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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d Kwon Aug 19. 2021

[작은 꿀벌처럼 맛집천재] 단점을 없애주는 요리사

합정동 조용한 골목 어귀 2층에 밤 하늘색을 닮은 주방이 돋보이는 식당이 있어요. 인연을 이어준다는 식당 ‘무스비’입니다. 가게 이름은 일본식이지만 요리는 조금 다릅니다. 자연에서 온 귀한 것들을 모아 뚝딱 뚝딱 세계 곳곳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식당입니다. 메뉴는 셰프의 추천 코스 메뉴 하나, 이 메뉴가 바뀌는 것은 달에 한번 뿐 입니다.

 

이 곳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소탈하고 건강해 보이면서도 매번 인상 깊은 킥이 있었습니다. 천혜향 카놀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탈리아 전통 디저트 카놀리에는 리코타 치즈가 들어갑니다. 리코타 치즈는 이탈리아 북동부서 만든 포슬포슬한 식감의 저지방 신선 치즈죠. 

 

저는 그간 내심 리코타 치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나의 식재료에 대한 가능성을 포기하는 건 안타깝지만 마음을 바꿔먹을 생각은 쉽게 들지 않았어요. 작게 보이는 취향 차이라도 그 사이에는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반 민초파에게 민초를 좋아하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블루 치즈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블루 치즈를 먹으라고는요? 취향을 뛰어넘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에요. 이런 취향 차이 때문에 음식은 사람들을 통합 시키기도 하지만 분리시키기도 합니다.

 

치즈에 관한 한 저도 강한 신념이 있답니다. 저는 강성 페타 치즈파입니다. 페타 치즈는 염소유로 만든  그리스 신선 치즈예요. 치즈 입맛도 음식 입맛 따라 가는지 음식 중에서도 그리스와 모로칸 음식을 제일 좋아합니다. 한쪽을 너무 예뻐 하다 보니 자연스레 애정이 치우쳤어요. 저지방 다이어트 치즈면 뭐하냐고 그간 은근히 리코타 치즈를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바꿔준 것이 무스비에서 먹은 카놀리입니다.

 

이탈리아는 여러 유럽 국가 중에서도 여행하면서 마음을 울리는 기억이 별로 없었던 나라였습니다. 다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와 관련된 나라입니다. 대부, 로마의 휴일, 죽은 시인의 사회를 제일 좋아하니 그 중 무려 두 영화나 관계가 깊죠.

 

대부에는 이탈리아의 음식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부 1편에서 마피아인 클레멘자는 부하를 시켜 운전 기사를 살해한 이후에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총은 두고, 카놀리는 챙겨.)”라고 지시합니다. 그 말대로 부하는 차 안에 범행 도구인 총을 던져 버리고 명령을 내린 클레멘자는 카놀리 상자를 집어 듭니다. 사람을 죽이고서도 가족이 부탁한 카놀리를 챙겨드는 비정함과 카놀리가 그만큼 맛있는 디저트라는 것을 보여주는 인상 깊은 장면이죠.  

 

대부 3편에서는 알 파치노가 연기한 '마이클'이 의심 많고 노련한 집안 웃어른인 '돈 알토벨로'를 독이 든 카놀리로 암살합니다. 의심 많은 노인마저 판단력이 흐려지게 만드는 맛있는 디저트, 그게 바로 카놀리인 셈입니다.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카놀리지만 몇 년 전 실제로 먹어 본 후의 감상은 ‘무거운 맛’이었습니다. 견과류가 들어간 묵직한 리코타 치즈의 맛이 영 입에 맞지 않아 맛만 조금 보고는 옆 친구에게 넘겨버렸습니다. 그런데 무스비의 유나리 셰프는 천혜향과 직접 제조한 가벼운 질감의 리코타 치즈를 넣어 산뜻하고 달콤한 카놀리를 보여주었습니다. 먹자마자 "카놀리가 제게 춤추듯이 다가왔어요!”라는 감상이 터져 나왔습니다. 리코타 치즈를 은근히 깔보던 제 마음이 그때 바뀌었습니다.

 

유나리 셰프가 자주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항상 식자재를 언급하며 “이 재료의 이 부분이 싫다”라는 말을 자주 하시곤 합니다. 저렇게 싫어하는게 많으신데 셰프의 음식이 취향마저 바꿀 정도로 맛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요.


이번 달에 셰프가 준비한 코스 요리의 첫번째와 두번째 순서는 직접 구운 피타빵을 곁들인 후무스와 삼치 버섯요리였습니다. 그리스 전통빵인 피타빵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빵 중 하나입니다. 얼마나 피타빵을 좋아하는지 피타빵에서 따온 피타라는 이름의 남성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소설에도 친밀함을 느낄 정도입니다.

 

‘절대 호’의 영역에 있는 피타빵과는 달리 후무스는 좋아하지만 항상 많이 먹지는 못하는 음식이었습니다. 병아리콩을 갈면서 함께 들어간 참깨 기름이 맛을 너무 무겁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스비에서 이번에 먹은 후무스는 다르더군요. 갓 태어난 아기 오리색처럼 고운 노란빛도 아름다웠지만 맛도 탄성이 나올 정도로 부드럽고 고소하면서도 무겁지 않았습니다. 콩을 잘 삶고 잘 가는 데에도 특별한 수준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후무스였습니다.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참깨 기름은 첨가하지 않고 대신 최상급 올리브 오일을 넣으셨다고 귀띔해주셨어요. 맛이 어찌나 가벼운지 같이 간 친구는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간 후무스를 매운 사과같다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셰프는 먹고 남은 피타빵을 자신있게 삼치 기름에 찍어 먹으라고 추천해주었습니다. 삼치는 껍질부터 가장자리 끝 어느 한 부분까지 비린 맛이 하나도 나지 않았어요. 아주 촉촉하고 기분 좋은 구운 향만 났습니다. 가시도 전부 발라져 있었습니다. 끝부분이 가장 맛없고 비릴 것이라 생각해서 그 부분부터 손을 댔는데 이 용기는 의미 없었습니다. 비린 면모는 찾아볼 수 없고 젠틀함만 보여준 완벽한 성인군자 삼치였어요.

 

 위의 두 요리를 먹고 나자 기름은 다 빠져나가고 단맛으로 꽉꽉 차 있는 가지 멜란자네가 나왔습니다. 이탈리아산 빵가루를 듬뿍 얹어 주신 초여름향이 듬뿍나는 조선 호박 파스타, 시기를 따져 한 알을 섬세하게 골라 주신 구운 자두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서야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이 재료의 이 부분이 싫다”라는 말의 의미가 ‘그 단점을 공들인 노력으로 모두 없애버리겠다’는 뜻이라는 걸요.


이 날 먹은 모든 요리는 사용된 식재료를 싫어하는 사람도 먹을 수 있는 각별한 맛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를 못 먹는 사람도 이 곳의 회를 잘 먹었다는 평을 종종 들을 수 있어요.

 이렇게 모든 단점을 없애려면 5-10배의 공을 들이는 시간과 제철 재료가 아낌없이 필요하다는 걸 압니다. 모든 요리들은 최상의 맛을 위해 조금이라도 맛이 빗겨간 재료는 전부 버리는 사치스러운 실험같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끊임없이 조각을 반복해 만들어낸 미술 같기도 했습니다.

 

 “~~가 싫어”라는 말은 잘 하지도 않거니와 좋아하지 않던 표현인데요. 싫어하기 때문에 들여다 보고 살펴서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 더운 여름에 노고를 아끼지 않는 셰프를 생각하면 마음이 온화해집니다. 아니면 맛있는 걸 먹어서 온화해진 것일 수도 있어요. 요리를 먹으며 이렇게까지 모든 단점을 살피고 없애 주신다면 저의 인간적인 단점도 맡겨서 없애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나도 스스로의 싫어하는 점을 좀더 직시 해보자’란 생각도 했습니다. 들여다 보고 살펴서 고칠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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