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한 남자가 쇼핑카트를 끌고 슈퍼마켓의 진열대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진열된 것은 과일도, 통조림도, 생필품도 아니다. 선반 위에 줄지어 놓여 있는 것은 수십, 수백 개의 ‘머리’들이다. 서로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들이 고객의 선택을 기다리듯 정돈되어 있다. 그리고 이 남자는 고개가 없다. 마치 자신이 쓸 새 얼굴을 고르기라도 하듯 손을 뻗어 진열대를 살펴본다.
이 장면은 섬뜩하면서도 기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모두 사회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지만, 때때로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현대 사회는 정체성을 유동적으로 소비하는 시대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다른 ‘얼굴’을 쓰고,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에 맞춰 변신한다. 직장에서의 모습, SNS에서의 모습, 친구들 사이에서의 모습이 모두 다를 수 있다. 때로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우리에게 특정한 얼굴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 이미지가 주는 메시지는 더욱 깊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얼굴을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얼굴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진정한 ‘나’를 반영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가면일 뿐일까? 또한, 이 과정에서 우리의 본래 모습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은 아닐까?
정체성은 이제 단순한 내면의 문제가 아니다. 외적인 요소, 사회적 지위, 기술 발전까지 개입하면서 우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가상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점점 더 쉬워지는 시대, 우리는 과연 자신을 올바로 알고 있는가? 아니면, 이 남자처럼 정체성을 구매해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가? 이 사진은 그 질문을 강렬하게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