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id Kwon Aug 19. 2021

[작은 꿀벌처럼 맛집천재] 정당 털의 힘

몇 년 전 사랑에 빠진 일이 있었어요. 홍대의 작은 카페에서 저는 달래를 만났어요. 달래는 옅은 삼색털의 신비로운 옅은 녹색 눈을 한 브리티시 숏 헤어의 고양이예요. 이 친구는 아주 아주 예민하고 누군가 옆에 다가오면 피하기 일쑤였어요. 사람은 물론 카페 주인이 거둬들인 수많은 다른 고양이 친구들이 곁에 오면 한번도 빠짐없이 화를 내어 쫓아 보내곤 했어요. 수많은 고양이 친구 중 가장 맘 착한 고양이 한 녀석만이 근처에 가는 걸 허락 받을 정도였죠. 


저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예민한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게 됐어요. 홍대는 저희 집에서 왕복 3시간 거리예요. 아랑곳하지 않고 주에 서너 번은 늘 달래를 만나러 갔어요. 제가 신청하면 달래가 항상 받아주는 고마운 데이트였어요. 만지면 싫어하는 내색을 보여 싫어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삼 년 즈음을 상사병을 앓듯이 바라만 보았어요. 제가 바라보면 모른 척을 하는 이 예민한 친구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을 몰랐어요.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서 자주 화를 내는 것 같은 행동은 사실 겁이 많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겁이 많지만 의사 표현을 당당히 하고 항상 용기를 내는 고양이였어요. 


달래를 사랑하면서 제 마음 안에는 변화가 생겨났어요. 아무 조건도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일어난 변화예요. 예민하고 겁이 많은 달래를 마치 저 자신처럼 여기게 됐어요. 그리고 늘 의사 표현을 당당히 하고 용기를 내서 살아가는 달래를 바라보며 ‘나도 더 용기를 내야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친구를 아무 조건이 없이 사랑하게 된 스스로를 깨닫자 마음 안에 무언가가 녹아 내렸어요. 마음 속을 들여다보니 녹아 내린 건 저 스스로를 미워하던 마음이었어요. 달래를 만났을 무렵 이유도 모르게 가까운 친구들과도 거리를 두고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더 편했었어요. 주변 사람들을 좋아하는 데도 마음 속 깊이 제 부족함을 자책해 왔어요. 몇 년 만에 그렇게 작은 친구 옆에서 깨달은 거예요. ‘나는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구나’ 하고요. 그 마음이 있다는 걸 눈치채자 비로소 그 미움을 사라지게 할 수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의 오래 된 카페에 우연히 방문하게 됐어요. 그 곳에는 유기동물만 모아 데리고 지내시는 카페였어요. 홍대에 있는 카페는 한 복판에 커다란 나무가 있고 늘 변함없는 지브리 음악이 흘러나오는 아주 깨끗한 자연환경 같은 평화로운 곳이었어요. 반면 집 앞의 카페는 통유리창이 커다란 활기찬 곳이었어요. 새로운 장소에서 저는 사람들을 피하는 한 올리브색 고양이에게 눈길이 갔어요. 한 순간 그 친구의 몸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는데 사람을 피하니 곧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고 말았어요. 하지만 그 손을 얹었던 순간 놀람과 당황으로 눈이 커질 정도로 작은 친구의 털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어요. 깨닫고 보니 저는 마치 집 앞 카페의 종업원처럼 자주 카페에 가기 시작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 올리브색 고양이 친구의 몸에 잠시 손을 얹고는 눈이 커지면서 “왜 이렇게 부드러워? 고양이는 원래 이렇게 부드러운거야?”라고 말하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견디기 힘든 슬픔에 잠겨 집 앞 카페에 방문했어요. 방문을 잠그고 틀어박혀 나오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었어요. 혼자 카페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어요. 어느새 눈을 떠 보니 사람을 꺼리던 올리브색 고양이가 제 무릎 위에 올라와 있었어요. 평소 그런 일이 없던 여러 고양이들도 와서 저를 핥아 주었어요. 고양이는 무너진 사람의 감정을 아는구나 느꼈던 날이었어요. 사람이 비참하고 슬프고 연약할 때 그 감정을 느끼고 위로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그 날 느꼈어요. 


마음이 통했다고 느낀 날 이후로 어느새 저는 올리브색 작은 친구와 가까워졌어요. 애정이 생기자 상대가 궁금해졌어요. 이름이 뭐인지부터요. 사람들이 “꽁치야!”라고 부르길래 그게 이름인가 싶었어요. 그렇게 부르기 싫었던 저는 그간 한번도 그 친구와 통성명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참지 못하고 카페 주인에게 이름을 물으니 신기하게도 제가 알던 이름이었어요. 그 친구 이름도 달래라는 거예요. 


그 이후로 저는 아주 마음이 무거워지는 글을 읽어야 할 때면 어김없이 카페를 찾아가요. 이제 올리브색 달래는 다른 사람들을 피해 있다가도 제가 가면 제게 다가와요. 달래의 깜짝 놀랄 정도의 부드러운 털 위에 한 손을 얹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을 해결해요. 어느새 털이 제 마음의 근심걱정을 빨아 들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음이 괜찮아져요. 달래는 제게서 빨아들인 독소를 해소하려는 듯이 제 손을 얹은 채 새근새근 잠을 잡니다.


때로는 달래에게 말해줘요. 나중에 언젠가 달래가 토토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만큼 커지면 그 때는 저를 쓰다듬게 해주겠다고요. 달래라면 저를 함부로 만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제가 만질 때에도 함부로 만지지 않으려고 해요. 만약 달래가 커진다면 저는 달래의 아주 부드러운 털 위에 올라가 한 숨 잘 거예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며 올리브색 달래의 사진을 보던 친구가 늘 달래에게 못생겼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어느 날 달래와 무척 닮은 색만 다른 유기된 고양이를 입양했어요. 못 생기고 병이 있어서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것 같았다면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가면서요. 


작가가 생업인 친구는 생각주머니가 커서인지 늘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그런데 동거하는 작은 친구가 생긴 뒤로는 불면증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해요. 아무래도 이건 ‘털의 힘’ 때문이라고 털이 생각의 독소를 빨아들이는 것 같다고 친구가 저와 같은 주장을 폈어요. 저도 ‘털의 힘’ 정당을 만들어 달래를 정치계에 내보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어요. 달래는 정치계에 입문하기는 성정이 너무 부드러워요. 그래도 사람들의 근심 걱정을 확실히 달래줄 거예요. 털의 힘으로요.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꿀벌처럼 맛집천재] 따뜻한 휴일의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