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원래 그런 아이를 낳았을 뿐입니다.
첫째가 두 돌 무렵.
동네 병원에 갔습니다.
첫째는 접수대 한편에 놓인 작은 수조 앞에 섰습니다.
수조 속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흥미로웠는지,
한참을 관찰하던 아이가 물고기 수를 헤아립니다.
"
하냐~두 셰..
네..다서, 여셔 이고~
여더 아호 여!!
"
물고기를 열 마리까지 세고 꺄르륵 웃으며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옆에 계신 간호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묻습니다.
"어머, 아이가 몇 살인데 벌써 숫자를 세요?"
"아.. 이제 두 돌 다 돼가요"
"두 돌이요? 저희 아이도 두 돌이거든요,
우리 애는 숫자는 아직 관심 없던데 아이가 엄청 빠르네요!"
"그런가요~?"
간호사 선생님의 부러움이 담긴 리액션에 내심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첫째라 빠른지, 느린지 몰랐는데 여기저기서 빠르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하니 내가 천재를 낳았나? 싶기도 합니다.
첫째는 숫자도 빨리 셋지만 말도 빨랐습니다.
16개월부터 간단한 단어들을 말하더니 두 돌이 넘어서는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문장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엄마 햇님이 서니를 따라와요. 서니가 좋은가 봐요"
"곰돌이야 나랑 놀자~귀여운 곰돌이!"
4살 무렵에는 간판에 적힌 글씨를 더듬더듬 읽기 시작합니다.
"사라...앙 호.. 포? 엄마 호포가 뭐예요?"
"호포?
아, 호프...! 어른들이 맥주 마시러 가는 곳이야..."
글자 읽기에 재미가 붙어 아무 간판이나 쉴 새 없이 읽어대는 통에 설명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갑니다.
조금은 귀찮고 성가시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글 읽기가 늘어가는 아이를 보며 흐뭇해집니다.
"서원이는 벌써 한글을 읽는다면서요? 한글공부는 어떻게 시켰어요?"
"한글 공부요? 따로 안 시켰는데요."
"따로 안 시켰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한글을 읽어요?!"
동네 엄마들의 화들짝 놀라는 반응에 '이게.. 좀 대단한 거였나?' 싶어 살짝 어리둥절합니다.
계속되는 질문에 뿌듯함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음~한글공부는 안 시켰는데, 대신 책을 많이 읽어줬어요.
10~20권씩 매일이요!
근데 한 권당 10번씩은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조르니 저녁이 되면 목이 다 쉬어버린다니까요? "
(사실입니다.)
"한 권당 열 번씩 열 권이요...?
그럼 하루에 100~200번을 읽어줬다는 거예요?"
"그렇죠 뭐(으쓱)
아이가 나중에는 책을 달달 외워서 틀리게 읽어주면 거기 틀렸다고 지적까지 하더라니까요~
그렇게 책을 통째로 외우니 글자도 자연스레 읽게 되더라고요"
나만의 노하우를 대단한 비법인 듯 이야기하고 나니 엄마들의 탄성이 쏟아집니다.
아닌 척 담담한 투로 이야기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뿌듯함을 넘어 이미 육아 전문가가 된 양 의기양양해져 있습니다.
말과 글만 빠른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낯가리지 않고 인사 잘하고 예의도 바르며 놀이터에서는 동생들을 챙겨주는 친절한 언니로 소문이 나있었던 첫째는 어딜 가든 칭찬과 주목을 받는 아이였습니다.
"애를 어떻게 이렇게 야무지게 잘 키웠어~!"
동네 어르신들과 엄마들의 칭찬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감과 확신이 차올랐습니다
'나는 육아에 소질이 있구나!'
그렇게 조금은 자만하며 확신에 찬 육아를 하던 어느 날,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를 낳고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누워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싸개에 돌돌 싼 둘째를 보여줍니다.
하얀 천에 쌓여 있던 빨갛고 까만 둘째.
가만히 바라보니 인상을 팍! 쓰고 두 눈을 부릅! 뜨고 저를 바라봅니다.
깜짝 놀라 의사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원래 신생아가 눈을 뜰 수 있던가요...?"
"하하. 보통 녀석이 아닌가 봅니다"
그 말은 정말이었습니다.
첫인상부터 강렬했던 둘째는 보통 녀석이 아니었습니다.
아기 때부터 피부 건조증이 심했던 둘째는 가려움이 심해 사개를 풀어놓으면 온 얼굴을 할퀴기 일쑤였습니다.
신생아 때는 속싸개가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속싸개를 벗을 시기가 오자 밤새 긇어대는 통에 내복은 항상 피범벅이었고
아이는 가려움으로 깊은 잠이 불가능해 두 시간에 한 번은 깨서 울었습니다.
온몸을 긁으며 괴로워 우는 아이를 붙잡고 함께 우는 날의 반복이었습니다.
동네소아과에서 피부과로, 좋다는 한의원에서 서울 대학병원까지 안 다녀본 곳이 없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300만 원짜리 한약을 지어먹이면서도 아이가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만 있다면 전혀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피부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엄~마! 해봐! 엄~마!"
"..."
"음... 그럼 아빠 해볼까? 아~빠!"
"..."
둘째는 과묵해도 너무 과묵했습니다.
20개월부터 문장을 술술 뱉던 첫째와는 다르게
36개월이 다 되도록 엄마 아빠조차 쉽게 발음하지 않았습니다.
언어발달이 첫째와 1년도 훌쩍 넘게 차이가 나자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커져갔습니다.
끊임없이 말을 걸고 노래도 불러 주었지만 씩~미소 지을 뿐 리액션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00개월 발달단계', '발달지연', '언어발달', '말하는 시기' 등은 저의 포털 사이트 단골 검색어였습니다.
"엄마가 집에서 말을 많이 안 하나보다~ 그러니 애가 말이 늦지"
"애기 임신했을 때 혹시 콜라같은거 많이 먹었어? 그래서 피부가 이런가?"
"혹시 첫째한테만 너무 애정을 주는 건 아니에요?"
"한번.. 상담받아보는 건 어때?"
첫째 때 받던 칭송과 감탄과는 정 반대의 걱정과 염려들이 쏟아집니다.
자칭 육아 전문가라고 생각하며 의기양양하던 시절은 온 데 간 데 없어졌습니다
'나는 둘 다 똑같이 키우고 있는 것 같은데... 뭐가 문제지?
내 양육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들 속에 자책감과 불안감만 늘어갑니다.
글을 읽는 것도 첫째에 비해 늦기만 합니다.
4살 때 한글을 읽었던 첫째와 다르게 7살이 되었는데도 책을 읽지 않습니다.
글자를 가리키며 읽어보라고 닦달해보지만 한번 쓱 보고 이내 관심을 거둡니다.
읽지 못하는 것인지 읽지 않는 것 인지조차 알 수가 없어 더욱 답답할 뿐입니다.
'학교 입학 전에는 한글을 떼어야 하는데...'
걱정되는 마음에 한글 연습 학습지를 주문해 봅니다.
연필을 쥐어주고 쓰기 연습을 시켜보지만 영 시큰둥합니다.
사회성과 공감능력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늘 밝게 인사하며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양보도 잘하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친구들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누구랑 제일 친해~?"
"친한 친구 없어요"
"친구가 없어...? 그럼 심심하지 않아?"
"혼자 노는 게 더 좋아요"
"음... 그렇구나...!
그럼 어떤 친구가 제일 좋아?
좋아하는 친구는 있을꺼야냐?"
"음....... 네 있어요."
"그래?! 있구나! 어떤 친구야~?"
"음.. 머리가 고불거리는 친구요"
"머리가 고불거리는 친구...? 이름은 뭔데?"
"이름은 몰라요"
이런 식의 대화의 반복이었습니다.
누나가 있어서인지 다른 친구관계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어린이집 생활 내내 같은 반 친구 이름은 한 명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공감능력은 더 걱정이 컸습니다.
엄마가 아프면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첫째와는 달리 엄마가 아프든 말든 자기 놀이에 바빴습니다.
친구가 엉엉 울고 있어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시끄러워..' 중얼거리며 자기 할 일에 몰두합니다.
첫째와는 너무 다른 모습들로 인해 저의 염려는 나날이 커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계속되는 걱정을 이기지 못해 전문가에게 발달상담을 받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작성하는데만 한참이 걸리는 두꺼운 양의 설문지를 적고,
선생님과 상담을 합니다.
전문가선생님은 아이 원으로 찾아 아이가 생활하는 모습을 몇 시간 관찰하며 기록합니다.
혹시 어떤 문제가 있으면 어쩌지,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몇 주 뒤 집으로 날아온 검사결과 우편물,
하지만 저의 걱정이 무색하게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습니다
남들보다 언어, 사회성 발달이 늦은 편이긴 하나 큰 문제없이 잘 크고 있다는 전문가의 소견이었습니다.
그럼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저'였습니다.
끊임없이 첫째와 비교하며 발달이 늦는 것은 아닌지,
사회성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염려했던 것이었죠.
남들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둘째는
말이 또래보다 느리기는 했지만 뒤늦게 트인 말은 '단어'가 아닌 온전한 '문장'이었습니다.
대충 말하는 법을 몰라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기를 택했던 것입니다.
글을 읽는 것 또한 첫째보다 느리긴 했지만 결국 초등학교 입학 전 무사히 한글을 떼었고,
심지어는 한글을 떼자마자 글밥이 많은 책도 소리 내어 술술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 또한 둘째의 실수하기 싫은 욕구가 더해져 조금 늦어졌을 뿐이었습니다.
공감능력에 대한 것은 어떠냐고요?
지금은 세 자녀 중 저의 상태나 기분에 가장 먼저 반응하며 달려와 안아주는 공감능력 100점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결국 내가 했던 누군가 (첫째와, 또래와) 와의 비교가,
첫째 때 느꼈던 내가 잘 키웠다는 자만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죠.
물론 정말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면밀히 살펴서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걱정이 불러온 해프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제 주위에 걱정이 많은 엄마들을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전에 하던 걱정은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면 자신이 그런 걱정을 했었냐며 화들짝 놀라기까지 하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너무 다른 두 아이를 키우고 나니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내 아이를 만든 것은 내 노력이나 희생 덕분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온전히 확신했습니다.
아이가 지금 이런 모습인 것은 그저 아이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나 조차도 우리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아래 컸을 뿐이지 이렇게 태어난 사람일 뿐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낌없는 애정과 사랑.
위험에 대한 보호.
자녀가 크면서 가지고 살아갈 삶의 가치.
이것만 온전히 전달해 준다면 부모의 역할은 충분히 잘한 것입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으면 문제가 사라집니다.
처음에 둘째를 바라볼 때 가졌던 자만, 그리고 기대, 남들과의 비교를 버리면
오롯이 한 사람의 아이만 보입니다.
내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기질, 성향, 강점, 약점, 감정들이 온전히 보입니다.
그리고 내 아이가 온전히 보여야만 아이가 가진 그 놀라운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올려줄지도 보입니다.
이 점을 깨닫자 둘째의 문제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은 둘째의 장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에 말과 글은 늦게 땠지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 덕분에 매 결정이 단단하고 흔들림 없습니다.
높은 집중력 때문에 사회성과 공감능력이 떨어져 보였지만
높은 집중력 덕분에 주위환경이나 사람에 영향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길을 갑니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바꾸고 나니 아이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또 자랑스럽습니다.
첫째와 둘째 셋째는 같은 뱃속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을 만큼 다릅니다.
그저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저는 육아에서 자만, 기대, 비교를 온전히 비우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비워야 함을 아는 것과 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다릅니다.
비워야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만, 기대, 비교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육아미니멀리즘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지요.
그 마음을 온전히 비울수록 아이가 더 선명히 보입니다.
그렇게 비운 시야로 바라보는 세 아이는 서로 다른 색깔들로 사랑스럽습니다.
어쩌면 육아미니멀리즘은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