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거대한 분리: 이성의 왕좌, 감응의 추방
제3장 광장의 소음, 영혼의 질문
3절. 소크라테스의 질문, 신화의 종말
바로 그 시끄럽고 활기찬 아고라를 둘러싼, 스토아(회랑)의 기둥이 드리운 시원한 그늘 아래, 한 늙은 철학자가 맨발로 서서 아테네에서 가장 똑똑하고 야심에 찬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이름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탈레스처럼 지혜로 현실의 부를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현자도 아니었고, 아낙시만드로스처럼 우주의 근원에 대한 거대한 이론을 펼치는 학자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질문을 던지러 그곳에 있었다. 그는 늘 아테네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입에 달고 사는 익숙한 단어들의 진짜 의미를 집요하게 물었다. 그는 지금 ‘정의(正義, Dikaiosyne)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당시 아테네 기준으로 보면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값비싼 염색 옷을 걸치고 화려한 수사학을 뽐내며 젊은이들에게 성공의 기술을 가르치던 다른 소피스트(Sophist)들과 달리, 그는 언제나 닳아빠진 허름한 튜닉 한 장을 걸치고 맨발로 아고라를 어슬렁거렸다. 툭 튀어나온 눈과 넓적한 들창코, 두툼한 입술은 당대 그리스인들이 조각상으로 찬양하던 이상적인 남성미(美)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스스로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살아 있었고, 호기심과 장난기, 그리고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예리함으로 반짝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은 그 어떤 장군의 창보다도 날카롭고 깊숙하게 사람들의 무지를 찔렀다.
그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이 자신을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 신탁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알려진 정치가, 시인,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정말로 자신이 말하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검증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고 자신했지만, 소크라테스의 날카로운 질문 몇 개 앞에서 그들의 지식이 얼마나 얕고 모순적인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점에서 그들보다 조금 더 지혜로울 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는 스스로를, 위대한 도시 아테네라는 거대하고 혈통 좋은 말이 나태와 무지의 잠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귀찮게 쏘아대는 ‘등에(gadfly)’를 자처했다.
그날도 등에의 역할은 계속되고 있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그의 질문에, 아테네 굴지의 재력가 집안 아들답게 혈기 왕성하고 자신감 넘치는 청년, 폴레마르코스가 거침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의란 간단합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친구에게는 선(善)을 베풀고, 적(敵)에게는 해(害)를 끼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보편적인 상식이자,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노래했던 아킬레우스나 오디세우스 같은 영웅들이 몸소 보여준 중요한 미덕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교묘한 함정이 숨어 있었다. “훌륭한 생각이네, 폴레마르코스. 정말 명쾌하게 들리는군. 그런데 말일세,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우리의 이익을 해치려는 나쁜 사람이거나 우리의 숨겨진 적일 수도 있고, 반대로 우리가 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이거나 미래의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의 판단은 종종 이렇게 틀리지 않나?” 폴레마르코스는 잠시 머뭇거렸다.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오해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자네의 정의에 따르면, 우리는 정의롭기 위해 때로는 나쁜 친구에게는 선을 베풀고, 좋은 적에게는 해를 끼쳐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가? 그것이 과연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나? 오히려 그 반대가 정의롭지 않겠는가?” 폴레마르코스는 혼란에 빠졌다. 너무나 명백해 보였던 정의의 정의가 소크라테스의 질문 몇 개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주변에서 듣고 있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집요한 질문은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고발과 ‘새로운 신을 들여온다’는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기 전, 관청 앞을 지나던 어느 날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그곳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발하러 가던 경건한 청년, 에우티프론이 있었다. 자신의 종을 부당하게 죽게 내버려 두었다는 이유였다. 당시 아테네 사회에서 자식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불경한 일이었지만, 에우티프론은 신들의 뜻에 대한 자신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것이야말로 경건하고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신들의 뜻에 대해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하던 그가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답했다.
“정의와 경건함(Piety)이란 무엇보다도 신들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행하고, 신들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당시 아테네 시민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종교적 믿음에 기반한 표준적인 대답이었다. 신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모든 선의 기준이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중요한 딜레마 중 하나를 던졌다.
“훌륭하네, 에우티프론. 그런데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그리스의 신들이 모두 똑같은 것을 사랑하고 미워하던가?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보면, 하늘의 왕 제우스가 사랑한 아름다운 여인을 그의 아내 헤라는 끔찍이도 질투하고 복수하지 않았나? 트로이 전쟁에서는 신들이 편을 갈라 서로 싸우고, 서로를 속이며 인간들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나? 어떤 행동(예를 들어, 아버지를 고발하는 자네의 행동)은 어떤 신에게는 정의롭고 경건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신에게는 끔찍한 불경으로 보일 수도 있네. 그렇다면 그 행동은 경건한 동시에 불경건하다는 말인가? 대체 우리는 그 많은 신들 중에서 누구의 기준을 따라야 한단 말인가?”
소크라테스의 예리한 지적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신들의 변덕스럽고 때로는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과 갈등은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영원하고 보편적인 도덕적 기준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우티프론은 당황했지만,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조건을 좁혀 다시 대답했다. “그렇다면, 아마도 모든 신들이 공통적으로 사랑하시는 것, 예를 들어 정의로운 행동 같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화적 세계관의 심장을 겨누는 마지막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좋다, 에우티프론. 잠시 모든 신들이 똑같은 것을 사랑하고 미워한다고 가정해보세. 그렇다면 내 진짜 질문은 이것이네. 어떤 행동이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이 그것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신들이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경건한 것인가?”
이 질문은 언뜻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은 신화의 세계와 철학의 세계를 가르는 거대한 분수령이었다. 만약 ‘신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경건한 것’이라면, 경건함과 정의로움의 기준은 전적으로 신들의 변덕스럽고 알 수 없는 의지에 달려있다. 신의 명령은 그 내용과 무관하게 절대적인 선이 된다. 만약 신들이 내일 갑자기 이유 없이 이웃을 미워하라고 명령한다면, 미움은 경건한 행위가 되어버린다. 진리의 기준이 신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 종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이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는 경건함, 정의로움, 즉 ‘선(善)’이라는 것이 신들의 사랑이나 미움과는 독립적으로, 그 자체로 존재하며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신들조차도 그 기준을 발견하고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객관적인 ‘선’의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질문과 함께, 인류는 비로소 신들의 시대를 떠나, 인간 이성(Reason)의 시대로 들어서는 결정적인 문턱을 넘게 된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기준을 더 이상 하늘의 계시나 오래된 신화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 즉 이성적인 사유와 논리적인 탐구를 통해 찾아야 한다는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사람들을 신들의 변덕스러운 이야기로부터 떼어내어, 그들 자신 안의 이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그는 신화라는 안락하고 익숙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지적인 산파(産婆)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정답을 주는 대신, 그들 스스로 자신의 무지와 편견을 깨닫고 진정한 앎을 ‘낳도록’ 돕고 있었다.
그가 아테네 곳곳에서 집요하게 물었던 것은 “어떤 행동이 정의로운가?”라는 구체적인 사례가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정의로운 행동들을 관통하는 ‘정의(Justice) 그 자체’, 즉 변치 않는 하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윤리에 대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정의’나 ‘용기’에도 고유한 본질이 있다면,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지는 이 세계의 사물들에도 변하지 않는 본질이 숨어 있지 않겠는가?
소크라테스의 이 집요한 탐구는 훗날 제자 플라톤에 의해 철학의 가장 거대한 주제, 즉 ‘형이상학의 근본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신들의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고, 우리 스스로의 이성으로 다시 생각해볼 때, 저기 저 나무는 나무이고, 저 돌은 돌이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다. 이 모든 것은 잠시 있다가 시간 속에서 변하고 결국 사라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있는 것’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무엇, 그것들을 ‘나무’이게 하고 ‘돌’이게 하며 ‘나’이게 하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