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전해지고, 변화는 시작된다
수년 전,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했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결혼 후 아이를 양육하며 잠시 멈췄던 사회생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나는 문화센터와 복지관, 초등 방과 후 강사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주 4회, 오후 시간의 근무는 아이를 돌보면서 일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은 한창 육아 중이던 내게 큰 동기부여이자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내 아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쳤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나이대의 천진난만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지만, 간혹 마음처럼 쉽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ADHD 증후군이 아니었을까 싶은 한 아이, A복지관에서 만난 B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B는 유난히 산만했고,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몹시 힘들어했다. 하지만 잠시 잠깐 나누는 대화 속에서 아이는 놀랍도록 영리함을 드러냈다. 조금만 마음을 써주면 분명 좋은 변화가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고, 다른 아이들의 수업에 방해가 되더라도 그 아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B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동기부여를 시작했다.
"B야, 이 문제 여기까지만 풀어보고 5분만 쉬자."
"와, B 정말 잘하는데? 조금만 더 해볼까?"
약속을 지킬 때마다 작은 칭찬과 함께 간식을 선물처럼 건네기도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불러주고, 작은 성공에도 함께 기뻐해 주려 애썼다.
나의 작은 노력과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B는 놀랍게도 수업에 집중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고, 꼬박꼬박 과제를 해왔으며, 친구들과의 다툼도 눈에 띄게 줄었다. 아이의 변화를 기뻐하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수업 시간, 교실 밖에서 물끄러미 우리를 지켜보시던 중년의 여성분. 나중에야 그분이 복지관의 관장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관장님은 내게 조용히 면담을 요청하셨다.
"선생님, B를 어떻게 변화시키신 거예요?"
관장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변화라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요?"라며 멋쩍게 되물었다.
그러자 관장님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B는 복지관의 여러 수업을 전전했지만 어떤 수업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교실을 돌아다니기 일쑤였고, 심지어 관장실에 불쑥 찾아와 하염없이 질문을 쏟아내며 놀다 가곤 했다는 것이다. 그런 B가 내 수업에서는 얌전히 참여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몇 번이나 수업을 참관하셨다고, 그 비결이 몹시 궁금했다고 덧붙이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오히려 관장님이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아로 치부하고 방치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매번 아이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관심을 기울여주셨다니. 진정 아이를 위하는 어른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저 아이에게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하고,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불러주려고 노력했을 뿐이라고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산만했지만 영리했던 아이 B. 그 아이와의 만남은 내게 가르침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통해 맺어진 관장님과의 인연은, 이후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길로 나를 이끌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때로는 작은 관심과 진심 어린 소통이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나의 인생까지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나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후일담 - 나중에 다시 쓸 이야기>
그 아이 B를 통해 만난 관장님과의 인연은 결국 나의 진로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B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마주하며, 나는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넘어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절실함을 느꼈다. 그렇게 새롭게 '가족복지'를 전공하게 되었다.
졸업 후, 놀랍게도 관장님의 따뜻한 지지와 도움 덕분에 사회복지기관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응원했던 나의 마음이, 우연치고는 너무나 필연 같은 방식으로 나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어쩌면 그 모든 과정은, 내가 만났던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내게 보내온 소중한 가르침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