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존슨증후군 후유증이 남아 있는 눈으로 살면서-
1.
"내 말 듣고 있어?"
"아뇨! 왜 그러세요?"
"왜 내 눈을 안 보고 탁자만 바라보면서 이야기 하는거야?"
'아.. 나도 모르게 또...' "제가 눈이 아파서 가끔 저도 모르게 이렇게 돼요. 죄송해요."
31년 전, 아홉 살에 스티븐존슨 증후군을 앓은 직후에는 땅만 쳐다보고 다녔다. 눈부심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무렵이었고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얼굴이 아닌 목소리로 친구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지경이었다.
그래도 2-3년쯤 지나니 눈부심이 조금 나아졌다. 땅만 바라봤던 내 시야는 점점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땅에서 사람 무릎 정도를 보다가.. 허리.. 어깨를 볼 수 있게 됐고 5학년쯤 되니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고개를 들자 사람들은 스티븐존슨증후군 후유증이 가득한 나의 얼굴과 마주했다. 피부도 빨갛게 얼룩덜룩하고 이상했지만 가장 도드라진 부분은 당연히 눈이었다. 막 발병했을 때 각막손상이 너무 심하여 오랜 기간 안대로 양 눈을 감싸 눈을 감고 있었기에 왼쪽 눈의 아래, 위 눈꺼풀이 일부분 붙어버려 완전한 짝눈이었기 때문이었다. 짝눈에 온통 빨간 눈. 게다가 눈부심에 째려보듯 뜬 눈. 수시로 고농도의 눈물 약을 넣느라 늘 가득했던 눈곱. 누가 봐도 이상했다. 지금처럼 다 큰 어른들을 주로 만났다면 덜했겠지만 그시절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내 또래의 초등학생들이었다. 90년대 초등학생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직설적이었는데(개인적으로 그렇게 느낀다. 나만 그런가?) 나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야! 너 얼굴 괴물 같아. 으악~" "너 눈이 이상해. 왜 그렇게 떠?" "으악 더러워! 눈곱이 왜 이렇게 많아?"하며 무안을 주는 일이 잦았다. 그 탓에 대화 중 친구들이 나를 빤히 바라볼 때면, 계속 날 바라보다가 또다시 그런 막말들을 또 할 것 같아서 점점 눈맞춤을 피했다. 그렇게.. 20대 초반까지도 나는 대화 중 사람들과 눈맞춤을 피하는 사람으로 살아갔다. 하지만 학생 신분이 끝나고 사회생활을하려면 그 버릇을 고쳐야 했다. 학생도 가르치고, 학부모 상담도 하는 교사인데. 게다가 사람과 눈 맞추고 대화하는 것은 우리 특수학급 학생들에게도 중요하게 가르쳐야 하는 부분인데.
'눈을 맞추기 버거우면 그 사람의 코끝을 봐야지'
오랜 세월 끝에 나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이었고, 실천하면서 서서히 나아졌다. 거의 30대가 돼서야 눈맞춤을 피하는 버릇을 완전히 고쳤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에게도 저 방법을 많이 말해주곤 한다.
2.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반드시 눈물약을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이 뻑뻑하고 너무 아파 눈을 뜰 수가 없다.
아침에, 그리고 건조한 환경에서는 오후까지도 2시간에 한 번즈음 눈이 부시거나 따갑다. 거울을 보면 토끼눈처럼 빨개져 있다. 그럴 때 눈물약을 넣으면 괜찮아진다. 하지만 아주 건조하거나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눈물약으로는 충분치 않아 안연고를 넣어야 한다. 듀라티어즈라는 눈물 성분 안연고이다. 이 연고는 스티븐존슨 증후군이 처음 발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30년을 넘게 사용했다. 어딜 가든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나 마찬가지이다. 듀라티어즈를 깜빡하고 급하게 외출하면 집에 돌아올 때까지 내내 불안해서 무슨 일을 해도 집중이 안 된다. 그래서 외출 전 안약파우치가 있는지 늘 강박적으로 점검하곤 한다.
눈에 염증이 생긴 날에는 항생제 안약을 넣지만, 듀라티어즈도 더 듬뿍 넣는다. 30년 가까이의 경험으로 볼 때 눈은 건조해지면 더 상태가 악화된다. 피부도 그렇지만 각막에도 늘 수분이 충분해야 한다.
자기 전에도 듀라티어즈를 듬뿍 넣고 잔다. 안 그러면 눈이 뻑뻑해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3.
각막이 손상되고 눈커플에 영향을 미치면서 안 쪽 속눈썹도 눈 속으로 파고들도록 자란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안쪽 속눈썹을 뽑아줘야 한다. 어릴 때는 1-2주에 한 번 안과에 가서 속눈썹을 제거하곤 했는데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안과 갈 시간이 도무지 안 나서(매일 야간'타율'학습을 하던 2000년대 초반) 내가 뽑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아주 너무 가늘어서 투명하다시피 한 솜털 속눈썹도 잘 뽑는다. 나의 주치의 안과 선생님께서는 내 속눈썹 뽑기 실력에 혀를 내두른다. "이야.. 이걸 안과 현미경도 없이 집에서 뽑는다고요?" "그럼요 선생님! 이래뵈도 속눈썹 뽑기 경력이 20년이 넘어가는데요."
4.
어릴 땐 2주에 한 번 동네 안과에 가서 속눈썹도 뽑고, 염증도 치료했는데 내가 스스로 그것들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점점 발길을 끊었다. 하지만 대학병원 안과에서 4개월에 한 번 필수적으로 점검을 받는다. 동네 안과에서는 늘 하던 처방만 하는 반면, 대학병원에서는 좀 더 세심하게 검진하고 새로운 치료를 시도하기도 한다. 최근에 안과에서 왼쪽 눈의 눈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눈물샘을 살짝 막는 치료를 했는데 아주 효과가 좋다. 덕분에 확실히 눈이 덜 건조하다. 의술은 시대가 지날수록 발전하고 이를 가장 빠르게 시도하는 곳은 대학병원이다. 스티븐존슨증후군이라는 병은 피부와 눈에 치명상을 남기는데, 피부는 몇 년 안에 완전 회복되지만 눈은 그렇지 않다. 엄청난 장기전이기에 대학병원 안과에서의 꾸준한 검진은 필수!
스티븐존슨증후군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는 내 눈. 이 후유증은 거의 평생 갈 것임을 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수월하게 일상생활을 한다. 그냥 평범한 안구를 지닌 사람이 하루 아침에 나의 안구로 살게 되면 매우 힘들겠지만.. 나는 일상에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아픈 내 눈에 적응을 해서 그럭저럭 감사한 마음으로 잘 관리하고 보살피며 살아간다.
일상의 많은 문제가 그렇지 않을까. 처음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닥쳤을 때는 이러고 어떻게 사나 싶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생각보다 강하다. 서서히 적응해서 잘 살아간다. 그러다 괜찮아지고, 조금씩 나아지면 거기에서 또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