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억다짐주간’ 4월 6일 ~16일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T.S 엘리엇 '황무지' 중>
사월은 왜, 우리에게 잔인한 달이 되었나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구절이다. 사실 434줄에 달하는 이 시 전체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저 단 하나의 문장만큼은 마치 주문처럼 외우며, 4월이 올 때마다 나직이 되뇌곤 한다.
나는 이 위대한 시를 분석할 만한 역량은 없다. 다만, 이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이, 어떻게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얼마 전, 한 지인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 이번 달 너무 힘드네. 몸도 지치고, 일도 잘 안 풀리고."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4월은 원래 잔인한 달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갑작스러운 나의 대답에, 우리는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도 안 되는 위로 같지 않은 위로 속에서, 우리는 묘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나의 지독한 비염은 봄철이 되면 극성을 부린다. 갱년기가 되어 재발한 이 콧물과의 전쟁은, 매년 4월의 나를 괴롭힌다. 한 번은 이 고통을 이야기하다, 다른 지인이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4월이 왜 잔인한지 알아요? 아마 엘리엇도 지독한 비염 환자였을 거예요."
아무 저항 없이, 나는 그 농담에 빵 터지고 말았다.
힘든 일의 핑계로, 알레르기의 원인으로. 우리는 그렇게, 위대한 시인의 고뇌를 우리의 사소하고도 현실적인 삶 속으로 기꺼이 끌어들인다.
하지만 나에게, '사월이 잔인한 달'이라는 문장이 돌이킬 수 없는 무게를 갖게 된 것은, 2014년 4월 16일 이후부터였다.
그날, 나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뉴스를 보았다. 처음엔 배가 기울었다고 했고, 곧 구조될 거라고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일을 했다. 근무 중 다시 꺼낸 화면 속에서, 아이들은 아직 바다에 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12주기이다. 여전히 가방 한쪽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의 조용한 기억에 고개 숙여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달지 못한 리본을 생각한다.
엘리엇의 시가 노래한 4월의 잔인함이 '겨울의 안온함이 깨지고 새로운 생명이 억지로 태어나야 하는 혼돈'에 대한 것이었다면, 2014년 이후 우리에게 4월은, 피어나야 했던 수많은 생명들이 가장 차가운 바닷속으로 속절없이 스러져간 달이 되었다.
이제 4월이 오면, 나는 비염 때문에 불편해하면서도 문득 멈칫하게 된다. 이 사소한 괴로움을 투정처럼 늘어놓아도 되는지, 잠깐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그 망설임이, 어쩌면 내가 그날을 기억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