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향을 마시는 거다.
나의 하루는 작은 의식으로 시작된다. 바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는 일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숨 막히는 한여름만 아니라면 늘 따뜻한 것을 고집한다. 차가운 얼음이 향을 가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달리, 뜨거운 김을 타고 피어오르는 그윽한 향미야말로 커피의 정수라 믿기 때문이다.
“맛도 없는 걸 왜 마셔?” 언젠가 한 지인이 물었을 때,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커피는 맛이 아니라 향으로 마시는 거야.”
물론 나라고 처음부터 이런 ‘커피 철학’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에스프레소 커피가 스타벅스와 함께 이 땅에 막 상륙하던 시절, 나는 그저 달콤한 시럽을 듬뿍 넣어 쓴맛을 가린 커피를 마시던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나의 커피 세계가 송두리째 바뀐 것은 2006년, 중앙대 후문의 작은 로스터리 카페 ‘커피나무’를 우연히 발견하면서부터였다. 그곳에서 마신 드립 커피 한 잔은 충격에 가까웠다. 어쩌다 맛본 갓 볶은 원두 한 알은 쓰기보다 고소했고, 마치 잘 구운 견과류처럼 입안에서 부서졌다.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진짜 커피의 세계는 갓 볶은 신선한 원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직접 원두를 볶는 카페만 찾아다니는 순례자가 되었다. 한 잔의 커피가 주는 깊은 향과 따뜻한 울림에 온전히 사로잡혔다. 어느새 스페셜티 커피 시장은 거대해졌고,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라는 우리나라 커피 소비량에 나 역시 단단히 한몫을 거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커피와의 밀월 관계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아침 빈속의 커피는 정신을 깨우는 대신 쓰린 속을 남겼고, 하루를 마무리하던 저녁의 커피는 갱년기 탓인지 불면의 밤을 선물했다. 한때 밥 먹듯 하루 세 잔을 마시던 나는 이제 점심 식사 후의 한 잔으로 버티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도 길을 걷다 로스터리 카페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향기를 맡는 날이면, 모든 다짐은 무너진다.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 강렬한 향의 유혹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어김없이 빈속에 마신 아메리카노에 쓰린 속을 부여잡고 ‘정말 커피를 끊어야 하나’ 고민하다, 문득 내가 왜 이토록 커피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되짚어보게 된 것이다.
그러다 떠오른 바흐의 ‘커피 칸타타’ 한 구절이 지금의 내 마음을 정확히 대변해 준다.
“아아! 커피의 기막힌 맛이여! 그건 천 번의 키스보다 멋지고, 마스카트의 술보다 달콤하다. 혼례식은 못 올릴 망정, 바깥출입은 못할 망정, 커피만은 끊을 수가 없구나.”
나는 혼례식도 올렸고 바깥출입도 자유롭지만, 아마 속이 쓰리고 밤잠을 설칠지언정 커피만은 평생 끊지 못할 것 같다. 이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지독한 중독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