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미니멀] 학습은 즐거움의 욕구다.

윌리엄 글래서의 다섯 가지 인간 욕구 중 즐거움의 욕구에 대해서.

by 애삼이맘

[교육의 미니멀] 학습은 즐거움의 욕구다.
윌리엄 글래서의 다섯 가지 인간 욕구 중 즐거움의 욕구에 대해서.






현실치료를 제안한 윌리엄 글래서는 말합니다.


"좋은 교육이 성공적인 삶에 이르는 최선의 길이다"


성공적인 삶으로 이끄는 좋은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대한민국에는 7세 고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아이들은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 뛰어들고 점수와 등급으로 구분됩니다.

그 아이의 장점, 성향, 취향, 특기, 잠재력과 같은 것들은 싸그리 무시된 채

오직 점수로 구별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요즘에는 7세도 늦다고 하여 5세 고시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과연 이것이 좋은 교육일까요?





윌리엄 글래서는 인간이 유전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욕구 다섯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생존의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힘의 욕구, 자유의 욕구,
그리고 재미 즉 즐거움의 욕구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욕구인

즐거움의 욕구 안에는 학습, 즉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학습이 즐거운가요?

지난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학교에서 하던 배움은 전혀 재미있거나 즐겁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가기 싫어 늘어진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학교에 등교를 하지만 수업시간에는 졸음만 쏟아집니다.

시험기간이 되면 공부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머리에는 들어오지 않고 애꿎은 책상정리만 하며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시간을 때우다가

'에라, 모르겠다!'

잠을 청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최근 뒤늦은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관심이 생긴 분야인 청소년 상담과

원래도 흥미가 있던 분야였던 미술치료를 배우고 있는데

그 배움의 시간들이 무척이나 재미있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강의를 듣다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하고 놀란적도 여러 차례입니다.

이렇게나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공부가 전에는 왜 이리 하기 싫었던 걸까요?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단 한 가지,

'동기'입니다.


전에는 내가 그 공부를 좋아하는가, 좋아하지 않는가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그저 주어진 교과 공부를 업무처럼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애는 머리는 똑똑한데 공부를 안 해요.'


엄마들에게 종종 듣게 되는 말입니다.

공부를 안 하는 아이가 민망해서 그저 하는 말이라고 넘겨 들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문제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말입니다.


영재인가? 의심이 될 만큼 똑똑하고 배움을 즐거워했던 아이가

왜 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공부라면 기겁을 하게 됐을까요?

단지 친구들과 노는 게 재미있어서일까요?

아닙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공부가 수행해야 할 일, 업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학습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지겨운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윌리엄 글래서는 학생이 공부를 지겨워한다면

그것은 교육자의 잘못이라고 따끔하게 꼬집습니다.

내적인 동기를 심어주지 못하고 그저 지식만 전달하였기에

그 교육은 배움의 즐거움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늦깎이 배움이 재미있는 이유를 이제 아시겠나요?

내가 직접 관심을 가지고 선택해 시작하게 된 공부이고

여러 어려움들, (이를테면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공부이기 때문에

강한 내적동기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청소년 상담이라는 분야는

제가 추구하는 최우선 가치인 가족, 자녀양육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저의 가치의 혼란도 없습니다.


'나 때는 공부를 너무너무 하고 싶었어도 가난해서 못했어!'


'나는 공부를 못한 게 평생 한이야. 넌 감사한 줄 알아야 해'


'내가 다 뒷바라지해 주고 너는 공부만 하면 되는데 왜 안 하는 거니?'


이와 같은 말을 하며 아이들의 공부에 목숨을 걸고 있는 부모님에게 묻고 싶습니다.

부모의 결핍을, 욕심을 아이가 대신 채워주는 것은

누구를 위한 공부입니까?

아이를 위한다고 말하면서 나를 위한 공부를 시키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공부를 못해 한이 맺히고 원해도 하지 못해 서러웠던 지난날을 이해합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시작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자녀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그 꿈을 이뤄보시기를 바랍니다.


'에이 저는 나이도 있고, 가정도 있는데 공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죠.'


하고 말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못한 게 한이 되고, 안 한 게 후회되고 그래서 서러웠던

강한 내적 동기가 있는 나도 못하는 공부라면,

아무 내적 동기가 없는 아이는 더더욱 하기 힘들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기 전에 먼저 배움의 욕구, 동기를 일으켜주세요.

여러 경험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부터 먼저 바로 알고,

여러 놀이를 통해 스스로 행동하는 주도성을 길러주세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도와주고

그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세요.


저희 집 세 아이는 사교육을 시키지 않습니다.

학교 끝나면 노는 것이 아이들의 유일한 일입니다.

남들 학원가는 시간에 실컷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배움을 강요하지 않으니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관심사를 찾아 책을 읽습니다.

끊임없이 창의적인 놀이를 개발하며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시험합니다.

첫째는 한국사를 줄줄 꽤고 있고 도서관에 가서도 역사책을 스스로 빌려봅니다.

둘째는 종이접기, 레고 분야에서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입니다.

(시간을 재보니 밥 먹는 시간을 빼고 9시간을 접더군요...)

셋째는 전 세계의 나라이름과 수도를 줄줄 꽤고 있고 대한민국 지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무엇하나 시킨 적이 없지만 누구보다 깊이 있게 파고듭니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배움이 즐거움인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배움이 즐거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이 될 수 있도록

아이들을 강요하고 억압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물론 이대로 계속 키우다 보면 명문대에 진학하거나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에게 성공적인 자녀 양육의 기준은 대학 입시나 취업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게 돈을 적게 버는 일이든 많이 버는 일이든

스스로 내린 결정에 책임지고 만족할 줄 아는 하나의 성인으로 자립시키는 것.

그것 하나면 저의 자녀 양육은 그 누구보다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의 롤모델이 될 수 있고 자녀의 존경을 받는 부모가 되는 것.

그것이 저의 성공적인 양육의 기준입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으로 끝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낼 때

아이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만족하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 당당히 자립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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