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2010년은 나의 30대다. 돌아보면 공자맹자님 말씀보다 30대의 나에게 좋은 글을 가져다주고 깨닫게 해 준 책이 있으니 바로 좋은 생각이다. 특히 시인들의 시 한 편, 발행인 정용철 님의 좋은 글, 도종환의 산방일기, 또 이태수 생태화가님의 그림과 글도 너무 좋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한 그림과 글이 있었다. 좋은 생각 맨뒤에 하얀 부분에 채워진 판화였다.
바로 철수생각이다.
이철수 판화가의 그림과 짧은 글은 깊은 명상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길'이었다. 불법복사를 하여 카드를 만들어서 주변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때 자주 사용했다. 읽어도 읽어도 좋았고 그림을 봐도 봐도 너무 좋았다. 나는 그때부터 길을 생각했다. 길이라는 철수생각은 나의 생각을 갖게 해 준 엄청난 글귀였다.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길' 철수 2000
철수생각의 '길 '한 페이지를 읽은 30대의 나는 길을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앞이 보이지 않았고 까마득했다. 유아교육의 길은 갈수록 지치는 구조였다. 설상가상 그해에는 해고도 당했다. 일을 영영 그만두려고도 했다. 그러나 10여 년 힘든 것도 참아내고 쌓은 경력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 지금부터 다시 걸어가 보자. 길은 자신이 걸어야만 생기는 것임을 명심했다. 그리고 길 그림 안에서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웅크린 홀로 걸어가는 사람에 나를 대입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저 사람처럼 나도 걷다 보면 사람들이 길이라 부르는 선명한 길을 반드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그냥 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만나는 일상이 길이 되려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가면 안 되었다. 다르게 걷기로 마음먹으니 일이 재미있었다. 동료교사들과의 차별화된 아이들과의 나의 일상이 너무 좋았다. 길을 만든다는 결심은 비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기에 더욱 신났다. 내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한 해 한 해 누적될 때마다 조금씩 뒤돌아보았다. 걸어온 길은 희미하게 보였다. 그 후 시골에 있는 작은 어린이집에 들어가서 한 곳에서 12년을 견뎠다. 유아교육에서 결핍이 곧 성장임을 깨달은 감사한 그곳이다.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다 보니 2015년이 되었다.
유아교육 경력 20년을 훌쩍 뛰어넘었다. 뚜벅뚜벅 걷기로 마음을 먹었던 일이 길이 될 것을 믿었기에 나는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라 채울 수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40대 중반을 넘었다. 좋은 생각 이철수 판화가의 '길' 그림과 글이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2016년 시골에 유치원을 짓고 2017년 원장이 되었다. 그저 길을 걷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유치원의 꿈은 길 위에 있었다.
나는 유아교육 길만을 걸어왔다. 특별한 취미도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오로지 사명감만이 나의 전부인 삶이었다. 아이들 덕분에 밥 먹고 살아왔고 그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 곧 내 삶이었다. 일상이 유아교육이었다.
어떻게 하면 놀이가 곧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정말 많은 연구를 했다. 연구라지만 억지로 만든 연구과정이 아닌 저절로 깨달은 놀이비법이 있으니 바로 결핍상황을 놀이로 잇는 것이다. 결핍은 일상을 풍족한 놀이환경으로 채우면 안 된다. 대신 아이들이 결핍을 스스로 채울 비구조적 자원이 가득한 일상의 환경만 마련하면 된다. 관찰과 발견을 통해 창의적인 놀이를 만들어가는 유일한 아이들을 기록하는 기록자로서 뚜벅뚜벅 다시 걸어볼 생각이다.
백영재 인류학자는 창의성이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닌 A에서 B로의 적용이라고 했다. AI시대에는 직장을 옮길 때마다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연결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곧 창의적인 전략이라고 한다. 그 시도란 두 문화 두시도를 연결하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을 주변인이라고 했다. 지금껏 30년 넘게 걸어온 직장들 그리고 놀이문화를 지우지 않고 새롭게 조합하는 일에 다시 몰두할 것이다.
참 이상하다. 백영재 인류학자의 AI시대의 인재상 이야기를 듣는데 뜬금없이 이철수 판화가의 길이 나온다. 백영재 인류학자도 길을 언급했다.
동시성의 원리일까 내가 겪거나 생각했던 것들이 자꾸 내 앞에 나오는 일이 빈번하다. 그는 AI시대에는 주변인이 되어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경계를 넘는 걸음이 곧 새로운 길이 됩니다."
마치 20년 전 내가 다짐한 그 길을
다시 걸어가라고 경계를 넘어보라고 철수아저씨가 보낸 사람처럼 생각지도 않았던 잊었던 '길'과 문장이 지금 다시 내 앞에 왔다.
20년 전에는 뚜벅뚜벅 걸으면 되었지만 지금부터는 놀이의 경계를 넘어야 하는 걸음이다. 그 경계 앞에 섰다.
놀이를 건너가다. 더노리 또 길을 걸어가 보자.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좋은 생각 뒷면에 있는 이철수 판화가의 작품들, 명상이 되고도 남는 주옥같은 작품들이다. 좋은 글 한 문장은 누군가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다시 꺼내어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