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을 바친 Java를
AI에게 빼앗겼다

특이점의 문턱에서, Java 개발자가 소크라테스를 읽기 시작한 이유

by GreenT

내가 존경하는 개발자 중 한 분은 지독한 ‘독학 개발자’였다.

대학 교육 없이 그저 컴퓨터에 대한 순수한 애정만으로 0과 1의 세계에 뛰어든 그는,

낮에는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고 밤에는 바텐더로 일하며 공부할 돈을 마련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두꺼운 원서를 사서 탐독하며 홀로 밤을 지새우던 시간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길을 열정 하나로 버텼던 그는 시간제 강사를 거쳐,

어느덧 삼성카드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의뢰받을 만큼 숙련된 개발자가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대학원을 졸업한 쟁쟁한 전공자들 사이에서

비전공자라는 꼬리표는 늘 그를 따라다녔다.

최신 기술 습득, 복잡한 알고리즘, 영문 문서와의 사투까지.

남들에게는 성공이라 치부될 만한 위치에 올랐음에도

그는 늘 보이지 않는 벽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좋아했기에,

10년이 넘는 고단한 세월을 묵묵히 견뎌냈다.


이 무모할 정도로 성실했던 분은, 바로 나의 아버지시다.


어린 시절 나에게 아버지의 등은 노력하면

반드시 결과로 보답받을 수 있는

정직한 세계의 상징이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컴퓨터소프트웨어 학과에 진학했고,

나 역시 아버지의 삶을 이어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아버지의 시대와는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시대는 너무나 효율적이고 무례하게 변했다.


아버지가 수년의 세월을 깎아 쌓아 올렸던 그 지식은,

갓 태어난 인공지능의 수초짜리 연산 앞에 너무나도 쉽게 정복당했다.

내가 며칠을 고민해 짠 로직보다

AI가 뱉어낸 코드가 더 정확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가 느낀 것은 경이로움과 ‘공허함’이었다.


아버지께 배운 “코딩은 정직하다”는 말은 이제 반만 맞는 듯싶다.

물론 코딩은 여전히 정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코드를 짜기 위해 들이는 노력의 가치는 형편없이 추락했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걸었던 ‘성실함으로만 승부하는 개발자의 길’은 더는 없다.

아니,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인간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게 되었다.


이 지독한 상실의 시대에서

나는, 아니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과연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물론 예전처럼 살아남기위해 밤을 새워 공부하여

다른 개발자보다 조금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그조차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우리는 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속 주인공처럼

아주 극소수의 운좋은 이가 아니라면 우리는 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상상이 아니다.

다만, 아직 그 변화에 이름 붙여지지 않았을 뿐이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속 대사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이토록 해학적으로 다가오는 시대가 또 있을까.

나같은 개발자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씹어대던 ‘Java’라는 솔잎은

이제 기계가 가장 잘 먹어치우는 먹이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송충이로 남는다면, 굶어 죽거나 기계에 밀려 멸종당하는 것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다.


그래서 나는 코드 대신 소크라테스를 읽기로 했다.


기계가 지능을 찬탈한 시대에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보루는

어떻게(How)’가 아니라 ‘왜(Why)’라는 질문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그 척박한 환경을 뚫고 개발자가 되었던 본질은

Java’라는 기술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술 너머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해 내려 했던 '인간적인 의지'에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처럼 밤을 새워 코딩 문법을 외우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방법으로는 AI가 판치는 이 시대에서 더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는 AI라는 거대한 엔진을 능숙하게 다루며,

기술이 채워주지 못하는 인간의 결핍을 찾아내고,

삶의 목적을 제시하는 ‘전략가’이자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진정한 유산은 ‘Java’라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기술적 변화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생존의 의지 그 자체였다.

나는 빼앗긴 Java라는 허망한 잔해 위에서,
기계가 결코 스스로 묻지 않는 질문,
‘인간의 목적’을 다시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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