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백화점, 기억의 단상

구경만 해도 신나!

by 김성수



어린 시절의 백화점은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와 같았다. 번쩍이는 조명 아래 진열된 상품들은 그 자체로 빛을 발했고, 유리 쇼윈도 너머 펼쳐진 풍경은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황홀했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눈으로 좇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으니까. 특히 백화점 문 닫을 시간이 임박했을 때 엄마 손에 들려 있던, 할인 딱지가 붙은 샌드위치나 김밥은 그 어떤 만찬보다 맛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시절 백화점 문이 열리는 순간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한껏 멋을 낸 직원들이 허리를 깊숙이 숙여 건네는 인사는 어린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형처럼 예쁜 '언니'들은 반짝이는 공간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일하는 모습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나도 어서 어른이 되어 저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더 이상 백화점을 동경하지 않는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에는 굳이 그곳을 찾지 않는다. 편리한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진 탓일까.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보다 집에서 편안하게 클릭하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얼마 전, 지인과의 브런치 약속 장소를 백화점으로 정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뜻밖에도 백화점 '오픈런'을 경험하게 되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그 시절처럼 예쁜 '언니'들이 인사를 해줄까? 짓궂은 기대와 함께 낯가림 심한 성격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인사를 받아야 할까, 모른 척 지나쳐야 할까?' 혼자 머뭇거리는 사이, 백화점 문이 열렸다. 하지만 예전처럼 활기찬 인사를 건네는 직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묘하게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인사를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 백화점 문이 열리던 순간의 설렘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많은 것들이 낡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엄마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며 눈을 반짝이던 소녀는 어느덧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기억 속에 묻어둔 풍경마저 희미하게 바래게 만든다. 하지만 괜찮다. 가끔은 잊고 지냈던 기억의 층계를 오르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설렘을 다시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wg3c8twg3c8twg3c.png


keyword
이전 13화뒤늦게 찾아온 오십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