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전에 여느 때랑 마찬가지로 출근해서 기사를 훑어보다, 우연히 사연성 기사를 읽게 되었다.
어느 실제 사연을 토대로 쓴 기사인데, 결혼을 하기로 한 남녀가, 결혼을 위해서 반반 씩 각출하여 모든 것을 반반씩 부담, 공평하게 시작하기로 했는데, 예비 시댁에서 집을 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혼수를 요구한다는 부분으로 두 사람 간의 싸움이 되어 이 결혼을 파투 낼지 고민해 본다는 어느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연을 토대로 쓴 기사였다.
우리 회사에도 후배 직원이 최근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돌렸다. 본인과 예비신부 각각 똑같이 각출하여 작은 오피스텔을 월세로 얻은 모양이다. 그런데 최근 이 친구 얼굴이 울상이다. 결혼을 앞둔 예랑이 치고는 하루하루가 얼굴 표정이 영 좋지가 않다.
"무슨 일 있니?"
속사정은, 결혼을 하기는 하는데 결혼 전에 나가는 비용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였던 것이다.
심지어, 이 친구 속 된 말로, 이미 예단을 예비 신부 뱃속에 넣어둔 상태였다. 그러니 곧 태어날 아기와 더불어 출산 전 병원 검사비용까지, 이 친구의 월급 사정을 잘 알 수밖에 없는 선배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힘들까 헤아려지는 부분이었다.
나는 아직 여전히 싱글로 살고 있다. 내가 싱글로 사는 삶을 택 했을 때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이유가 "돈" 때문이다. 연애도 결혼도 다 "돈" 든다. 특히 결혼에는 더 큰 "돈"이 든다. 얼마 전 정말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정보회사를 찾아 내가 "나는 결혼이 가능할 관상인가" 하고 여러 업체에서 상담을 받은 바 있다. 다양한 조건부의 이성을 소개해 준다 하는데, 이 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가입비"가 엄청나게 상당하다는 부분이다. 물론 나의 수입 수준으로는 약 반년 가량만 다소 타이트하게 지내면 충분히 감내 가능한 부분이지만, 여태 아파트를 살 때조차 은행 대출 없이 구매했는데 새삼스럽게 결혼을 위해 빚을 낸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결혼을 투자자 적인 관점에서 볼 땐, 원금이 들어가면 이에 대한 적절한 아웃 풋이 나와야 수지타산이 맞다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투자를 실행하게 되는데 결혼을 비유해서 볼 땐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이건 투자 원금을 다 넣어놓고 남자는 평생 일을 해서 늘어나는 식구들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고, 여자 역시 생업을 전제로 한 부엌데기(육아 집안일 몽땅)가 되기 위해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해서 남의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게 인류애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대단히 일생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 MZ세대는 없다. 여자 역시 시댁에서 집을 해주는지에 따라 내가 가져갈 혼수가 결정된다는 이 상황, 누가 봐도 "손해 보기 싫은 결혼"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연애도 결혼도 딱히 흥미가 없다. 어느 정도 수입도 충분하고 집도 차도 알아서 다 갖추고 혼자 살기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니 아쉬운 게 없어서 이다. 엄밀히 따지면, 남성도 여성도 "혼자" 살아가기엔 버거운 일들을 "둘이" 함께 한다는 부분을 전제로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혼자서도 잘하면 굳이 군식구와 비벼대며 살 일이 없다.
분명 결혼을 앞둔 예랑이는 결혼을 전, 온전한 본인으로서 충분히 즐겁게 살아왔을 법할 텐데, 결혼과 동시 저들은 매달 나가는 기저귀, 분유값, 생활비 외 대출금 상환까지, 저 커플들은 반쪽 짜리 딜레마에 빠져 버리게 된 것이다. 아마도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야, 뱃속의 아기 때문이다 보니,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을 시작하기 위한 미래의 계획은 없고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하게 된 케이스인 셈이다.
아이러니하다. "가정"을 이루기 위해 결혼하는 사람들에겐 내 "집(家)" 이 없다. 남의 집 (家)에서 나의 가정을 시작한다는 풍토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까 싶다. 정말 우습기도 하다, 사회생활 갓 시작한 풋내기 신입들은 본인이 버는 돈이 신기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소비 씀씀이는 나보다 더 크다. 후배들에게 개인연금을 들고 ISA계좌를 운용하며 소소한 비용이 있다면 공모주를 해봐라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해봐야, 이들은 캠핑을 간다며 없는 살림에 자동차에, 각종 캠핑장비를 섭렵하고, 연애만 하다 말지도 모를 연인과의 해외여행에 본인의 퇴직금을 끌어다 쓰면서 유럽 호화 일주를 하고, 이제 막 만난 50일도 안된 연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위해 백만 원대의 핸드백을 고르고 있다. 내 집마련 어렵다고 나라 탓 할 일이 아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돈을 모을 생각이 없는 것이 이 친구들의 디폴트 값이다. 이들은 미래의 청사진보다는, 눈앞의 혹은 당장의 만족을 위해 지출하는 소비를 더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인륜지 대사라는 중대한 "결혼" 결정을 한낱 등 떠밀려 결정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렇다 보니 되는대로 "대충" 하다 보니, 살다가 아니면 쉽게 이혼하게 되는 거 아닐까 싶은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지금의 30대 들은 조금 더 정신 차려서 결혼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으면 좋겠다. 국내 경기 상황도 썩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틈틈이 저축을 하고 적당한 대출을 받아 내 집마련을 하고 갚아가면서 노후 준비도 착실히 하는 이런 풍토를 백만 원짜리 핸드백 사주는 남자 친구보다 더 듬직한 이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있었으면 좋겠다. 미디어에서는 연애할 때 떡볶이만 먹고, 저축만 하고 좋은 곳 안 데리고 가주는 남자 친구를 쪼잔한 사람으로 둔갑시키고, 그 돈의 출처가 어딘지도 모를 돈으로 명품백과 비싼 향수 그리고 고급 액세서리를 때 되면 사주는 남자 친구를 여성을 위해 "헌신" 하는 남성으로 둔갑시킨다. 바로 이러한 사회적 풍토가 내가 3천만 원 들여서 결혼에 성공한다 한들,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이 더 나아질 것인가 하는 확신이 없는 이유 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요리를 꽤 잘하는 편이다. 집에 어쩌다 지인들이 놀러 오면 근사하게 한 상 뚝딱 만들어 낸다. 내 요리는 반찬부터, 여느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음직할 요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 내 요리에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바로,
"요리는 내가 하고 싶을 때 한다"
남들보다 손도 빠르고 요리도 금방 배우고 숙달하기 때문에 그동안 요리하면서 처음 본 요리라 할지언정 어렵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근데 결혼을 하게 되면 나의 요리에 대한 선택의 자유권은 박탈되지 않을까? 몇 해 전에 방영되었던 "며느라기"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늘 "밥" 이 문제라는 말, 결혼 전엔 시리얼만 먹어도 좋더니 결혼 후엔 식성이 삼시 세끼로 바뀌는 가 보다.
내 주변에 결혼 후 온전히 잘 유지하는 친구들 공통점이 뭔지 아나?
아이는 "애 엄마"가 키우고 살림은 "우리 와이프"가 하며 회사일은 "내가" 한다. 결국 여자는 결혼하면 밖에서 돈도 벌어오며 아이도 키우고 집안 살림도 척척 해내야 한다. 얼마나 고된 3D삶일까 근데 그런 결혼을 하겠다고 3천만 원을 지불하며 이성을 만난다? 가장 쓸데없는 돈 투자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 노후를 좀 더 멋지게 살기로 했다. 결혼 안 해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거 꼭 누군가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거 내가 보여 줄 테니까 사람들이 어디가 거 든 제발 이런 소리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이제 너도 나이 생각해서 결혼해야 해지, 아이도 낳아야 하잖니?.." 네 너나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