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그들이 말하는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by GreenT

“공부 잘해야 성공한다.”

“학원은 다니고 있니?”
“시험은 잘 봤니?”


여러분도 한 번쯤은
이런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부모님에게서,
선생님에게서,
또는 주변의 많은 어른들에게서.


우리를 괴롭히는 방식은

늘 제각각이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하니까?"


그들은 마치

그 끝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행복’이라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직장에 들어가고나면요?"


"우선 시험성적이나 잘 받고 말하렴."


나는 그 행복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늘 궁금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런 질문 앞에서
슬쩍 화제를 돌리거나
대답을 미뤘다.


물론,
내가 더 끈질기게 물어봤다면
무언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결국 묻는 쪽을 포기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에 갔고,
직업도 구했다.


그러나 그 끝에 마주한 것은

새로운 삶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 행복이

뚝 떨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아니 애초에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궁금해졌다.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던 그 어른들은
과연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서 같은 말을 들었고,

아무도 다른 길을 말해주지 않았기에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으며

살아왔을 뿐일 것이다.


그 긴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는

모두에게 지나치게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마치 물고기와 원숭이를 같은 출발선에 세워놓고
누가 더 빨리 나무 꼭대기에 도착하는지를 경주하는 것처럼.


지금의 사회는 시작하기도 전에

결과가 이미 정해진 경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은

우리의 다양한 감정들을 촉발한다.

1등에게는 ‘밀려날 것’에 대한 불안을,

중간은 ‘추락’의 공포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좌절감을.


순위는
우리의 행복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모두의 불안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다.


마치 동화『꽃들에게 희망을』 에 나오는 애벌레 탑처럼 말이다.


그 동화속의 애벌레들은 자신이 왜 올라가는지,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마치 우리들처럼,

그저 다른 애벌레들이 올라가고 있으니

영문도 모른채 뒤쳐지지 않기 위해 탑을 오른다.


위로 올라갈수록

숨은 막혀오고, 몸이 부서질 것 같지만

누구도 선뜻 멈추지 못한다.


이제와서 멈추기엔 너무 아깝고,

내려가기엔 도태될까봐 두려우니까.


하지만

마침내 꼭대기에 도착한 애벌레들은 깨닫는다.

그들이 목숨걸고 올랐던 탑의 꼭대기에는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남은 것은 그저

“남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올랐다.”는

허무한 진실뿐이었다.


만일 이것이

우리들이 그토록 오르려 애쓰는

경쟁 사회의 종착지라면,


우리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서로를 밟으며

올라가고 있는 것일까?




순위는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탈락시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행복은

그런 상대적인 비교로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


더 이상 비교의 대상이 없어지더라도

우리의 욕심은 결코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반드시 도태되어야하는

이러한 경쟁구조 안에서는

누구도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목표로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늘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과 정답에

오랜시간동안 길들여져왔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은

결코 하나의 정답으로만 귀결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정답인 것이

꼭 나에게도 정답이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니까.

많은 이들이 가는 길이라고

반드시 당신에게도 맞는 길이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사회적 준거가 아니라

오직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평생 나무를 오르는 물고기나,

힘들게 헤엄치며 세상의 불합리함을 비난하는

원숭이가 되고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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