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Building
자랑스럽게 학교 Dispatcher에게 Flight Plan을 적은 종이를 건냈다. 사전에 비행기를 미리 예약했기 때문에 플랜만(이라 하지만 실질적으로 ATC에 제출하는 플랜은 아니기때문에 Operational Plan과 같다) 제출하고 항공기 키(자동차와 같이 키를 돌려 엔진시동을 건다)를 받으면 됐다. Dispatcher인 Danny가 나에게 말하더라.
“너 어제 PPL 따고 오늘 처음이지? 바람이 많이 부는데 비행하러 나가기 괜찮겠어?”
“괜찮아, 이런 바람보다 더 심할때 교관이랑 많이 탔었고 ATC는 전혀 문제없어”
“Are you sure? 그래, 자격이 있는 조종사니까. It’s up to you”
사실 여기서 조금 기분이 나빴다. 정식적으로 자격증이 발부된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는게, 당시 표정과 말투로 느끼기엔, 걱정한다는 느낌보단 ‘처음인데 정말 자신있게 혼자 나갈거야?’ 라는 늬앙스였다. 나에겐 ‘기분 좋게 나가려는데 왜 초를 치는거지?’ 라는 느낌이 강했어서 속으로 불쾌하긴 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지금에서야 ‘내가 어떻게 비행하는지, 외국인이기 때문에 영어가 힘들기 때문에 교신이 힘들수도 있어서 확인차 물어보지 않았을까? 내가 반대의 입장이라도 당연히 물어봤겠지’ 라고 이해하겠지만 당시엔 아니었다. 교관에게 말했더니 이러더라
“내가 말했지! 넌 다섯가지 hazardous attitudes 모두 가지고 있다고”
Imvulnerability, Impulsivity, Macho, Anti-Authority, Resignation.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항공기 사고나기 십상인데 교관은 반농담, 진담으로 이런 모습을 나를통해 전부 볼 수 있다고 하더라. 그저 웃지요. 하하-
그렇게 나만의 첫 비행은 솔로비행때 갔었던 Midway Regional Airport(KJWY) - Corsicana Municipal Airport(KCRS) 찍고 돌아오는 것이였다. 지형이 익숙한 상황속에서 내가 원하는대로 조종해보고 싶어서였다. 자동차를 사면 성능도 테스트하고 길들이는것과 같은 의미다. 매번 비행했던 훈련공역도 근처라 돌아오는 길에 들려 비행 기동 훈련을 할 수 있어 좋은 경로였다.
혼자 비행기를 몰고 나가면 신경쓰이는게 있다. 내 눈엔 도저히 찾기 힘든 다른 비행기들…다른 항공기들을 찾고, 회피하는것. 넓디 넓은 미국의 땅엔 대부분의 구역이 E, G 공역이다. 시계비행 항공기가 도시를 벗어나는 순간에는 대부분 E, G 공역이기 때문에 관제기관과 교신할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그래서 매번 창밖을 보며 눈이 빠지게,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항공기를 찾으려 노력하는데, 훈련비행을 나갈때 가끔 이런 비행기들 떄문에 회피기동을 하기도 했다. 내 옆에 탄 교관은 이런 일들이 종종 있어 안전을 위해 항상 첨단기술을 사용한다.
바로 ADS-B System을 이용하는 것.
미국은 2020년부터 레이더 시설 등의 유지비용 감소, 안정적인 항공기 감시/관제/정보제공과 조종사간의 상호 정보교환 목적으로 특정 지역에서 ADS-B OUT 장비를 의무 장착하도록 법제화했다. 하지만 항공기의 정보를 발송하는 ADS-B Out만이 의무이기 때문에 정보를 받기 위해서는 ADS-B IN 장비를 따로 장착해야 한다. 항공기에 장착하는 ADS-B OUT 장비는 $1500 부터 시작하고 정보를 송신하는 장비기 때문에 ADS-IN 장비를 따로 장착하거나 휴대하지 않은 조종사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 교관과 나는 항상 비행할 때 휴대용 ADS-B IN 장비를 사용한다. 기기에 따라 $400 하고 되팔때도 수요가 많기 때문에(미국에서는 워낙 GA시장이 크다) 제값에 다시 팔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비행해 본 입장으로선 꼭 이 장비를 구매하라고 권한다.
내가 사용한 제품은 ‘Scout’ 라는 ADS-B Receiver.
생긴건 내 휴대폰보다도 작은 장비인데, 여기서 주위의 항공기 정보, 기상 등의 정보를 수신해 항공정보 어플리케이션인 ForeFlight에 연동해 제공해 준다. 미국의 일반 항공(General Aviation)시장은 거대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기술과 상품, 정보들이 많다. 특히 내가 주로 사용했던 어플리케이션인 ForeFlight는 아이패드 하나에 기상 확인부터 입력된 비행경로 확인, ATC에 비행계획서 제출, 차트도 자동으로 최신화 시켜주고 열람하며 실시간 항공기 위치 제공에 TCAS의 TA 기능까지 제공해준다. 완전 기똥찬 제품!
한국에서는 안타깝게도 이렇게 한번에 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없다. 대신 국토교통부의 UBIKAIS 홈페이지를 이용해 NOTAM, 기상, 플랜 제출 등을 할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 비행 중에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 한국에서 일반 항공분야로 비행하기엔 너무나 야박하다. 주말에 자동차 드라이브 처럼, 편하게 비행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으련만.
Time Building 은 말 그대로 조종사에게 필요한 비행시간을 쌓는 과정이다. FAA에서 규정한 상업용 조종사, Commercial Pilot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250시간 이상의 비행시간을 가지고 있어야하는데 Instrument Rating(계기비행한정)을 취득하는데 필요한 Instrument flight-time 은 35시간이다. 통상 계기비행한정을 취득하면 많아봐야 150시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업용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선 100시간을 더 쌓아야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이 시간을 쌓는 동안에 정말 가보지 못한 곳까지 나가려고 한다. 평소에는 가보지도 못하는 West Texas의 Lubbock, South texas의 Austin, San Marcos, Houston 지역과 남동쪽의 Louisiana State, 북쪽의 Oklahoma State 까지. 해가 지기전에 돌아와야 해서 착륙하고 FBO에서 잠깐 쉬고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가끔씩 그쪽 지역에 내려 한적한 시골 감성을 느껴볼때가 많다.
적게는 1.5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까지 조종을 하다보니 장거리 구간에는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쉽다. 다른 항공기를 찾기 힘들어서 이럴 경우 ATC에 레이더조언을 요청한다. 내가 원하는 지역까지 관제사들은 주어진 관제 공역에서 각각의 관제시설로 나를 넘기며 주변 항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영어도 쓰고, 적막한 하늘에서 오디오도 채워주니 감사한 분들이다.
비행하는 동안에는 정말 많은 생각과 이야기가 오간다. 나도 50:50 비율로 혼자 타고, 아는 사람들과 같이 탔다. 주로 같은 시기에 비행을 시작한 형과 같이 날다보면 조종에 관한 이야기부터 인생사, 고민까지 아주 다양한 이야기 주제가 아울러지는데 이런 이야기를 통해 나의 주관성과 자존감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같은 비행학교에 비행했던 형들은 조종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해 나보다도 더 다양한 삶을 살았기때문에, 나보다 더 큰 관점과 시각에서 조언을 해주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종종 내가 바라보는 시각들이 편향적이라는것을 무척이나 많이 깨달았고, 다들 미국에서 똑같은 고생을 하다보니 서로의 에피소드들을 밤새도록 이야기하며 두터운 관계가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이야기를 나눌땐 그런 맛이 없어서, 미국에 있을때가 오히려 더 기억에 남고 즐거웠다고 다들 말하더라. 나도 정말 미국에 있을때가 좋았다. 오죽하면 어머니가 최근 이야기했을때 ‘미국에 보내길 잘했네-‘ 라고 했을까…?
200시간이 쌓아갈 무렵, 나에겐 하나의 큰 미션이 있었다. 최소 300NM 의 두 곳의 기착지를 둔 장거리비행을 해야하는 것. 상업용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위의 요건 외에도 여러가지 요구사항이 있어 타임빌딩때 위 요건을 적절히 충족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한다. 이것 때문에 상당히 진귀한 에피소드도 가졌는데, 추후에 다루기로…^^
출발지로부터 최소 직선으로 250NM의 거리를 가진 중간 기착지와, 최종 목적지까지의 거리 모두 300NM이 되어야하는 장거리 비행을 계획하다보니 다시 출발공항으로 돌아오는데는 500NM 정도의 거리를 계획했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생각하며 항공지도를 뚫어져라 보는데 서쪽의 묘한 곳이 보였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같이 생긴 곳. West Texas 다.
사막의 느낌이 물씬날것 같은 서부텍사스는 예로부터 카우보이의 배경이기도 했다. 우연찮게 초등학교 학예회때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전통춤을 추었던 나로써 미국의 사막은 꼭 한번 가보고싶은 곳이었다. 이번 비행이 아니면 갈 수 없는 특별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비행 전부터 신이 났다. 사실 이런 장거리비행에 걱정이 더 많아야하는데 비행 경험이 올랐을만큼 오른 수준이었고, 평소처럼 비행계획을 하면 되었기 때문에 별 걱정보다 기대가 컸다.
미국에서 항공선진국이라고 느낀 여럿 이유중 하나는 바로 조종사들에 대한 서비스 제공에 대한 접근성과 품질이었다. 앞서 말한 ForeFlight 뿐만 아니라 1-800-Wx-Brief 로 전화를 걸어 직접 비행전 특이사항에 대한 브리핑도 받을 수 있고 Leidos사의 1800wxbrief.com 을 이용하면 브리핑 뿐만 아니라 비행계획서 제출까지 가능하다는 점. 항상 비행 시험이 있을 때 필요한 준비를 자동으로 정리해주기 때문에 내가 자료를 찾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여담으로 정말 정리를 잘 했는데 한번도 제대로 본 DPE가 없어서 슬펐다… 그래도 여러번 이 서비스를 사용하며 도움이 많이 되었어서 한국에서는 이런 서비스가 정말 그립더라.
비행기도 가는 중간에 퍼지면(고장나면) 골치아프기 때문에 가장 튼튼하다고 생각되는 비행기를 사전에 몇번 타보았다. 극한(?)의 수준으로 비행기를 몰아보고 전혀 이상이 없다고 느껴지는 비행기를 선택하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5시간이 넘는 시간을 나와 같이 동고동락 해야하기 때문에 기체점검도 자세하게 했다. 그리고 중간기착지에서 기름과, 무료 차량 렌트(대부분의 공항에서는 무료로 차량을 빌려주는 Courtesy Car 서비스가 있다)제공 여부, 그리고 공항에 대한 이용자들의 Commentary를 면밀히 살펴본 후 Lamesa 에서 먹기 좋은 식사, 경치를 찾아보는것으로 준비를 모두 끝냈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가 완벽하더라도 하늘 앞에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우리이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 날 날씨가 좋기를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