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5년전 10월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저의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던 집안 정리정돈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청소와 정리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아니 편이었습니다.(과거형임!) 그날도 그렇게 좋아하는 청소를 끝내고 커피를 마시면서 집안을 둘러보다 문득 책장에 꽂힌 책 한권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언제 구매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예쁜 걸 참 좋아하는 제가 좋아할 법한 그런 '작고 예쁜' 미니멀 라이프 관련 책이었습니다.
한참을 빠져 읽다가 문득 식료품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라는 책 속의 문구 하나가 제 인생의 나비효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라면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저희 집 식료품 선반으로 달려가 유통기한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아무도 저에게 라면의 유통기한이 고작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고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게 상식이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상식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거겠죠?
충격적이게도 저희 집 라면의 유통기한은 무려 2년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 있던 김밥 김의 유통기한은 무려 4년 전의 날짜를 가리키고 있었고요. 나름 자취경력 10년차임에도 이런 유통기한 하나 점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4년 전이라면 그 사이 이사를 두 번이나 했고 그 두 번 중 한 번은 바로 몇 주 전의 일이었는데 도대체 왜 그때도 저의 피 같은 돈을 이사 짐센터에 지불하면서까지 이 쓰레기들을 바리바리 싸서 가지고 왔을까요? 그리고 지금도 이 쓰레기를 이렇게 집안 한 켠에 고이고이 모셔 두고 매일같이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그날 저녁 집에 있는 유통기한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모든 물건을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라면을 즐겨먹지 않고, 김밥 김이나 라이스페이퍼 같은 것들은 정말 특별한 날에만 찾아 먹는 것이라고 그래서 유통기한이 지나도록 남아있는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렇다면 묶음이 싸다는 이유로 이렇게 많이 구매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화장품에도 유통기한이 있었습니다. 선물 받은 것, 여행가서 그 나라에서 유명하다고 반드시 사야하는 물건이라고 해서 사 온 것, 공짜 샘플들, 어느 뷰티프로 1위상품이라고 해서 샀지만 결국 피부에 맞지 않아 몇 번 쓰지 않고 고이 모셔 둔 화장품들의 유통기한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앞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품은 원래 가지고 있던 수의 1/4 정도만 남았습니다.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화장품도 정리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비우게 될 것들을 그동안 왜 그렇게 이고지면서 살고 있었을까요.
저의 미니멀 라이프는 가볍고 홀가분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멋진 가치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쓰레기와 함께 살고 싶지 않다는 조금은 절박한 마음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쓰레기를 쓰레기인 줄 모르고 보관하고 관리하느라 낭비한 제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이상은 쓰레기를 위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 제 마음속에 깊이 새긴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