처에 사람도 없네, 가만 여기서 내가 떨어져서 죽으면 나는 보험이 어떻게 되는거지? 가만, 나 진짜 어떻게 해야하나 여기서 한발자국도 못 움직이겠네. 그러다 바닥을 쳐다봤는데 정말 한길 낭떠러지 그 자체였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근데 그 때 오래 전 읽었던 책에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떨어지면 죽기밖에 더하겠어. 라고 생각하는겁니다
그래, 뭐 떨어지면 죽기밖에 더하겠어. 까짓것 그냥 안되면 떨어지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이상하게도 그 광활한 자연이 나를 품어주는 느낌이었다. 이상하게도 이대로 떨어져도 폭삭하고 이 자연에 품에 떨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중도에 포기하고, 음의 에너지가 나오는분에게 조용히 외쳤다. 정말 이 광활한 자연을 저에게 보여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저를 여기까지 올라오게 해 주셔도 너무너무 감사해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이렇게 세상을 알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는 다시 더듬 더듬 길을 걸어 내려왔다 - 말이 걸어 내려온거지 거의 엉덩이로 내려왔다- 그런데 또 길을 잘못 들어서 온 길과 아예 다른 길로 왔지만, 이상하게 거기서는 길을 찾아서 왔던 곳으로 갈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렇게 길을 내려와 그날 catheral rock 을 관광하고, 피자집에 가서 한시간 반을 걸려서 피자도 픽업했다. 피자를 픽업하던 길에 귀가 잘 안들리는 아저씨를 만나서 같이 기다렸는데, 아저씨가 이름을 잘 못들을까봐 같이 기다리며 알려주곤 했었다. 중간에 아주 무례한 질문을 하는 친구들도 만났는데,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람사는데는 다 똑같구나 했다. 아저씨가 여기는 작은 시골이라서 좀 이상한 친구들도 있는데, 익숙해 질거라고 이야기 하길래 나도 웃으면서 나야말로 그거 너무 잘안다고 자폭개그를 했다. 그 피자집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세도나의 에너지 떄문인지 집으로 돌아와서 지내는데 전혀 피곤하지가 않았다.
아니, 그간 내가 너무 찌들어 있었나. 오히려 에너지가 너무 살아나는 것 같아서 이게 뭐지? 하는 이상한 기분도 들었다.
나는 요 몇주간 일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했고, 감정적으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이일을 그만두고 잃어야 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컸고, 자꾸 들어가는 나이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내가 이 힘든것을 계속 감내하면서 같은 돈을 들여서 조금 더 높은 학벌로 가면 더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고, 덜 힘들 수도 있는데 계속 이걸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님 모든것을 다 버리고 그냥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 쫓아서 가야할까 하는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혹자는 내가 한국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오지 않았냐고 하는데, 나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향해서 온 것이라 그것과는 또 달랐다. 나의 한국 생활을 그리 대단하지 않았으며, 모든것을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나 다름이 없었기 떄문이다. 다행히 미국에 와서 그 삶의 질이 한국보다 나아졌다고 단연 말할 수 있고, 마음도 훨씬 편해졌다는 장점은 있지만, 내가 허슬하는 만큼 벌고 살게 되니 그걸 무시할 수 없다는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게다가 이민자로의 삶은 억척함이 생명이라, 그 억척함을 버리고 호화롭게 적성따윌 찾아가기에는 삶의 근간이 흔들리니까 그게 또 문제였다.
그 때, 무모하게도 고소공포증을 생각하던 그 순간이 생각났다.
그래, 뭐 굶기밖에 더하겠어. 조금 더 궁상스럽기 밖에 더하겠어. 그러니 뭐 함 해보는거지.
인생에서 comfort zone 을 벗어나기는 상당히 두렵다는 점 있겠다. 그런데 뭐, 이왕 하는거 함 해보는거지.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그 불안함과 불편함을 벗어나면 그 과정에서 또 얻는게 분명히 있겠지 하고 자기 위안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