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거대한 분리: 이성의 왕좌, 감응의 추방
제3장 광장의 소음, 영혼의 질문
4절. 거대한 분리의 시작
소크라테스가 아고라 광장에서 촉발시키고 플라톤에 의해 거대한 사유로 확장된 질문—“이 모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있는 것’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것, 그것들을 ‘나무’이게 하고 ‘돌’이게 하며 ‘나’이게 하는, 영원히 변치 않는 ‘있음(being)’ 그 자체는 대체 무엇인가?”—은 단순히 하나의 철학적 물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테네의 비옥한 지적 토양에 심어진 강력하고 위험한 씨앗이었고, 인류 지성사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즉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뒤집는 거대한 혁명을 예고했다.
2장에서 동굴 벽에 그려졌던 것은 ‘북쪽의 영혼’이나 ‘조상님의 별’과 같이, 인간의 공포와 희망이라는 뜨거운 ‘감응’이 외부 세계에 투사된 존재들이었다. 그 존재들은 언제나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졌다. ‘북쪽의 영혼’은 우리를 해치려 하고, ‘조상님의 별’은 우리를 자애롭게 지켜본다. 신화의 세계에서 세상 모든 것은 ‘나’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대하고 극적인 드라마였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 우리의 고통과 기쁨이 우주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플라톤의 질문은 그 범주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친밀하고 뜨거운 관계의 끈을 잠시 끊어내고, 존재 자체를 마치 해부학자가 시체를 다루듯,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벌거벗겨 바라보자고 제안하고 있었다. 나무가 ‘나에게’ 땔감이 되거나 시원한 그늘을 주는지가 아니라, 이 나무와 저 나무, 그리고 천 년 전의 나무와 천 년 후에 존재할 나무를 모두 똑같이 ‘나무이게 하는’ 그 보편적이고 영원한 ‘나무의 본질(essence)’은 무엇인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형이상학(Metaphysics)’, 즉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존재’에 대한 이 근본적인 물음은,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가 제우스의 분노나 아프로디테의 변덕스러운 질투 같은 신들의 예측 불가능한 감정이 아니라, 어떤 보편적이고 불변하며 이성으로 파악 가능한 법칙, 즉 ‘로고스(Logos)’일 것이라는 거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이로써 인간은 비로소 ‘세계’를 더 이상 나와 대화하고 감응하는 대상이 아닌, 거리를 두고 탐구하고 분석해야 할 ‘객체(Object)’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세계의 드라마 속 등장인물에서, 그 드라마를 무대 밖 객석에서 분석하는 비평가가 된 것이다.
훗날, 서양 철학의 탑을 근본부터 다시 사유하려 했던 20세기의 거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바로 이 지점을 서양 철학사의 운명적인 갈림길로 지목했다. 그는 철학이 이때부터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존재(Being)’ 그 자체를 잊어버리고, 머릿속에서 박제된 ‘존재자(Beings)’들의 본질만을 따지는 ‘존재 망각’의 길로 들어섰다고 비판했다. 세계와 함께 호흡하던 살아있는 연결이 끊어지고, 세계를 ‘대상’으로만 보는 차가운 분석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이 위대하고 강력한 발견의 이면에는, 우리가 서서히 놓치기 시작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존재를 객관적인 탐구 대상으로 설정하는 바로 그 순간, 그것을 뜨겁게 느끼고 생생하게 경험하는 나의 살아있는 몸, 즉 1장에서 사냥꾼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주었던 ‘감응하는 육신’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철학자들은 모든 나무에 공통적인 ‘나무임’의 보편적 본질(essentia)을 탐구했지만, 내가 지금 바로 ‘여기 있음(Dasein)’의 구체적이고 떨리는 울림, 즉 실존(existential presence)의 무게는 점차 잊었다. 대상을 지각(perception)하고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분명 나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몸은 점차 영혼이 순수한 진리를 보는 것을 방해하는,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우며 때로는 더럽기까지 한 감옥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의 가장 위대한 제자이자 서양 철학의 거대한 산맥을 이룬 플라톤은, 스승이 던진 이 혁명적인 씨앗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철학 체계라는 나무로 키워내며 이 분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사랑하고 존경했던 스승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민주주의, 즉 다수의 어리석은 군중에 의해 독배를 마시고 사형당하는 끔찍한 비극을 처절하게 목격했다. 대중의 변덕스러운 감정과 그릇된 판단이 어떻게 가장 지혜롭고 정의로운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본 그는, 우리가 감각하고 경험하는 이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현실 세계에 대한 깊은 불신과 혐오마저 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 성벽 밖, 올리브 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인류 최초의 대학이라 불리는 ‘아카데미아(Academia)’를 세우고, 혼란스러운 현실 세계와 영원불변한 지성(知性)의 세계를 가르는 거대한 지적 성채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히 스승을 잃은 슬픔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었다. 정치, 윤리, 예술, 교육, 그리고 존재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세우려는 웅장한 시도였다. 훗날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서양의 2천 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에 대한 각주(footnotes)에 불과하다"라고 평했을 만큼, 그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생각의 틀' 자체를, 바로 이곳에서 완성해 낸 것이다.
그는 스승의 질문을 이어받아 생각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나무들은 모두 다르다. 어떤 나무는 크고 웅장하며 수백 년을 살아가지만, 어떤 나무는 작고 볼품없으며 금방 시들어 죽는다. 어떤 나무는 곧게 하늘로 뻗었고, 어떤 나무는 비바람에 휘어져 기이한 모습이다. 이 모든 끊임없이 변화하고, 태어나고, 죽어가며, 결코 완벽하지 않은 개별적인 나무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나무’라는 단 하나의 영원하고 보편적인 개념을 가질 수 있는가?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할 때,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꽃병, 아름다운 석양을 떠올린다. 이 모든 서로 다른 것들을 똑같이 ‘아름답게’ 만드는 그 공통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이 세상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플라톤은 마침내 그 답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감각의 세계에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가 보기에,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이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고, 썩어 없어지며, 모순으로 가득 차 있어 진정한 앎(episteme)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불완전하고 거짓된 그림자의 세계에 불과했다. 진짜 세계, 영원하고 완벽하며 불변하는 진리의 세계는 오직 우리의 육체적 감각을 초월한 순수한 이성(nous)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이데아(Idea)’ 혹은 ‘형상(Form)’의 세계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개별적인 나무들은 모두 ‘나무의 이데아’를 불완전하게 모방한 복사본일 뿐이며, 우리가 느끼는 개별적인 아름다움들은 모두 ‘아름다움 자체의 이데아’를 희미하게 반영하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는 이 급진적인 세계관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어두운 동굴 벽만을 바라보도록 목과 다리가 사슬에 묶인 죄수와 같다. 우리 등 뒤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이 있고, 그 불빛 앞으로 온갖 종류의 사물들(인형, 도구 등)을 든 사람들이 지나간다. 우리는 그 사물들의 그림자가 동굴 벽에 어른거리는 것만을 볼 수 있을 뿐, 진짜 사물은 결코 볼 수 없다. 우리는 평생 동안 그 흔들리고 왜곡된 그림자를 진짜 세계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철학자의 임무는 용감하게 이 사슬을 끊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동굴 밖으로 나가 진짜 세계, 즉 이데아의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는 세계를 직접 보고, 다시 동굴로 돌아와 어둠 속에 갇힌 다른 죄수들에게 그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강력하고 매혹적인 비유 속에서, 1장의 사냥꾼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느꼈던 그 순수한 경이로움, 눈보라 속에서 가족을 떠올리며 느꼈던 그 뜨거운 감응은 이제 동굴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대한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감각의 오류일 뿐이다. 진짜 아름다움은 오직 순수한 이성으로만 파악 가능한 ‘아름다움의 이데아’ 속에 존재하며, 진짜 사랑은 오직 육체의 욕망을 넘어선 영혼의 교감, 즉 ‘사랑의 이데아’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오직 육체의 감각과 감정의 방해를 극복하고 초월한, 순수한 이성의 눈으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소크라테스에게서 촉발된 ‘거대한 분리’는 플라톤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진리의 세계 (이데아) vs. 거짓의 세계 (현실, 감각 세계)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 (정신, 영혼) vs. 일시적이고 변화하는 것 (육체, 물질)
참된 인식 (이성, Nous) vs. 불완전한 의견 (감각, 감응, Doxa)
이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이원론의 틀 안에서, ‘감응하는 육신’은 더 이상 진리를 향한 통로나 세계와 만나는 창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리를 가리는 장애물이자, 영혼이 벗어나야 할 더럽고 무거운 감옥이 되었다. 철학은 이제 세계와 깊이 ‘연결’되고 공명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 불완전한 세계로부터 ‘탈출’하여 영원한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의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는 철학이 이제 구체적인 삶의 경험보다는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플라톤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이러한 급진적인 이원론을 일부 비판하며, 다시 현실 세계, 즉 우리가 감각하고 경험하는 이 세계로 철학의 무게 중심을 되돌려 놓으려 했다. 훗날 라파엘로가 그린 명화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킬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결정적인 차이를 상징한다.
그는 이데아가 저 멀리 하늘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물 안에 그것을 그것이게끔 만드는 ‘형상(form)’으로서 내재해 있다고 주장했다. 즉, ‘나무의 이데아’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참나무 안에, 저 소나무 안에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뛰어나고 확실한 방법은, 감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분류하며, 보편적인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동물과 식물을 분류하고, 정치 체제를 분석했으며, 시학의 법칙을 정리했다. 그는 ‘설명’의 세계를 인류 역사상 최초로 체계화한 위대한 과학자였지만, 그 과정에서 스승 플라톤이 진리에 닿지 못하는 ‘가짜’라며 축출해버렸던 ‘정당화’의 세계, 즉 감응과 이야기, 신화가 가진 독자적인 가치와 중요성을 온전히 복원하지는 못했다. 그는 분명 ‘시와 이야기’의 세계를 긍정하고 분석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분석의 대상으로서였지, 과거의 ‘살아있는 감응’ 그 자체로의 복귀는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감정은 여전히 이성이 통제해야 할 대상이었고, 그에게 시(詩)는 중요한 통찰을 줄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이성이 정리하고 분류해야 할 어떤 것으로 남았다.
이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분리—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응의 분리—가 어떻게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기독교 신학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더욱 단단하게 벼려지고, 마침내 17세기 유럽의 어느 추운 겨울날, 한 철학자의 고독하고 불안한 방 안에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명제, 근대 세계 전체를 떠받치는 주춧돌로 완성되는가? 그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이제 신앙과 이성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새로운 과학이 낡은 세계를 뒤흔들던, 격동의 17세기로 시간 여행을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