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커튼을 가볍게 흔들고,
책상 위에 올려둔 종이를 미세하게 들썩이게 했다.
그 작은 움직임이, 마치 너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나는 순간 멈춰 서서, 숨을 들이마셨다.
언젠가 너에게서 났던 익숙한 향이 공기 속에 섞여 있는 것만 같아서.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향기는 이미 바람 속으로 흩어지고,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
너는 언제나 바람 같았다.
가까이 있는 듯하다가도 금방 멀어지고,
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붙잡으려 했고,
그 끝이 이런 고요한 상실일 거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기억이란 건 참 묘하다.
잊고 싶다고 쉽게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붙잡고 싶다고 오래 남아주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흐려질 거라 믿었지만,
어떤 기억은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네가 떠난 자리,
그 공백이 나를 잠식해 올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조금 덜 사랑했더라면,
아니, 조금 덜 아파했더라면
지금쯤 우린 어떤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었을까.
창밖으로 나뭇잎이 흔들린다.
저 나뭇잎도 언젠가 가지를 떠나 바람에 흩어지겠지.
그럼에도 나무는 다시 잎을 틔우고,
언젠가는 또 새로운 바람을 맞이하겠지.
나는 아직 그럴 용기가 없다.
그래서 오늘도 이 자리에 서서,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바라본다.
너의 향기가 묻어 있을 것만 같은,
너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을 것만 같은,
이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