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내내 따라다니던 수식어
우리반에서 제일 못생긴 여자애 1위
남자애들이 가장 짝꿍 되기 싫은 여자애 1위.
한창 외모에 민감할 시기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수식어였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기 직전 발병한 스티븐존슨증후군은, 나의 허리 위쪽 모든 껍질들을 벗겨내다시피 했다. 상반신 위 모든 피부. 거기에는 눈의 각막도 포함돼 있었다.
발병 전에는 다른 어린아이들처럼 보송보송한 피부, 초롱초롱한 눈을 가졌던 나는
하루아침에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한 달 간 입원치료, 3개월간 집중 통원치료를 마치고 거의 4달만에 학교로 복귀했을 때
친구들이 날 보는 시선, 나를 대하는 태도 또한 180도 달라져 있었다.
같이 놀자고 말 걸던 친구들이 슬금슬금 나를 피했고
예쁘다고 이름이 뭐냐고 웃던 친구들은 얼굴이 왜 징그러워졌냐며 경멸하는 표정을 보였다.
아직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배우지 못한, 너무나 진심으로 직설적인. 90년대 중반의 9살 어린아이들.
너 눈이 왜 그래? 눈을 뜬 거야? 계속 째려보는것 같아 이상해. 그리고 왜이렇게 빨개?
눈 속에 이상한 껍질같은게 있어. 징그러.
피부가 울긋불긋해서 M에 나오는 괴물 같아.
학교 복귀하기 전 거울을 보며 나도 했던 생각들이라 그런지
친구들의 말이 참 아팠지만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 살도 채 안된 그 어린아이가 그 시선들을 어떻게 견뎠을까.
'언젠가는 눈도, 피부도 원래대로 나아져서 다시 예뻐질거야.'
악착같이 이렇게 믿으며 견뎠다보다.
울긋불긋 괴물같았던 피부가 다시 깨끗해지기까지는
대략 10년이 걸렸다.
온통 충혈되고, 눈곱이 가득 껴서 마치 껍질처럼 보이고, 너무 눈이 부셔서 째려보듯 뜰 수밖에 없던 눈은
점차 그 증상들은 완화됐지만
아직도 미세먼지가 많거나 건조한 날에는 충혈되고, 눈곱이 끼고, 눈이 부시고 아프다.
피부와 눈은 십여년이 지나자 상태가 호전됐지만
무너진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학창시절, 징그러운 외모 때문에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늘 웃으며 친구들에게 나를 맞췄다.
너는 참 착한 애야.
우리반에서 제일 착한 것 같아.
이런 말을 들으며 안도했다.
나는 못생겼지만, 친절하고 착해서 왕따는 아니구나- 하면서.
여왕벌같은 친구가, 자기 대신 교실에 올라가 실내화주머니를 빨리 갖다 달라고 다그쳐도.
짖궂은 남자친구들이, 너랑 옆자리에 앉는 대신 니 필통 필기구를 매일 자기 것처럼 쓰게 해달라고 이야기할 때도
웃으며 그러겠다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시절에는 내 마음이 다치는 것보다, 못생겼다고 혼자 되는 것이 더 무서웠다.
내 마음이 다쳐서 곪는 것을 외면하면서 스무살이 됐다.
스무 살 무렵 피부도 깨끗해지고, 더이상 눈을 흘기며 뜨지 않아도 됐다. 늘 농도 짙은 눈물약을 넣어야 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눈으로 살아가게 됐다.
하지만 곪을 대로 곪은 마음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었다.
내 마음이 어떤지는 살피지 않고, 상대방이 날 얼마나 좋아해줄지 얼만큼 예쁘다고 해 줄지 눈치를 봤다.
삼십 대 중반이 넘어서야, 그때 곪을 대로 곪아 치유되지 못했던 마음이 보인다.
그 시절, 나에게 괴물같다고 못생겼다고 멸시하던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할 때 내 마음은 훨씬 편하고 안정됐다.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인간관계는 끊어내고
나를 편안하게 하고 존중해주는 관계만 소중히 지키며
남들 눈치 안 보고, 내 삶에 좀더 집중했더라면..
10대, 20대 시절이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모두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썼을까.
그 시간과 노력들이 모두 아깝다.
학창 시절,
자아정체성이 서서히 만들어지던 그 시기-
그때 또래들로부터 듣는 평판이 얼마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특히 외모를 비하하는 말들이 얼마나 마음을 고장내는지
몸소 체득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에 대해 자기연민의 감정이 생길 때마다
일상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기에는 너무 민폐일 것 같아
이렇게 브런치에 종종 끼적여 본다. 두서없이 마구마구-