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이 내게 가르쳐 준 자격의 무게
어릴 적 나의 밤은 늘 외로움의 냄새가 났다. 간호사 엄마를 둔 덕분에 3교대의 불규칙한 리듬이 우리 집의 시계였다. 엄마의 부재가 주는 쓸쓸함이 싫었고, 남들을 돌보느라 정작 자식은 돌보지 못하는 그 직업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다짐했었다.
"나는 절대 3교대 근무를 하는 직업은 선택하지 않으리라."
그랬던 내가, 서른 중반의 나이에 제 발로 간호학과 입학원서를 썼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2025년, 불경기의 한파 속에 나는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회사가 내민 표면적인 이유는 '경영상의 어려움'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 자리를 정리해야 한다던 회사가, 다른 부서에서는 버젓이 신규 채용 공고를 올리고 있었으니까. 그 알 수 없는 기준과 상황들이 그저 야속할 뿐이었다.
그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나는 잔인한 현실 하나를 마주했다. 솔직히 말해 업무 성과나 기여도 면에서는 내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수가 잦아 회사에 손해를 끼치기도 했던 분은 살아남았고, 나는 떠나야 했다. 그와 나의 차이는 단 하나였다. 그에게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국가 기술 자격증'이 있었고, 나에게는 없었다.
일의 잘함과 못함이 아닌, 자격증 한 장의 유무가 나의 생존을 갈라놓았다. 주위 동료들은 "너무하다"며 같이 울어주었지만, 그 무력감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퇴사 후 한 달은 텅 빈 시간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억지로라도 바쁘게 지낼 핑계를 찾아 헤맸다. 그다음 한 달은 몸이 무너졌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져 위염 약을 달고 살았고, 침을 맞으러 다녔다. 몸이 회복된 뒤에도 마음의 따끔거림은 가시질 않았다. 믿었던 조직에서 내쳐진 상처, 그리고 내 능력만으로는 나를 지킬 수 없다는 불안감이 나를 갉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무심코 던진 말이 내 귀에 꽂혔다.
"우리 요양병원에 이번에 50대 넘은 신입 간호사가 들어왔는데 글쎄..."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서른 중반에 회사에서 내쳐졌는데, 누군가는 오십이 넘어서도 새로운 곳에 '신입'으로 당당히 들어간다고? 그 차이는 명확했다. 면허증. 나를 증명할 필요 없이, 그 종이 한 장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물론, 지금 내가 가진 경력으로 다른 회사에 재취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신뢰는 깨졌다. 또다시 최저임금에 가까운 돈을 받으며 감정 노동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 지금의 직업을 이어가는 내 미래가, 몸이 고된 간호사의 길보다 더 위태로워 보였다.
그 길로 간호대 편입 준비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간호사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태움과 3교대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나 역시 안다. 심지어 나는 그 삶이 싫어서 도망쳤던 딸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 '백의의 천사'를 꿈꾸며 간호대에 가는 것이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 간다.
똑같이 고된 감정 노동이라면, 적어도 나이가 들어서도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누구도 함부로 나를 흔들 수 없는 전문직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가장 기피했던 길 위에 다시 섰다. 이것은 서른 중반, 생존을 위해 다시 펜을 잡은 만학도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