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늦은 오후 그라운드 시소 서촌을 방문했어요. 스페인 사진작가 '요시고'의 전시 ‘따뜻한 휴일의 기록’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전시장 바깥 날씨는 후텁지근해서 다리에 감기는 레이온 바지의 감촉마저 평소보다 묵직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한발자국 안으로 들어간 그라운드 시소 서촌 안은 다른 공간이었습니다.
요시고 작가의 전시에 대한 감상은 한 마디로 ‘청량함’이에요. 폭염주의보에 지치고 습기 찼던 몸과 마음이 전혀 다른 에너지로 꽉 채워지고 기분이 고양되어 전시장을 나설 수 있는 전시입니다. 첫째로 작가가 전달하는 빛과 색감, 기하학적인 조형미가 미학적인 만족을 채워줍니다. 동시에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색테라피처럼 즉각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도 있어요. 둘째로 시각적 쾌감에 못지 않게 전시장의 선곡도 훌륭합니다.
2021년에 기획된 전시들은 오감을 사용해서 즐길 수 있도록 갈수록 발전하고 있습니다. ‘바이레도’의 ‘믹스드 이모션’의 향을 맡으며 따뜻한 온기와 성당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최랄라 작가의 ‘Feel Lost’ 전시처럼요. 향과 온도까지 느낄 수 있도록 세밀하게 기획된 전시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요시고 작가의 전시에서도 사진 뿐 아니라 공기에 녹아든 음악, 그리고 전시장 안의 습도와 온도에서도 청량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요시고 작가가 섹션마다 던지는 소개의 말들이나 인터뷰 내용은 전시의 청량함을 한결 더해줍니다. 촬영 장소를 바라보는 작가의 남다른 시선은 이 전시를 아름다운 시각적 이미지만이 아닌 전시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놀이공원을 촬영하면서 충동적으로 무질서하게 사진을 찍어 ‘휴가지의 혼돈에 빠진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휴양지로 떠올릴 법한 평화로운 해변에서는 ‘동물적 관광객(Animal Turista)’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해변을 채운 사람들을 ‘자연환경의 질감과 색상을 침략하는 자연의 포식자’라고 명명하기도 합니다. 자신도 분명 그 중 하나라고 언급하면서 말이죠. 따스해 보이는 작가의 고향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 지역을 찍은 사진에서는 알고 보면 차갑고 고독한 동네라며 ‘외로움과 향수(Soledad)’를 언급합니다.
요시고 작가의 관점과 소개말들은 제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과 감각을 일깨웠습니다. 전시를 보면서 영국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하루 종일 빛과 색감, 구도와 조형미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예술가와 큐레이터는 '구별'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예민한 작업을 위해 감각을 벼려내던 기억이 사막 아래서 물줄기가 샘솟듯 갑자기 흘러넘쳤어요. 그렇게 전시를 보다가 전시장 안의 관람객들이 구도를 형성하는 한 순간, 순간들이 머리에 번쩍이고 아로새겨지는 찰나가 있었어요.
가장 강렬했던 영감은 요시고 작가가 드물게 인물을 촬영한 일본 도쿄를 찍은 사진 코너에서 찾아왔습니다. 그 곳에 서있던 여성과 사진이 걸려있던 공간 자체가 한 순간 완성되는 행위 예술처럼 날카로운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전시는 제게는 어떤 관람객 구성이냐에 따라 인터랙티브하게 달라지는 전시였어요.
‘관람객을 시야에서 치우면서 보느냐 공간의 일부로 인식하느냐’는 요시고 작가가 관광객을 찍은 해변의 사진을 전시하며 했던 소개말과도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겠어요. 관람객들은 누군가의 시야를 침략하겠지만 저에게 있어 관람객들은 전시장 공간의 일부였습니다. 전시의 일부가 되어 움직이는 구조적인 존재들이었어요.
요시고 작가는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충동적이고 즉흥적이고 잡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소탈하면서도 쿨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건축물이 빛에 감싸이는 순간을 촬영하면서도 그 건축물이 무엇인지, 건축가가 누군지 모르거니와 검색할 의향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명쾌한 삶의 태도가 결국 전시회 마지막에 느낄 수 있는 기분좋아지는 청량함에 일조하는게 아닐까요.
저 역시 그의 전시를 저만의 방식으로 단순하게 즐기기로 했습니다. 서울의 플라뇌르(flaneur:한가롭게 배회하는 산책자)가 되어서요. 해질녘 다양한 빛이 감싸는 서촌의 사진을 실컷 찍었어요. 요새 가장 청량하게 느껴졌던 논노난니의 아이스크림처럼 산뜻하고 우유향이 가득 느껴지는 치즈를 그리시니에 듬뿍 찍어 먹으면서요. 요시고가 누구인지 더 검색하면서 보내는게 아니라 제 방식대로 삶에 녹이는 것. 이것이 오늘 제 ‘휴일의 따뜻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