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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낙뢰교사 살렸다

by 배훈천

8월 5일 점심 무렵

사상유례없는 폭염이 지속되던 한 여름 대낮에

소나기가 무더위를 식혀주려나 기대도 잠시

마른하늘에 천둥 번개가 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멀쩡하던 날씨에 갑자기 그토록 요란한 천둥과 번개는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중에 뉴스에 보니 3000번 가까운 낙뢰가 있었다고 한다.


이날 조선대에서 연수를 받고 있던 젊은 선생님 한 분이 낙뢰를 맞아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https://youtu.be/vQ58lULWuPQ?si=1M4EDtWUwqvpD50o

나는 바리스타 수업 중에 수강생으로부터 그 젊은 선생님이 서석고 교사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또, 최근에는 조선대 벤치에서 여학생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으나 100m 앞의 조대병원 응급실로 가지 못하고 전대병원으로 옮기다 숨졌다는 소식이 있어 낙뢰 사고 교사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낙뢰 교사가 살아나셨다고 한다. 낙뢰에 맞아 심정지 됐던 교사는 서석고 국어교사로 재직 중인 스물아홉의 김관행 씨라 하고 이 꽃다운 청년을 기적적으로 살려내신 분은 전남대 병원 응급의학과 조용수 교수님이라고 한다.


조용수 교수님은 오늘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에 크게 보도된 낙뢰 교사 생환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조용수 교수는

"결과는 불문에 부칠테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달라며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 그럴 때 나는 내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

지식과 경험의 선을 넘나들며 의사가 곡예를 부릴 수 있는 건, 오직 환자가 의사를 전적으로 믿어줄 때뿐이다.

그래서 환자를 살린 건, 그의 부모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서 심정지 환자가 살아났지만 보호자 동의 없이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졌으니 합의금을 받아야겠다는 환자 보호자의 인터넷 게시글에서도 보이는 의료불신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 같다.


조용수 교수는 이어

"2천이 아니라 2만을 늘린 들 세상이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돈이나 많이 벌게 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사흘간 날을 샜지만, 그 행위는 정작 한 푼도 돈으로 환산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보람은 컸지만…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라도 후배들이 내 뒤를 쫓았으면 좋겠다.

돈 때문에 선택하든 어쩌든 일단 환자가 살았을 때의 짜릿한 희열을 맛본다면, 그 의사는 쉽게 이 분야를 떠나지 않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필수의료와 응급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대증원을 통한 낙수의사 만들기가 아니라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줘서 필수의료 기피현상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용수 교수는 단계마다 최선을 다해준 모두가 영웅이라는 다음의 말로 글을 마쳤다.


"여러 단계를 거쳐서 내 손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 개입한 모두가 영웅이고, 단계마다 최선의 성과를 내준 것이 기적을 일으켰다.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첫 주자부터 마지막 주자까지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어느 한 과정이라도 조금만 소홀함이 있었더라면, 환자는 결코 내 앞에 도착하지 못했을 터이다. 나는 마지막 결선 테이프를 끊었을 따름인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받게 되어 죄송할 따름이다.


모두 정말 수고 많으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당신들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은 조용수 교수님 페이스북 글의 전문이다.


낙뢰 사고 당사자는 교사인데, 뉴스가 너무 의사 중심이다. 응급실이 사회적 이슈라 그런 거 같은데. 그렇더라도 의사는 조연이니 환자에게 집중해 주었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았다. 40분이란 긴 심정지 시간도 이겨냈다. 의사의 소생술가 판단을 보란 듯이 뒤집었다. 사후세계를 감히 엿보고 왔으며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되었다.


이 청년이 보여준 기적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것은 생에 대한 집념이고 끈기이며, 포기하지 않는 의지였고. 아픈 이들에게 희망이자 더 나아가 모든 이들에게 용기가 되리라 확신한다. 고로 이 뉴스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청년교사다.


그의 새로운 삶은 본인과 가족들에게 더욱 특별하리란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많은 이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주었으면 한다.


물론 본인은 언론 노출을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밥상머리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관종은 그딴 거 신경 쓰지 않는다. 잘했으면 칭찬받는 거지. 내 실력이야 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사실 맨날 하는 일인데, 이번엔 우연이 겹쳐서 매스컴을 탔을 뿐.


언플한다고 고깝게 볼 필요는 없다. 우연도 실력이니까. 매사 열심히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기는 법.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우연을 붙잡는 것 또한 실력이다.


재수 없어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나 엄청 겸손한 사람이다. 이것저것 계산해 보니 지금은 나대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 인터뷰에 응했을 뿐.


*


솔직히 첫날밤엔 가망 없다고 판단했다. 의사로서 경험과 지식이 내게 속삭였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가슴은 따뜻해도 머리는 차가운 게 의사의 덕목. 그래서 보호자에게도 사실 그대로 얘기했다. 안 될 거 같다고.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겠다고.


그렇다고 포기한 건 아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앞뒤가 안 맞아 보이겠지만 사실이다.


시험을 보는데 첫 번째 문항부터 줄줄이 막히면? 이번 시험은 망쳤단 생각이 발작적으로 찾아들어 숨이 막힐 때. 그럴 때 체념하는 사람도 있지만, 종 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다.


우물에서 농락당하면서도 끝까지 서렌을 치지 않는 유저. 그게 바로 나다.


*


나는 가망 없다고 판단했지만 보호자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보호자들이 의사의 계산을 틀렸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다만 아들이 어떻게든 이겨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뿐.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나는 중환자를 볼 때 이런 류의 보호자를 가장 좋아한다. 결과는 불문에 부칠테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달라며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 그럴 때 나는 내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


지식과 경험의 선을 넘나들며 의사가 곡예를 부릴 수 있는 건, 오직 환자가 의사를 전적으로 믿어줄 때뿐이다.


그래서 환자를 살린 건, 그의 부모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


응급의학의 하위에 여러 과목이 있는 데, 그중 환경손상 혹은 야생의학이라고 불리는 분야에 낙뢰손상이 있다. 즉,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다.


더불어 나는 중환자의학도 하고 있다. 중환자의학을 하는 의사들은 호흡기내과, 마취통증의학과 등 출신이 다양한데, 그중에 응급의학도 있다.


응급의학 전문의가 중환자의학을 할 때 가장 잘 볼 수 있는 환자군이 바로 심정지, 중독, 환경손상이다. 고로 환자는 번지수를 아주 잘 찾아왔다.


낙뢰손상 치료와 심정지 후 통합 치료를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에크모, 기계호흡기, 체온조절기, 투석기등 온갖 기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만 가능하니까.


*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배우겠다고 나서는 이가 도통 없다. 하나같이 손사래를 친다. 나처럼 살기 싫단다.


총애하는 후배에게 얼른 배워서 나를 뛰어넘으라 했더니, 고민 없이 고개를 젓더라.


“너희가 실력 발전에 소극적이면 나는 나이 먹어도 경쟁력 있을 테니 땡큐긴 한데.”라고 살짝 속을 긁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었다. “교수님이 육십, 칠십 먹어도 계속 맡아주십셔. 저희는 잘하지 않아도 돼요. 남는 시간에 차라리 연극도 보고 즐기면서 인생을 살고 싶으니까요.” 너무 정론이라 더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나는 때때로 스스로가 낭만의 시대 끝자락에 서 있음을 느낀다. 세상이 변해간다. 내 선배들은 환자 곁에서 날을 새는 걸 당연한 의사의 책무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런 선배들의 등을 동경하며 자랐다. 하지만 지금 내 등을 보고 있는 후배는 더 이상 없다.


무엇이 잘 못 된 걸까? 아니 어쩌면 이게 정상인가? 나는 세상에 변화에 적응 못 한 꼰대일 뿐인가?


*


2천이 아니라 2만을 늘린 들 세상이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돈이나 많이 벌게 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사흘간 날을 샜지만, 그 행위는 정작 한 푼도 돈으로 환산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보람은 컸지만…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라도 후배들이 내 뒤를 쫓았으면 좋겠다.


돈 때문에 선택하든 어쩌든 일단 환자가 살았을 때의 짜릿한 희열을 맛본다면, 그 의사는 쉽게 이 분야를 떠나지 않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


사실 낙뢰 환자를 살린 건 순전 내 실력만은 아니다. 환자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컸지만, 그게 또 전부는 아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준 모두가 기적을 일으켰다.


낙뢰에 쓰러진 환자를 발견하고 주저 없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준 시민이 첫 번째다. 환자의 골든타임을 지켜주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기적은 시작조차 없었을 것이다.


119와 응급실은 또 다른 주인공이다. 완벽한 현장 대처. 그리고 응급실로 이어지는 물 샐 틈 없는 전문 소생술이 아니었다면, 장장 40분이나 지속된 심정지 시간을 그의 몸과 머리가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절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 단계를 거쳐서 내 손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 개입한 모두가 영웅이고, 단계마다 최선의 성과를 내준 것이 기적을 일으켰다.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첫 주자부터 마지막 주자까지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어느 한 과정이라도 조금만 소홀함이 있었더라면, 환자는 결코 내 앞에 도착하지 못했을 터이다. 나는 마지막 결선 테이프를 끊었을 따름인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받게 되어 죄송할 따름이다.


모두 정말 수고 많으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당신들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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