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휘봉을 잡았다
막이 열리고 연주가 시작된다
우뚝 솟은 개망초는 수줍은 듯
나부끼며 노란빛을 더욱 반짝이고
여린 들풀은 실오라기 같은 허리가
꺾였다가도 다시 곧추세운다
바람이 지휘봉을 잡았다
열린 막 위에 흔적이 남는다
찢긴 히야신스 하얀 꽃잎은
쏟아지는 햇살로 몸을 추스르고
풀잎마다 송골송골 맺힌 이슬은
땅에 떨어져 생명을 불어넣는다
바람이 지휘봉을 잡았다
오늘도 연주는 계속된다
살면서 겪는 일들이 마치 부는 바람과 같다. 어떤 날은 살랑살랑 볼을 간지럽히는 바람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일이 있는가 하면, 태풍처럼 몸을 가누기 힘든 일도 다반사다. 여전히 내 삶엔 바람이 분다. 그 바람으로 인해 생채기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 바람으로 인해 성숙해져 가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란다. 아이러니하다. 휘몰아치는 바람 앞에 식물의 움직임은 마치 바람과 눈을 맞추고 몸을 맡기는 것 같다. 그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에 혼미할 때 그 바람에 몸을 맡긴 체 그 바람을 지휘하는 지휘자와 눈 맞춰본다. 그리고 지금 폭풍 속에 서 있는 누군가를 향해 두 손 모아 본다. 그 바람을 견뎌 낼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