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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d Kwon Aug 19. 2021

[작은 꿀벌처럼 맛집천재]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달리는 게 행복하다는 사람을 무척 좋아하게 됐어요. 매일 5Km의 조깅을 하며 같은 시간에 하늘을 찍어 보내줍니다. 그 사진을 보며 미소짓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생각해 보니 고등학생 무렵의 가장 친한 친구가 제게 “넌 왜 하늘을 보고 걸어 다녀?”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저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시선을 하늘에 두고 천천히 위 아래로 튕기듯이 신기하게 걷는다고 친구가 말했어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버릇은 스스로에 대해 모르던 부분을 깨닫게 해줬어요. 머리를 비울 일이 있으면 몇 시간이고 하늘을 보며 걷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을요. 그냥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눈은 항상 하늘바라기였어요.


입추 매직이라는 8월 8일을 며칠 앞 둔 월요일부터 해가 진 뒤 바람이 달라졌어요. 정확히는 해가 지기 전의 하늘부터 평소보다 아름다웠어요. 깃털처럼 길고 섬세하게 퍼진 구름 위가 연분홍색으로 조금씩 물들 때면 '명화의 아름다움도 이 일순간의 하늘의 아름다움을 흉내냈을 뿐이구나' 깨닫고는 해요.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 사람에게 공포감을 주지 않는 한국의 하늘에 놀라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은 하늘도 있다는 걸 영국에서 8년 간 지내면서 느꼈거든요.


걷는 걸 좋아하는 제가 영국에서 친구가 놀러 오면 늘 하던 장난이 있습니다. 웨스터민스터역 근처에 있던 집에서 런던 타워 근처까지 먼 길을 함께 산책한 뒤에 완전히 해가 졌을 무렵 런던 타워 쪽을 가르키며 “저길 봐!”라고 친구에게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친구는 고개를 돌려서 런던 타워를 보겠죠. 그 순간 남자건 여자건 어둠 속 런던 타워의 음산한 기세에 눌리고 말아요. “엄마얏!!”하고 소리지르는 친구도 있고 다리가 풀려버리는 친구도 있어요. 꽤 짓궂은 장난이지만 영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위도가 다른 날씨에는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포감이 있어요.



한번은 영국의 큐 가든이라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거대한 정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방문했었어요. 정원이 생각보다 너무 넓었어요. 폐장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와 걸음을 재촉했지만 정문까지 되돌아 가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폐장 방송에 발맞춰서 등 뒤로 고개를 돌린 저는 해가 저물며 새까만 먹구름과 어둠이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으며 몰려오기 시작한 광격을 목격했어요. 그때 느낀 감정은 주저앉고 싶을 정도의 공포였습니다. 망망대해 속에서 조각배를 타고 가다가 엄청난 크기의 빙하에 코앞까지 직면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대로 폐장되어 문이 잠기면 이 하늘 아래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어요. 대자연의 하늘이 주는 공포, 소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것 같은 공포를 영국에서는 쉽사리 느낄 수 있었어요. 밀려오는 먹구름의 공포, 안개의 공포는 수많은 영국의 문학 작품들이 세세히 묘사해줬어요. 산이 별로 없는 영국의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올라 보는 노을의 모습마저도 충격적일 정도로 장관일 때도 있지만 너무 격렬해서 무섭기도 해요.


그에 비해 한국의 하늘은 항상 온후하다고나 할까요. 태풍이 불 때도 품위 있는 사람이 내는 화처럼 크게 신경에 거슬리지 않아요. ‘이렇게 얌전하고 다정하게 화를 내다니’싶은 폭풍우예요. 한국 사람들이 광개토대왕 이후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던 건 온후한 하늘 아래서 빚어진 온순한 성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거칠고 성깔있게 사람을 옥죄어 오는 두려운 하늘 아래서 자란 사람과 화낼 때도 다정한 하늘 아래서 자란 사람은 성정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깨닫고 나니 하늘에 얽힌 추억이 와르르 쏟아져요. 매일 머리를 빗듯이 하늘이 제 마음의 결을 빗어주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미술 전시를 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 잘 시간이 모자라도 주에 1~2회는 꼭 전시회에 가곤 해요. 미처 몰랐지만 예술 보는 걸 좋아하기 시작한 계기도 위로받기 때문이었고 전시회도 가기 전 어린 나이부터 그런 위안을 얻은 경험은 하늘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나 해요.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내내 제 마음이 헝클어지지 않게 빗겨주고 있었던 셈이에요. 내일 출근길에는 고마워하며 마음을 빗을 수 있게 내어줘 볼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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