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중반 만학도의 선택과 집중 입시 전략
퇴직금을 털어 엄마 품에 명품백을 안겨드린 그달, 팽팽했던 내 긴장의 끈도 툭 하고 끊어졌다. 효도의 기쁨은 짧았고 몸살은 길었다. 잔치가 끝나자마자 거짓말처럼 내 몸의 전원 스위치가 꺼져버린 것이다.
한 달 내내 앓아눕다시피 하며 골골대다 보니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가 있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달력을 봤을 때, 면접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한 달 반.
간호학과 편입을 하려면 '전적대 성적, 토익, 면접'이 세 박자가 딱딱 맞아야 한다는데, 지금 나에겐 시간이 부족했다.
내 전적대 성적은 백분율 92점.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어디든 문을 부수고 들어갈 프리패스 점수도 아니다. 남은 건 토익인데...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봐도 답이 안 나왔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영어는... 입학 후의 미래의 나에게 부탁하자."
미래의 나에게 짐을 쿨하게 떠넘기고, 나는 '토익 포기, 면접 올인' 전략을 택했다. 내가 가진 무기는 오직 하나, 지난 사회생활로 다져진 경험뿐이었다.
학교 선정부터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토익 고득점을 요구하는 학교들은 깨끗하게 포기했다. 내가 노릴 틈새시장은 딱 두 곳이었다. 우리 지역 전문대(대졸자 전형 1학년 신입학)와 토익을 보지 않는 학교들.
선택지는 확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목표는 선명해졌다. "전공 면접과 인성 면접, 이 두 놈만 판다."
하루 4시간은 전공 공부에 쏟고, 나머지는 4시간은 인성 면접 기출문제를 파고들었다. 그런데 첫 질문인 지원 동기부터 턱 막혔다.
솔직히 말하면 생계 때문이다. 밥벌이할 기술이 필요해서. 하지만 회사 면접 때처럼 "자아실현과 귀사의 발전을 위해" 같은 뻔한 거짓말을 하기도, "돈 때문에 왔습니다"라고 너무 투명하게 말하기도 싫었다.
결국 나는 챗GPT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야, 내가 상담 일을 했고 감정노동을 많이 겪었는데... 이걸 간호학과 지원동기로 어떻게 엮으면 좋을까? 너무 돈 때문인 거 티 안 나게."
AI와 30분 넘게 씨름한 끝에, 나는 '감정 노동 현장에서 느꼈던 한계를 전문적인 간호 지식으로 극복하고 싶다'는 그럴싸한 논리를 완성했다. 겨우 자기소개 하나 만드는 데 진이 다 빠져버렸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다는 자부심은 세월 앞에 무색해졌다. 미토콘드리아가 어쩌고 항상성이 어쩌고... 십수 년 전의 배움은 머릿속에서 먼지처럼 흩어진 지 오래였다.
머리가 지끈거릴 땐 과감하게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이 방대한 범위를 다 외우려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게 뻔했다. 이해하고, 반복하고, 그래도 안 외워지는 난해한 개념들은 미련 없이 쳐냈다.
"복잡한 건 버린다. 내가 아는 것만 확실하게 털고 나오자."
공부하다 지치면 침대에 누워 웹소설을 읽거나 게임을 했다. 백수에게 주말이 어디 있겠냐마는, 하루를 통으로 농땡이 피우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불안감이 엄습하곤 했다.
'요즘 간호사 취업도 불취업이라던데 이게 맞나? 그냥 다시 회사로 돌아갈까?'
간호사 채용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합격 후기 블로그를 염탐하며 마음을 저울질했다. 간호사가 된다고 해서 꽃길만 있는 게 아님을 안다. 그곳 역시 사람에게 치이고, 소모품처럼 굴려지는 고된 현장일 테니까.
하지만 '경험'만으로는 뚫기 힘든 좁디좁은 일반 취업 시장과 달리, '면허'가 있는 세상은 적어도 기회의 문이 넓어 보였다. 회사를 나온다고 내 경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대체 가능한 수많은 지원자 틈바구니에서 기약 없이 서성이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 손안에 확실한 기술 하나는 쥐고 사는 삶. 좁은 문을 통과하려 애쓰는 대신, 조금은 넓은 광장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것이 권고사직을 겪으며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인성 면접 답변을 준비했다. 나의 장단점, 존경하는 인물, 나이 어린 동기들과의 융화... 답변을 쓰기 위해 지난 내 인생을 복기하다 보니, 잊고 있던 내 모습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상담을 더 잘하고 싶어서 무급으로 정신건강센터에서 봉사했던 나. 자격증 하나 따보겠다고 동기들을 모아 스터디를 이끌던 나. 공장 2교대 밤샘 근무를 버티며 학비를 벌었던 나. 취업하겠다고 맨땅에 헤딩하듯 현직자 인터뷰를 하러 다니던 나.
"나, 꽤 치열하게 살았잖아?"
면접 준비를 하기 전까지 나는 내 인생이 보잘것없다고,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박한 점수를 주고 있었다. 그런데 면접관을 설득하기 위해 내 인생을 정리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내가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게 되었다. '고생했네. 너 참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쳤구나.' 그렇게 면접 준비 시간은 뜻밖의 자존감 회복 시간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원서 접수 시즌이 왔다. 타 지역을 포함해 총 17곳. 전문대 홈페이지와 대행 사이트를 오가며 원서를 넣을 때마다, 운 좋게 원서비가 없는 곳도 있었지만 적게는 3만 원, 많게는 8만 원이 순식간에 계좌에서 증발했다.
수십만 원의 접수비가 빠져나가는 걸 보며 나는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제발 하나만 걸려라. 대한민국 땅덩어리에 내가 공부할 책상 하나는 있겠지."
불안과 희망, 그리고 텅 빈 통장을 안고 나는 1차 발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남은 건 나의 서사를 보여주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