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사교육 과열을 줄인다는 교육부, 그런데 왜 거꾸로 가는지-
"올해 사교육비 연간 **조- 역대 최고치를~"
"교육에서의 빈부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한 공교육 정상화에 힘을~"
해마다 교육부는 야심차게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공교육 정상화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지난 수 십 년간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째 교육부의 의지와는 반대로 사교육 시장은 커지고 있다.
고등학교에 근무해보기 전에는 내가 겪은 입시제도만 생각했다. 그래서 사교육 과열 현상을 보며 학생과 부모의 무지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낭비라 생각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도 물론 사교육을 받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사교육 없이 '혼공'하며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친구들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또 내가 사범대학에 진학해 교육학을 공부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그야말로 '제대로'공부하다 보니 더 자만한 것도 사실이었다. '사교육 없이도.. 학교 수업 잘 듣고 교과서 위주로 제대로 공부하면 충분히 1등급 받을 수 있는데'라고 생각했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20여년 전의 고등학교라면 과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학교 진도에 맞춰 제대로 공부하다 보면 내신 대비도, 수능 대비도 충분히 가능했다.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사교육을 못 받아서- 는 공부를 제대로 열심히 하지 못한 학생들의 핑계로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대 이후 고등학교에 근무하며,
지금은 사교육 하나 없이 학교 수업에만 의존하는 학생들이 좋은 입시 결과를 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됐다. 이제껏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고,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히겠다고,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하며 숨통이 좀 트이도록 하겠다고 만든 여러 가지 조악한 제도들 때문에 이지경이 된 것 같아 너무 속상하다.
#1. 다양한 진로탐색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중학교의 자유학기제
중학교에 다니는 6학기 중 한 학기는 지필평가가 아예 없어 성적 산출 자체를 하지 않는다. 교과 수업 이외 다양한 진로탐색활동을 한다. 다양하게 풍부하게 진로탐색활동을 해보라는 취지였는데 몇백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운영하자니 장소도 활동내용도 제약이 많다. 이걸 다 교과내용만을 전공한 교사들이 기획해 짜라고 한다. 게다가 안전 문제는 왜이리 민감한지-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이 활동 저 활동 형식적으로 깔짝인다. 어설프게 이거대로 하느라 교과내용은 소홀히 다룬다. 제대로 교과 내용을 배우지 않고 시험도 안 본 학생들.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이거 학교에서 공부를 아예 안하나본데? 이러면 고등학교가서 못 따라갈텐데? 결국 학원 수업으로 이 부분을 보충한다. 학원에서 실시하는 레벨테스트에 의존한다. 더 불안해져서 사교육은 점점 늘어난다.
#2. 풍부한 현장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라고 만들어진 학교장허가 현장체험학습 제도
학생들은 연간 20일 간단한 계획서, 보고서만으로 학교장허가 현장체험학습을 쓸 수 있다. 엄연히 학교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학생들은 출석한 것으로 인정받으며 수업을 빠지고 여행을 가거나 친척집을 방문할 수 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다. 연간 수업일수가 190여일이고 그마저도 지필평가 기간, 체육대회나 축제 외부활동 등을 제외하고 나면 진짜 '수업'을 하는 날은 170일이 될까 말까이다. 그 중 20일이라면 10%를 훌쩍 넘는 기간이다. 그러면 그만큼의 수업 결손은 어디서 보충하나? 결국 이에 따른 학습결손은 사교육에서 보충하란 소린가? 이런 생각이 든다.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면 학교 수업의 중요성을 더 강화해서 오히려 수업 결손이 최대한 없게끔 제도를 보완해야하는 것이 아닌지-
#3. 학교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겠다며 지나치게 확대한 수행평가 비중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수행평가가 있었지만 그 비중은 크지 않았다. 그래서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시간도, 평가하는 시간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고등학교에서 수행평가 비중은 과목당 40%-60% 사이이다.
수행평가를 교과내용 외에서 내는 것도 아니고, 이제 숙제로 내주는 것도 아니고 학교 일과중에만 실시하겠다는데 그러면 더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거 아니야??
물론 교과내용 내에서 수행평가를 출제한다. 근데 비중이 크다 보니 과목별로 수행평가를 3-4가지 실시한다. 수행평가가 많다 보니 교과 선생님들은 교과 진도를 서둘러 나가고 수행평가시간을 확보한다. 3월부터 4월 중순까지 속전 속결로 수업을 하다보니 학교 진도에 맞춰 교과 내용을 학습하기는 매우 버겁다. 이 진도를 따라가려면 선행학습이 돼 있거나 보충학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 수행평가가 과목당 3-4개인데 수행평가 시즌에 여러 과목 수행평가가 몰리기 때문에 혼자 수행평가를 준비하기가 너무 벅차다. 게다가 수행평가는 대부분 발표, 논술의 형태로 이뤄진다. 학교수업 중 이런 것을 연습할 시간이 없다. 사교육에서 수행평가에 출제될 만한 것들을 알려주고 발표연습, 논술쓰기도 도와준다.
#4. 시험성적 뿐 아니라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를 살피겠다는 취지의 학생부 종합 전형
20여년전에도 수시제도가 있었지만 수시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20%남짓이었다. 대부분 정시로 대학에 진학했기에 입시제도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그냥 학교 내신 잘 관리하고, 수능대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학생들의 임무였다. 수시전형을 위한 다른 활동들도 가끔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험 성적 관리였다.
하지만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것은 교과전형과 다르게 생활기록부 전반을 들여다보는 제도이다. 학생들은 생활기록부를 알차게 채우기 위해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교내 프로젝트 활동, 세부 특기 활동 등을 다양하게 알차게 해야 한다. 스무살도 안 된 학생이 혼자 관리하기는 어렵다. 이 생활기록부를 '컨설팅'한다는 사교육에 의존해 상담을 받는다. 수업 외 다양한 활동으로 생긴 학습 결손도 사교육으로 떼운다.
#5. 학생들에게 희망진로에 맞는 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겠다는 취지의... 그러나 사상 최악의 아수라장이 된 고교학점제
하.. 사교육 의존도를 최고로 끌어올린 교육제도가 아닌가 싶다.
이제 고등학생들은 대학생들처럼 자신의 희망 진로와 연계된 과목을 선택해 수강한다. 그렇게 일정 학점을 채워야 졸업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과목이 학점으로 인정이 되기 때문에 1학년 공통과목을 마치면 2학년때부터는 많은 과목들이 한 학기에 마무리돼야 한다. 고교학점제 이전에는 1년에 걸쳐 배웠던 과목을 한 학기에 집중적으로 공부하니 내용이 어마어마하다. 선행학습 없이 모든 과목의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를 챙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역시 사교육이 필요하다. 여기에 수능시험은 1학년때 배운 공통과목으로 본단다. 학교별로 과목도 등급도 수준도 천차만별이라고 판단한 대학교들은 이 공통으로 치뤄지는 수능시험 성적을 중요하게 본단다. 고 2,3학년 학생들은 자기가 선택한 과목 공부에, 수능시험을 위하 1학년때 배웠던 가물가물한 공통과목까지 또 이중으로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희망 진로에 딱 들어맞는 과목들로만 자기 시간표를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희망 학생이 적은 과목은 성적 산출이 어려워 등급이 나오지 않는다며 기피된다. 그러면 폐강된다. 폐강되는 과목들이 생기니 다양한 과목이 개설되지 못한다. 또 개설한다 해도 사범대학에서 교과 내용 교수법만 배운 교사들은 생소한 과목들을 가르치기가 참 난해하다. 학생 수가 적은 지방 학교에서는 개설 과목 수도 더 적다. 학교 규모에 따라 교육 편차가 생긴다. 학생들은 혼란스럽고 버거워 또 사교육에 의존한다.
이제껏 교육부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한다고, 숨통 좀 트이게 하자고, 성적에 의한 서열화와 과열 경쟁을 막자고, 획일화된 수업 말고 다양한 활동을 해서 창의성을 키우는 학교를 만들자고... 하다가 공교육의 정상화는 커녕 사교육의 의존도를 더 키워 버렸다.
선택? 다양성? 창의성? 물론 좋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기의 교육은 잡다한 것보다는 '기본'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12년간의 초중고 교육과정은 수많은 전문가들이 공들여 만든 체계이다. '우리가 이것만은 배워야 어른이 돼서 세상을 보다 잘 이해하고 살면서 겪는 많은 문제를 헤쳐 나갈 수 있다'라고 합의된 것이다. 지식적인 측면을 떠나서.. 이 교육과정의 내용을 공부하면서 어렵고 힘든 것을 견뎌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단단해진다. 전 과목의 다양한 개념을 다루며 기본 어휘력과 문해력을 향상시킨다.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다. 기본기를 채 다지기도 전에 선택권을 지나치게 부여하고 창의성을 발휘해보라고 하는 것은.. 글자도 모르는 아이에게 200자 원고지에 창의적으로 글을 한 편 지어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 생각은..
선택과목보다는 모든 학생들이 공통된 과목을 배우면 좋겠다.
입시제도도 다양화하지 말고 교육과정의 내용을 성실히 습득한, 시험 잘 보는 학생이 좋은 결과를 내도록 하면 좋겠다. 어차피 대학교는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닌가. 교과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대학교들의 취지가 이런데 교육부에서 자꾸 이 취지를 생각 못하고 '공부 이외에 다양한 것으로 대학을 갈 수 있게 만들자'하니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지각, 결석하지 않고 성실하게 학교에 다니는 것도 기초 소양이다. 학교 수업이 있는 날에는 웬만하면 학교에 나올 수 있도록 학교장 현장체험학습제도도 재고했으면 좋겠다.
발표와 논술 형태의 수행평가, 다양한 진로활동도 물론 좋지만 그런 건 기본기를 다진 대학생이 되고 나서 시작해도 충분하다. 고등학생일 때까지는 교과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도한 수행평가도 불필요하다. 지필평가와 수능시험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너무 진로선택에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다. 스무 살도 안된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정확히 알기란 어렵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까지 전과목의 기본기를 잘 다져야 성인이 된 이후 진로를 잘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대학교들도 자율전공학부를 개설하는 추세이다. 고교학점제 또한 매몰비용이 더 커지기 전에 재고되면 좋겠다.
사실 사교육의 비중을 대폭 줄이거나 없애는 것은 한국에선 불가능한 것 같다. 한국은 학벌, 학연이 아직은 중요시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사교육에 대항하고자 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지금보다 더 커지지만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학교는 이것저것 잡다한 시도를 하는 게 아니라 기본기를 다지는 교육의 장이 돼야 한다. 전 과목 교과 내용을 결손 없이 충분히 가르치는 것, 기본생활습관과 사회 규범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의 본질적 역할이다. 그게 지금보다는 공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