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길을 내려놓기로 한 이유

두 번째 좌절

by GreenT

필자가 처음 코딩을 접한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우연히 수업 시간에 알게 된 ‘스크래치’라는 프로그램으로
조악한 슈팅 게임 하나를 만들었다.
그래픽도 엉성했고, 완성작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코딩이라는 것에 강하게 끌렸다.
어떤 상상이든,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의 진로는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머로 정해졌다.
고등학교에서도 컴퓨터 계열로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고,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에는 큰 의심이 없었다.


무사히 수능을 마치고 원하던 학과에 입학한 뒤,
1학년을 마치고 군 복무를 다녀왔다.
그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AI 열풍이 거세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알던 세상에서 개발자는 여전히 ‘전문 기술직’이었다.


하지만 복학 후,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AI가 수많은 직무를 대체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대부분의 일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뉴스가 연일 쏟아졌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AI를 사용해본 뒤, 솔직히 말해 적잖은 좌절을 느꼈다.
수년간 쌓아온 나의 노력이,
단 몇 줄의 프롬프트로 만들어진 결과보다
훨씬 별볼일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투자한 시간이 무색할 만큼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코딩으로 먹고사는 시대는,
어쩌면 나와는 연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이 개발자가 더 이상 쓸모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소수의 창의적이고 뛰어난 개발자들에게는
더 넓은 기회가 열리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에게는 그 길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계속 나아가야 할 이유보다,

멈춰서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돌아섰다.


하지만 수년간 쌓아올린 무언가가 무너지는 경험은
이미 한차례 겪어본 적이 있었기에,
이번 좌절이 내게 결정적인 상처로 남지는 않았다.
대신 이 결정은, 나의 생각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컴퓨터공학은 내게 단 하나의 생계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알려준,

그저 하나의 언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스스로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미래에는 어떤것이 유망할까?'가 아니라,
'미래에도 남아 있을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말이다.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정교해질 것이다.
영상도, 글도, 음악도
모든 것을 AI가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오히려 더 ‘사람다운 것’에 끌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금 서툴고, 모순적이며, 불완전하지만
그렇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고,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말들.


AI가 무엇이든 만들어줄 수 있는 시대일수록,
누군가의 진짜 고민과 경험에서 나온 목소리는
오히려 더 귀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고민 끝에 개발자의 길에서 한 발 물러나기로 했다.
AI라는 변화의 물결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이 변화의 시대를 이해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기계처럼 완벽한 코드를 만드는 사람보다는,
기술이 만든 세계를 해석하고
그 안에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 글 역시 그 선택의 연장선에 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있을 누군가에게


이 글이 하나의 답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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