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못해도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나요?

그게 바로 나야 나!

by 애삼이맘




"밥 먹자!"


엄마의 부름을 듣고도 못 들은 척 밍기적 밍기적 게으름을 부립니다.


"식기 전에 얼른안와?"


엄마의 한층 더 높아진 목소리를 듣고서야 늘어진 몸을 힘겹게 일으켜 식탁에 앉습니다.




"엄마 이 옷 좀 빨아주라"


"네가 세탁기에 넣고 돌려"


"나 세제 얼마큼 넣는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리고 여기 얼룩 묻어서 세탁기로 안 지워질 거 같은데?"


"그럼 그 부분만 세제 묻혀서 살살 비벼 빨아 봐!"


"아~내가 하면 잘 안 지워진단 말이야.... 그냥 엄마가 해주면 안 돼? 응~?"


약간의 애교를 섞어 졸라봅니다.

막내딸의 철없는 애교에 엄마는 어이없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도 대답합니다.


"으이그~ 거기 올려놔."




"너 방 꼴이 이게 뭐야! 얼른 좀 치워라"


엄마의 날카로운 잔소리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금방 하지! 얼른 해치우자.'


의욕충만하게 시작한 방청소는 처음엔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잘 진행되는 듯 보이던 방 청소는 정리 중 마주친 친구들의 편지와 사진에 이내 중단되고 맙니다.


'와~이때 좋았지... 단발도 잘 어울렸네. 다시 잘라봐?'


'이 편지는 중학교 친구가 써준 거구나, 잘 지내고 있으려나?'


한번 시작해 버린 추억 여행은 멈출 기미가 안보입니다. 편지와 사진들을 방안에 주욱 늘어놓고 추억에 젖어 있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습니다.


"아직도 안 치웠어?!"


청소 진행 상황을 점검 차 방에 들어온 엄마가 추억여행으로 처음보다 더 엉망이 된 방을 보고 폭발해 버립니다.


'이게 아닌데.. 처음엔 분명 잘 돼 가고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부끄럽지만 결혼 전 저의 모습입니다.

딸이 귀한 집에 막내딸로 태어나 온 가족의 이쁨과 돌봄을 듬뿍 받던 저는 24살 이른 나이에 결혼했습니다.

살림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저는 결혼을 하기 한 달 전부터 부랴부랴 밥 짓는 법부터 간단한 음식 레시피, 세탁기 작동법 등을 벼락치기하듯 배웠습니다.

그야말로 엄마품에 있던 철없는 아이의 모습 그대로 가정을 꾸린 것입니다.


처음엔 모든 게 새로운 신혼생활이 꼭 소꿉놀이처럼 느껴져 재미있었습니다.


'나 집안일에 소질 있는 거 아냐?'


잠시 우쭐한 생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집안일은 끝없는 반복이며 열심히 해도 큰 변화는 없지만 반대로 조금만 소홀하면 티가 많이 나는 매우 불공평한 활동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림을 잘하려면 꼼꼼하고 부지런하며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몹시도 덤벙대며 게으르고 느긋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겸손히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살림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간신히 살림을 배우고 적응해 나가던 중 결혼 6개월 만에 아이가 생겼습니다.

첫째 때는 (엉망진창이었긴 했겠지만) 살림도 육아도 그럭저럭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둘째가 태어난 후였습니다.

이전 글인 '미니멀라이프의 비결은 이사?'에서 말한 것처럼 둘째가 태어난 후 우리 네 식구는 10평의 작은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당시 키우던 고양이까지 총 다섯 식구가 10평의 공간에서 지내야 했던 것입니다.


더 이상은 흉내 내듯 하던 서툰 살림으로 단정한 집이 유지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더 이상 살림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던 제가 내린 특단의 조치는 바로 미니멀라이프였습니다.


'여기는 여행 숙소다... 우리는 조금 긴 여행온 것이다...'


라는 자기 암시를 한 후,

당장 써야 하는 물품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가차 없이 비우기 시작했습니다.

1년 이상 쓰지 않은 물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물건은 무조건 비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밥그릇 4개, 국그릇 4개, 면기 2개, 앞접시 4개, 접시 2개, 유아식기 4개, 컵 4개, 수저 젓가락 2쌍, 유아포크 2쌍, 냄비는 사이즈별로 3개, 프라이팬 1개, 전골냄비 1개, 몇 개의 반찬통.

펜션에 놀러 가면 기준인원수에 맞게 식기가 준비되어 있듯이 식구수에 맞춰 최소한의 식기만 남겼습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가지고 있는 식기가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일 없이 알뜰하게 사용되니 묘한 뿌듯함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식기가 딱 하나씩만 있었기에 다음 끼니를 위해서 자연스레 설거지가 밀리지 않는 효과는 덤이었습니다.



비우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옷입니다.

두 아이가 성별이 달라 각각의 옷을 보관해야 했고

아이들은 금세 자라기 때문에 물려받은 옷을 비우는 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 옷은 쉽게 더러워지고 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여분옷이 적당한지 계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4인가족의 4계절 옷은 모두 행거에 걸 수 있을 만큼만 남겨서 보관하고 옷걸이에 걸 수 없는 옷과 아이들 내복등은 서랍장에 들어갈 만큼만 남기기로 했습니다.

아직 큰 사이즈의 물려받은 옷은 좋아하는 스타일만 남겨 리빙박스에 넣어두고 조금씩 자랄 때마다 틈틈이 꺼내보며 시기를 놓치지 않고 입히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비우고 나니 10평의 작은 집에서도 빈 공간이 생겼습니다.

비움 후에서야 오전에 방안 가득 눈이 부시게 들이 차는 햇빛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 낮잠을 재우고 빈 공간에서 시시각각 매일 달라지는 빛깔을 느끼며 마시는 커피 한잔이 저에게 작은 행복이 되었습니다.


이런 소소한 행복도 무척이나 좋았지만 미니멀을 시작하고 가장 좋았던 점은 물건이 줄어든 만큼 집안일도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물건을 관리하느라, 정리하느라, 밀린 집안일을 외면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집안일이 줄어들수록 안개 낀 시야가 조금씩 걷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야가 밝아지고 넓어지고 나니 보인 것은 나의 사랑스러을아이였습니다.

미니멀을 시작한 후 아이의 표정, 기분, 필요를 더 잘 살필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버겁고 무겁기만 했던 육아가 가볍고 즐거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 셋의 엄마가 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살림을 못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면 다들 믿지 않습니다. 집이 단정하고 깨끗해 보이니 겸손을 떤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공간은 살림을 잘해서 단정한 것이 아니라 물건이 없어서 단정해 보일 뿐입니다.

관리할 물건이 적으니 서툰 살림도 그럭저럭 해낼 수 있고 더러웠던 집도 10분이면 원상복구 할 수 있으니 갑작스러운 손님 방문도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으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스러운 세 아이에게 한 번이라도 더 웃어주고 한 번이라도 더 귀 기울여 주며 자녀와 좋은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니멀을 시작한 후 어느 날 친정엄마가 집에 놀러 오셔서는 집을 둘러보십니다.

항상 방이 더럽다고 혼나던 막내딸이 이제야 사람 사는 꼴로 살고 있구나 싶으셨는지 흡족한 미소를 지으십니다.

그러더니 되려 친정집 비움을 도와달라고 요청하십니다.

미니멀라이프 덕에 더 이상 도움만 바라던 철없던 막내딸이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는 효녀가 된 것만 같아 뿌듯합니다.




미니멀라이프가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니멀라이프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에게는 불가능 한 일일 것이라며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부지런하고 살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미니멀라이프가 그다지 필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할 일이 얼마나 많던, 관리할 물건이 얼마나 많든 간에 부지런히 움직이며 해야 할 것들을 성실히 해나가기 때문입니다.

미니멀라이프는 오히려 게으른 사람일수록, 살림에 서툴수록 반드시 필요합니다.

비움을 통해서 내가 다소 게으르더라도, 살림을 못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나답게 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예전에 저처럼 막막하고 답답한 기분으로 육아와 살림을 해나가고 계시다면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미니멀라이프로 조금은 가벼운 살림과 육아를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