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글을 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마감이 있는 것도,
당장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이 일을 멈추지 못한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이렇다.
나의 영향력과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서.
어디에 내놓아도
크게 부끄럽지 않은,
꽤 고상한 이유들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명분일 뿐이다.
어느 날이었다.
아침일찍부터 글 하나를 올려놓고
습관처럼 조회수를 확인했다.
평소보다 반응이 눈에 띄게 적었다.
좋아요도, 댓글도 거의 없었다.
별일 아닌데도
가슴이 묘하게 내려앉았다.
‘이번 글은 별로였나.’
‘이제 사람들 관심이 식은 건가.’
나는 글의 내용보다
숫자에 더 오래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쓰고싶은 글에 집중하고 있는게 아니라,
그저 숫자를 통해 나 자신이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어쩌면 나는
깨어있는 지성인같은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름난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말을 빌려,
그럴듯한 문장들로
초라한 내 모습을 가려보려던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떨어지는 조회수와 반응에 내가 불안해한 것은
애당초 내 목적이 글 자체에 있던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증명받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뒷받침해주는 증거일 것이다.
나도 이러한 내 자신이 싫지만,
이 짓마저 하지 않으면
덮쳐오는 불안에 질식할 것만 같아서.
나는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린다.
때로는 이런 내 모습이
지독히도 위선적으로 느껴져
견디기 힘들어질 때가 있다.
물론 오늘부터 글쓰기를
완전히 포기한다고 해도
당장 내 삶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공을 살려
컴퓨터 업계에 취업하거나
적당히 먹고살만한 일자리를 얻으면 그만이니까.
대다수가 택한 길을 따라가는 삶은 편하다.
선택의 책임을 타인에게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시켜서 했다고 말할 수 있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핑계를 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국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혼자 떠안아야 한다.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두렵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며
내 선택을 합리화하고,
잠시나마 그 두려움을 잊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이유 때문에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다.
나의 글쓰기가 비겁한 도피이고
비루한 합리화일지라도,
이런 생각마저 하지 않는 순간
나는 정말로 나 자신을,
삶의 이유를 잃어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해준 길 위에서
남 탓이나 하며 인생을 비관하기보다는,
차라리 내 문장 뒤에 숨어 떨고 있는
이 위태로운 자유가 내게는 더 절실하다.
그래서 나는 이 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내 위선에서 탄생한 문장이,
다시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할지라도,
이 시간은 내가 깨어 있다는 유일한 증거니까.
나는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지만,
정작 나 자신도
그 비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다.
먹고살기 위해 쓰고,
유명해지고 싶어서 글을 쓴다.
번듯한 성공 한 번 거두지 못한 자신을
어떻게든 합리화해보려 애쓰며
화려한 문장 뒤에
내 초라함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말로는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인용하며
“미래를 위해 많은 점을 찍어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이유보다는 핑계를 찾는 데 더 익숙하다.
'관심도 없는 일에 열정을 쏟고 싶지 않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스트레스가 클 것 같다'
'몸을 쓰는 일은 금세 한계를 맞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작가라는 길을 가려는 이유도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나의 자격을 물어보지 않는 일들 중
가장 고상해 보이고,
사람에게 가장 덜 상처받을 것 같은 직업
그게 작가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나를 숨기는 일이었으니까.
유쾌한 척,
착한 척,
괜찮은 척.
그렇다.
나는 위선적인 사람이다.
한때는 사람들의 불안을 위로하고
그럴듯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삶을 동경한 적도 있었다.
알량한 내 자신의 불안조차 해결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말로는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람들을 경멸했지만,
정작 나도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스스로에게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사람이었다.
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의 이기심이
너무도 역겹게 느껴진다.
나는 불안을 견디기 위해 글을 쓰지만,
글을 쓸수록
질문은 계속 늘어나고
내 가식적인 모습은 더욱 선명해진다.
매 순간
나 자신의 진실됨을 의심하게 된다.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조차도.
하지만, 어쩌면 이 글쓰기는
내게 남아 있는
마지막 양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체념하지 않았다는 증거,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증거.
나는 고결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그럴 수도 없겠지만.
다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끝까지 자각한 채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마 나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글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