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통쾌함 일까?

최고의 복수는, 그냥 잘 사는 것이다

by 김성수
복수 () - 복수는 원한이나 분노 등의 감정으로 인해, 자신이 입은 피해를 되갚으려는 행동 또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비슷한 단어로는 '행위의 되갚음, 설욕, 보복, 앙갚음'이 있다.


최근, SNS에서 유행하는 숏츠 드라마 몇 편을 보았다. 자극적인 광고에 홀려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첫인상은 '이게 대체 뭔가' 싶었다. 개연성도, 작품성도 없는 조악한 이야기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어느새 다음 편을 넘기고 있었다.


드라마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환생, 빙의, 복수, 로맨스, 막장 등 핵심 키워드를 믹스한 내용들 똑같은 스토리를 배우와 시대만 변경해서 마구 찍어낸 드라마 형식이라 볼 수 있다.


암튼, 도파민을 뿜뿜 뿜어내는 스토리 인 것 이다.


유독 '복수'라는 키워드에 내 마음이 강하게 끌렸다. 특히 중국 문화권의 처절하고 통쾌한 복수극들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니, 나는 복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첫째, 복수보다는 '용서'의 가치를 먼저 배우며 자랐다.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어릴때 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성된 가치 일 것이다.

둘째, 타인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에 내 에너지를 쏟는 것을 극도로 귀찮아하는 성격이다. 이것은 타인의 행동 너머에 있는 사정을 먼저 헤아리려 했던, 엄마의 관대한 시선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셋째, 어쩌면 운이 좋게도, 복수를 해야만 할 만큼 나를 파괴한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내가, 왜 이 조악한 복수극에 열광하고 있었을까. 그 통쾌함의 끝에서,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얼굴들을 떠올렸다. 내 등 뒤에서 비겁한 험담을 늘어놓던 사람들, 나를 끌어내리려 했던 모사를 꾸몄던 과거의 동료. 잊었다고 생각했던 상처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의 가장 깊은 심연 아래 가라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물었다. 만약 그때 내가 그들에게 복수를 했다면, 내 마음은 지금보다 더 편안해졌을까? 상처는 깨끗이 아물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복수'라는 키워드를 곱씹다, 문득 탈무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


결국, 내 마음의 그릇이 커지고, 나의 세계가 넓어지면, 나를 할퀴었던 그 모든 상처들은 사소한 흠집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 나는 복수극을 통한 대리만족 대신, 그 길을 택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나의 마음을 키워낼 것이다. 훗날 그들을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그까짓것" 하고 무심히 스쳐 지나갈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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