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첫날, 주택가에 위치한 우리 카페의 매출은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보통 화요일이 주중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리곤 하는데, 정부의 선심성 임시 공휴일 덕분에 하루 매출이 사라진 셈이다. 청명한 가을 휴일은 골목상권에 치명타가 된다.
바리스타 수업은 임시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정상 진행했다. 이미 일정이 확정되어 있어 수업 일정을 연기하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날은 원서 접수가 끝난 필기시험도 있었다. 시험을 마친 수강생들이 "강사님, 카페에 가서 뒤풀이 하자"고 해서 이른 저녁을 함께 했다. 공친 하루 매출을 벌충해 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카페에 도착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계셨다. 놀랍게도 그는 약 7~8년 전 우리 카페에서 일하던 친구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방황을 거듭하다가 군대를 갔다 와서 우리 카페에 취업했던 친구였다. 교장 선생님인 아버지가 어찌나 공부를 강요하고 강압적이던지 이에 반발해 방황하다가 군대에 갔고, 제대 후에도 집을 나와 생활하기 위해 우리 카페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는 참 성실하고 몸가짐이 바른 친구였다. 카페에서 일하던 어느 날, 동네에서 제일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 의사 사모님이 그에게 진상을 부렸다. “내가 누구며, 어디서 사는데 나처럼 귀한 손님이 먹을 음식을 왜 이렇게 식게 해서 내놨냐”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다시 공부를 해서 “나도 의사가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6~7개월 동안 잘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스물일곱이었으니 열 살 어린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닌 것이다. 그렇게 서러움을 원동력으로 열심히 공부한 결과, 그는 지금 모 의대 본과 1학년이 되어 인사차 방문한 것이었다. 부모님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대학도 광주가 아닌 타 지역으로 갔는데, 의대 증원 사태로 휴학 중이라 광주에 내려온 김에 찾아온 것이라고 한다.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편의 인간극장을 보는 것 같았다. 정말 대단한 인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올해 나이가 서른넷이라고 한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그가 의대 증원 사태로 청춘을 낭비하게 된 것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분명 낭만닥터가 될 것이다. 그가 의사 선생님이 되어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잘 어울린다. 그의 앞길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